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팀 #36]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in #zza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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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기다린다. 출근길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점심시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제막 사무실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퇴근 시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린다. 어떤 기다림은 불편한 기다림일 수 있겠으나 어떤 기다림은 즐거운 기다림일 수 있다. 이전의 나였다면 기다림은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를 연상시키는 단어였지만 최근들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다보니 기다림에 대한 시선에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접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기다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다.

이 책은 페터 빅셀이라는 스위스 작가의 에세이집이다. 어느 에세이나 마찬가지로 그의 주제들은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부터 나온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특별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아주 쉽게 읽히지만 글을 통해 받은 여운은 쉽게 잊혀지지 않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사소한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 그리운 추억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해 잊혀져가던 몇 가지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어릴 적 우리집은 가난한 축에 속했었다. 내가 살던 곳은 다가구 주택이였는데 다섯 가구가 공용으로 사용하던 화장실이 있었다. 7살 때쯤인가 한 날은 아버지가 담력 테스트를 한다며 오밤중에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집과 화장실 거리라고 해봐야 6~7m정도였지만 그때 당시 화장실 귀신(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그 거리가 얼마나 길고 끔찍한 공포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추억조차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즘같이 집 안에 화장실이 두세개씩 딸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절대로 겪어보지 못할 추억이기 때문이다.

앞서 기다림이라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른 추억도 생각이 난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환경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최애 음식은 통닭이었는데 매달 아버지의 월급날이면 배 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매번 아버지의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정말 행복한 기다림이었다. 간혹 아버지께서 약주를 한 잔 하시고 늦게 돌아 오실 때면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잔뜩 기대에 부풀어 보온밥통 앞으로 다가간다. 천천히 밥통을 열어 볼 때의 그 즐거움이란!! 당시 밥통의 기능이 좋지않아 눅눅해져 있었을 통닭조차도 엄청난 행복이었다. 이 설레임과 기쁨 역시 요즘같이 1일 1닭을 할 수 있는 세대들은 절대로 느껴보지 못할 즐거움이요 추억일 것이다.

이 책은 정말 묘한 매력이 있다. 때로는 시간 여행을 통해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감정을 공유하며 슬픔에 잠기거나 기쁨에 환호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비판하기도 하고 환경에 대한 반성과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다양한 주제에 정신이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묘하게도 금세 그의 글에 젖어 들어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이웃들 역시 잠시 잊고 있던 추억을 회상하거나 현재를 그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사색에 잠기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도록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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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안내해주는 길라잡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신도자님도 좋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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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은 남는 게 없기 때문에 자면 안됩니다. 두눈 부릅뜨고 기다려야지요. ㅎㅎ
좋은 책이군요. 적어 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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