(한국전쟁사 연구) 한국전쟁의 서사구조와 한국군의 지적 능력 저하

한국전쟁의 작전과 전투에 관한 기록을 읽어가다 보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서사구조가 점점 단순해지고 그 내용도 편협해진다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 이미 전사에 대한 기록을 위한 부서를 만듭니다. 아마 미국의 군사조직을 참고로 했을 것입니다. 미군은 대대급까지 전사장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전사를 기록해서 남깁니다. 조선시대의 사관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은 그런 기록을 바탕으로 전사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영화중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Band of Brothers는 대대의 전사장교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10부작 시리즈 입니다. 2001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전쟁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잘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미군의 조직을 참고로 한국군 육군에서는 전사감실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전쟁에 대한 기록을 유지하고 보관했습니다. 그런 기록을 바탕으로 한국 육군은 전쟁초기 부터 활발하게 전사기록을 남깁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전쟁이 끝나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전쟁의 전투와 작전에 대한 기록들이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전쟁초기에는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와 교수들이 전사기록에 많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전쟁통에 대학도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전사를 기록하는데 학자들이 동원된 것이지요. 제가 들었던 바에 따르면 당시 군에서 주는 봉급도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의 폭과 방향이 좁아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북한군의 기습으로 인해 불가항력의 패배를 당했다는 방향으로 전사를 기술하다보니 왜 패배했는지 어떻게 성공했는지에 대한 검토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당시 초기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내용들은 거의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춘천에서 김종오 장군이 지휘하던 6사단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막아낸 것을 춘천대첩이라고 하면서 국방부 차원의 전승기념 행사를 합니다만 1970년대 중반까지 춘천전투는 승리한 전투로 평가되지 않았습니다.

1970년 중반 일본의 자위대 장교가 한국전쟁에 대한 전사를 작성하면서 당시 개방된 소련의 자료를 확인하면서 춘천전투를 승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 북한군 2군단은 춘천 방면에서 수원으로 진출하여 한국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전쟁을 종결시키려고 했으나, 춘천지역에서 6사단이 2군단을 성공적으로 저지함으로써 북한군의 작전구상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그 이후 춘천전투는 6.25전쟁의 대첩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군은 춘천전투를 승리한 전투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당시의 한국군이 생각하는 승리의 개념에 비추어 볼대 춘천전투를 승리라고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춘천전투에서 6사단은 적의 전진을 저지하기는 했지만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3일간 춘천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으나 춘천시에서의 결정적인 전투를 앞두고 육군본부의 지시를 받아 전선조정을 위해 철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전투를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철수한 전투를 승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두번째 춘천전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북한군의 초기기습에 따라 불가항력으로 패배했다는 한국전 초기의 서사구조의 타당성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에서 해당부대의 전사는 지휘관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에 따라 좌우되었다. 6사단장 김종오 장군은 1966년 46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또한 춘전전투를 지휘했던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5.16 군사정변에 반대하다가 온갖 고초를 당했다. 결국 주요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전공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의 주도권은 자연히 초기전투에서 패배를 당했던 군인들에게 넘어갔고 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두드러지게 만들 수 있는 춘천지역의 전투를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당시의 한국군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평가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춘천전투를 승리라고 한 것도 소련의 자료가 나왔기 때문이지 스스로 평가한 결과가 아니다. 스스로 한국전쟁 전체를 평가하여 어떤 작전이 중요했고 어떤 전투가 중요했는지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군이 작전과 전투를 재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의미에서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의 한국전쟁사를 볼 때 한국군의 지적인 능력과 분위기는 1970년 중반과 비추어 큰 차이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초기 북한의 기습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패배했다는 서사구조는 초기작전과 전투를 보다 다양하게 바라볼수 있는 기회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군이 작전과 전투를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지적능력 마저도 제거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초기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에 관해 정리하겠습니다.

(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다탕성에 대한 검토 4 (종합)

(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3(기습의 작전적 전술적 측면), post 7

(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2(기습의 전략측 측면), post 6

(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1, post 5

(한국전쟁사 연구) 초기 전사기술의 문제점 post 4

(한국전쟁사 연구) 잘못한 작전과 전투에 대한 연구가 소중한 이유, pos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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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 정독하고갑니다

지금도 인민군 전쟁기념관에 가면 국군 군기가 널려있다고 하는데 6사단 군기는 없다고 하죠 ㅋㅋ

패전한 군인들이 정치적 이유로 일부러 부각시키지 않았다...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네요..

역사는 승리한 자가 기록한다는 역설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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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글도 기대되네요~!

당시 우리 군대는 참 무능력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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