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영화 책 리뷰]연상호 감독의 첫 그래픽노블 <얼굴>

in #aaa5 years ago

<얼굴>
연상호 지음 / 세미콜론 펴냄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서울역>(2016) 등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섬뜩하다. 위선적이고, 욕망이 필터를 지나 그대로 말이나 행동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전작이 그랬듯이 연상호 감독의 첫 그래픽노블 <얼굴> 속 인물들도 그렇다. 임영규는 시각장애라는 한계를 이겨내고 자그마한 도장가게를 캘리그래피 연구소로 키우는 데 성공한 전각 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없이 아버지 임영규와 단둘이 살아온 임동환은 자신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한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그 시신은 신시가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 야산에서 발견됐는데, 죽은 지 30년이 더 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함께 발견된 주민등록증을 통해 임동환의 어머니임이 밝혀질 수 있었다. 임동환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기로 한다. 어머니의 가족, 직장 동료를 만나 알게 된 진실은 임영규, 임동환 두 부자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사람들에게 ‘못생긴 괴물’로 기억되는 어머니 정영희의 삶을 추적해 맞닥뜨린 풍경은 개발 광풍이 거세게 불었던 1970, 80년대 한국 사회와 그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한 가정이었다. 노동과 개발만을 미덕으로 삼던 그때 그 시절은 ‘내 얼굴이 어때서!’라고 대들 수 있는 용기도,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인권도 허락되지 않았다. 임동환이 마주한 젊은 시절 어머니의 삶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못생긴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결혼해 밤낮으로 노동만 하다가 어떤 사건을 겪고 세상을 떠났다.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그림체라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지만, <얼굴>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통틀어 연상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그다운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이다. 대체 어머니 정영희의 정체가 무엇인지 긴장감을 가진 채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장에서 확인한 그의 맨 얼굴은 책을 덮은 뒤에도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한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도, 영화로도 만들어지길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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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몰랐지?_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끝나자마자 떠올린 이야기다. <사이비> 다음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염두에 두었지만 <서울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연 감독은 <부산행>을 만들었고, 불안한 마음에 오래 묵혀뒀던 <얼굴> 시나리오를 들추게 됐다. <염력>의 프리 프로덕션이 끝나기 전에 <얼굴>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결심했고, 그간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자유롭게 작업했다”는 게 그의 얘기.

*<돼지의 왕> : https://www.themoviedb.org/movie/91088?language=en-US
*평점 : AAA

*<사이비> : https://www.themoviedb.org/movie/211247-saibi?language=en-US
*평점 :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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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서울역>(2016)
모두 불편하면서 묵직한 영화들이였군요. 새롭게 주목할 감독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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