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놀이썰 #5]우리는 알면서도 바벨탑을 쌓았다. 그런 거다.

in #busy6 years ago (edited)

벌써 2년 정도가 지났네요.

별별 고생을 다 해가면서 서비스를 완성했습니다.

다른 앱처럼 이미지를 선택하고 글을 쓰면 업로드가 되는 경험은 짜릿했죠.

엉성하고 사용자를 배려하지도 않은, 마치 쌓기나무처럼 기능을 쌓아올렸지만,

달콤한 상상에 취해보기도 하고, 경험이라고 되뇌이면서 버텼던 어제들을 떠올렸습니다.

재미있을 수도 있고 유익한지 모르는 회사놀이썰 시리즈!

내가 마주한 건 바벨탑이었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쌓아올린 바벨탑

제가 들어간 팀은 여행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핵심은 여행기를 작성하면 그걸 책으로 편집해주는 서비스였네요.


저 두 문장에 문제가 숨어있었는데요.

핵심 서비스인 여행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행의 모든 요소를 동시에 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여행 전 계획, 여행 중 루트검색 그리고 여행 후에 작성하는 여행기까지.

모든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었던 거죠.


PM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저렇게 거대한(?)서비스가 만들어지기는 어렵죠.

그럴듯하게 만드는 건 가능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밑그림 격인 기획조차 제가 들어간 시점에서는 손볼 수 없을 정도였네요. 어떤 기능을 넣고 나중에 어떤 기능을 추가할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생각나는 기능을 그때그때 전부 쌓아놓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방문한 여행지의 주소를 입력하려면 버튼을 6번은 클릭을 해야했죠.


치밀하지 못한 기획과 색만 입힌 디자인 그리고 구현만 되는 개발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기획에 모두가 능동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요?

스타트업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할테고요.

서로 신뢰한다는 핑계로 비판이나 의견제시에 나태한 결과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멈출 수 있는 용기, 돌아갈 수 있는 여유

<장화홍련>ost.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아시나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계속 억지로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준비를 해 기존 팀원들의 얼굴을 보면 입이 얼어붙기를 반복했죠.

보이지 않음에도 그들이 걸어온 고생길이 선명했습니다.

가시밭길을 참 오래도 걸어오느라 여기저기 보이는 상처들이

그 길에 의미가 없었노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ㅎ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런 것이어야 했다. 

중요한 일은 오히려 감정을 잘 숨기는 편에 비해

가볍게 여기는 일에 대한 감정은 잘 숨기지 못하는 편입니다.

기획자인 제가 서비스를 불신하는  티가 났던 모양인지, 대부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가 결국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열정이 없다느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물어봤을텐데 어떤 말도 없이 그렇게 들고나온 것을 보면 모두가 이미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이겠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은 인정합니다. 뒷 이야기지만 이후 확실히 의견을 제시하거나 소통에 더 힘을 기울이는 편이었으니까 배운 것도 있었습니다. 후에 결국 리더에서 보스 테크트리를 타기 시작했지만 말이죠.


아직도 비슷한 이름이나, 여행에 관련된 어플이나 서비스를 보면 그날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끝물에 여기저기 손을 보면서 기획한 페이지, 기존 기획자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며 삭제해버린 수많은 기능들이 떠오르면 여전히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등바등 했음에도 결국 내가 손을 댔고 살려내지 못했으니까...

내가 아닌 다른 능력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다른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은 자주 합니다.

그날 버스에서 밀려온 그 사나운 미적지근함은 지금까지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고

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분이예요.


다시 돌아오는 계절

만에 하나라도 저와 같은 경험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실패에 대해 너무 인색해서 쉽게 그만 둘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낙오자로 낙인이 찍히는 기분이랄까요?

그 분위기에 계속 등에 떠밀려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네요.


열심히 노력해서 피운 꽃을 봤을 때는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겠죠?

그 꽃이 시들어버리려고 하면 기를 쓰고 막으려고 할거고요.

하지만 그 꽃이 떨어진다고 나무의 생명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름이 되어서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양분이 되어줄 수도 있겠네요.

그 열매가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겠죠.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봄은 다시 오고, 여름도 다시 옵니다.

해가 반복될 수록 의미와 가치가 더 짙어져 가는 미래가 여러분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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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서비스를 기획하고 구현한다는 건 어느 한 방향으로의 선택을 의미하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비즈니스라는 미명 하에 좋은 것은 다 넣으려고 하죠. 그게 소화불량처럼 커뮤니케이션을 막고 프로젝트를 망치게 돼요. 어디나 비슷한 풍경이..ㅎ

맞는 말씀입니다 ㅜㅜ ㅎㅎ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뛰고 있고, 정신을 차려보면 폭주하고 있는 모습이...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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