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회고록 - (1) 『소크라테스적 폐쇄』

in #biography6 years ago (edited)

나와의 대화를 거부한지 대략 일년. 나의 머리 속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쉬지 않고 끊임 없이 흐른다. 때론 강렬하게, 때론 고요하게. 가끔 이 강에서 파생되는 미지의 길들로 물길을 틀어 일탈하지만 이내 거대한 흐름으로 다시 회귀한다. 하지만 일년 사이에 이 거대한 강은 중력과 관성의 힘을 거부했다.

오전 11시. 12시. 2017년 1월부터 10월까지 29살인 내가 일어난 시간이다. 20대가 가기 전에 꼭 이루리라 그려왔던 그리고 쌓아왔던 나의 계획이 무너졌다.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실패, 좌절, 무기력, 그리고 우울. 이것들은 이젠 20대의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앞의 숫자들은 다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시간, 달, 년, 그리고 나이 이런 개념들은 인간들이 생활의 편의상 그리고 통제가능하도록 고안한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실존적 측면에서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생활의 편리함도 필요로 하지 않고 통제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병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 나의 경우에 통제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한 건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항상 의식적으로 반항적인 이단아이길 자청했고 무의식적으로는 집단에서 벗어나 언제나 나 자신으로 환원되길 원했다. 이런 반항적기질은 군대에서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써 변모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도록 도와주었다.

지적 호기심이 그 변화의 원동력이었다.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품고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지식을 탐했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추상화된 나만의 세계관을 정립했다. 세상의 원리는 간단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 복잡해 보이지만 본질은 매우 간단한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고 내가 정하는 것이 곧 모든 것이라는 것. 존재하는 모든 한계점은 다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형이상학적 통찰력이 내가 대담하고 도발적인 자세로 세상을 맞서며 두려움을 불식시켜주었다. 때론 무모하게 끝없는 도전을 가능케 했다. 이 원리는 내가 어떠한 위대함을 이뤄낼 수 있는지 자문하게 만들었다. 위대함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행하려는 행위들은 위대함을 이루는데 있어서 필수적인가? 다른 것들을 모조리 희생시켜 위대함을 추구해야하나? 지금 그리고 그 당시 내가 했던 행위들은 모두 후회 없는 선택들이었고 위대함에 근접하는 필수적 단계들이었다. 행위의 결과에서 오는 수 많은 실패들은 나를 더 탄력 있게 만들었고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끊임없는 검열과 관념들은 나를 대체하였고 이성의 광기가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이성은 나의 정신과 신체를 그리고 감정까지 망가뜨렸다. 세상과 나를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그리고는 나 자신까지 나와 고립시켜버렸다.

고립은 자화 수분을 한다. 이 고립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진화된 종자를 퍼뜨린다. 모체인 고립은 자신과 닮은 종자를 통해 다시 그 영향력을 넓힌다. 서서히 그 지역의 땅을 잠식하여 모든 종류의 식물을 말살시킨다.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러던 중 돌연변이들이 생겨난다. 이 돌연변이들은 거대한 영향력에 맞서 변화를 시도하지만 우성 유전자에 의해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이 고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남은 모든 인생은 이 고립의 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원래 인생은 이렇게 고독한 걸까?

애초에 구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구원을 바래서도 안됐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떤 비약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 나는 직접 이 밭을 모두 태우고 갈아 엎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생명체에게 잠식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이것에 대해 의식하고 인식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줄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제 3자로 두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립의 기원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 기원에 대한 진단 후 해결책을 나에게 실험해보는 것이다. 그 해결책은 일시적 도피 또는 일탈, 규칙적인 운동, 명상, 생각의 전환,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여행 등등.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한 번 이 현상의 근저에 대해 탐구해보았다. 그 결과 내가 간과한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진행된 시간이다. 오랜 시간 진행되어온 번식을 하루 아침에 막고 갈아 엎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안타깝지만 시간은 나의 영역 밖의 일이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제초제가 자신의 역할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연유한 잡념들. 근저를 알 수 없는 불안감 그리고 압박감. 스스로 만든 족쇄들. 이 모든 관념들, 생각들, 그리고 번뇌들이 나에게 머물다가 가도록 놔두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이성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과거도 미래도 오늘도 아닌 '순간'을 살기로 했다. 내가 지금 의식하고 인지하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금 내가 먹는 음식을 음미하고 봄바람을 느끼며 맑을 공기가 나의 폐에 머무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실재한다는 사실만이 나를 규정하도록 했다. 그 외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매순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만이 나를 규정할 뿐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탄생한 자유의지는 나를 고립의 영향력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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