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in #camino6 years ago (edited)

[산티아고 순례길 prologue] 까미노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순례길을 찾는다.
답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오는 사람도 있으며,
단지 길을 걷기 위해 오는사람도 있다.

왜 이 길을 걷느냐고 물어오면
모른다고 할 수 없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알고 싶어서요.

D-1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며

9세기에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유럽의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찾아옵니다. 약 1200년 전이니, 열심히 걸어온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곳에 왔을까?’
아직은 서로 눈치만 보며 데면데면할 뿐입니다. 한달 후 서로 부둥켜 안고 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D-1 일 그만둔지 4시간, 배낭 메고 떠나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고한 날, 나는 모두를 배신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집에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매일 밤 정각마다 하얀빛으로 반짝이는 금빛 에펠탑이 오늘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안녕, 그동안 나를 위로해주어서 고마웠어.

밤 1시가 넘어 집에 왔는데 동생들이 안자고 기다리고 있다. 내일 일찍 떠나니 미리 인사를 했다. 이 원룸에서 네 명이 북적거리고 잘도 살았다. 짐을 싸고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 내가 멘 것은 사실 배낭도 아니었다.

1일차. 죽지 않으려고 걸었다

따뜻한 바람만이 파도소리를 내며 나를 에워싼다. 어쩐지 다른 순례자들을 통 볼 수 없다. 이 길을 나 혼자 걷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쫓아갈 사람도 없지만, 쫓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다행이다. 그 다행스러움이 걱정스러움으로 변할 때 쯤 씨마스를 만났다.

죽지 않으려고 걸었다. 잠시라도 멈추면 바람에 내동냉이 쳐져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 이 엄청난 맞바람을 뚫고 지나가려니 눈물, 콧물에 침까지 흘리고 있다.

이 시련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원망섞인 설움은 가라앉는다. 다같이 애쓰고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는 것도 잠깐, 그래도 내가 가장 힘든 것 같다.

2일차. 어둠 속에 나 혼자

새벽 6시, 아직 모두 잠든 알베르게를 나섰다. 나는 걸음이 느리니까 천천히 오래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서둘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온 것이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지만 프랑스 보르도에서 7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보르도라면 세계적인 와인 산지이니 혹시 그와 관련된 일을 했나 싶어 왜? 하고 묻자 뜸을 들이더니 대답한다. 사랑 때문에.

짙은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새벽에는 분명 나 혼자였는데... 암흑 속에서 서로 알아보지는 못했어도 각자 열심히 걸어오고 있었구나. 나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2일차. 나에게도 동료가?!

서로 부엔 까미노(좋은 길!) 인사하는데
눈빛을 보면 압니다.
사색이 필요한 지, 대화가 필요한 지.

혼자 걸을 땐 분명 걸음이 이보다 한참은 느렸는데 동행이 생기니 발걸음에 힘이 나서 활기차게 걸어요. 혼자 걷고 싶어 혼자 걸었던 게 분명한데도요!

3일차. 순례길의 어느 완벽한 하루

오늘 처음으로 나 홀로가 아닌, 많은 이들과 함께 길을 시작한다. 그 중엔 어제 나의 동료가 되었던 아이톤(스페인)과 에릭(프랑스)도 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어색하긴 해도 든든하다. 깜깜한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같이 우르르 길을 잃었다가 되돌아 오기도 했다. 혼자였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서 길 안잃었을텐데.

빨리 오라느니, 천천히 좀 가라느니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도 없다. 함께 걷는게 좋으니 함께 걷는 것이다. 혼자가 편하면 혼자 걸어가면 된다.

순례길에서는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스팀잇에서 응원과 위로를 훨씬 더 많이 받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낯선 이와 관계맺는 SNS 는 처음이라 더 조심스럽고 서툴러 그런가봐요. 시간과 체력을 넘어 이제는 감정소모까지 많아지니 종종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필 스팀스달도 대폭락...

그래서 이번에도 순례길 연재로 저를 묶어 놓으려고요 :D 마침 순례길 일기에는 나약하고, 못나고, 수줍은 저의 모든 감정이 낱낱이 드러나 있으니 읽는 분들이 좀 적을 때 올리고도 싶었습니다. 지금껏 저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는 좀 더 솔직해도 되겠지요. 항상 감사합니다.

3개월만입니다. 다시 천천히 같이 걸어요 :)


@spring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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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빠지게 기다렸어요! ㅎㅎ

이 댓글은 베플감인데 제 보팅게이지가 바닥이라 ;ㅁ;
사실 계도님이 몇 번이나 순례길 이야기를 해주셔서 다시 쓸 용기를 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녜요.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다시 함께 걸어보아요 :)

베플감이라길래 살포시 올려봅니다

우왓 +ㅁ+ 매의 눈을 가지셨군요!

길을 걷는다는 것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우리 인생과 참 닮은 것 같아요

오늘 포스팅 내용 안에서 얘기해 보자면,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도 부둥켜 안고 펑펑 울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같이 길을 걷던 사람과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울 때 그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부둥켜 안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순례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맺는 수많은 인연들도 다들 만났다 헤어졌다의 반복이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진정한 소통을 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이유로, 저와는 대면대면한 사이이지만, @springfield님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저에게 보여 주셔도 뭐, 괜찮지 않을까요?ㅎㅎ

@torax 님 안녕하세요 :) 순례길을 걸으면서 그리고 순례길을 걷고 난 후에는 더더욱, 그 길이 제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길은 제 자신을 알아가고, 친해지고, 용서하는 길이기도 했고 말이죠. 말씀하신대로 항상 같이 길을 걷던 사람과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요. 그러니 @torax 님과 같이 걸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

응원할게요 스프링필드님:)
요즘 저도 그렇고 다들 스팀잇을 하는 키워드가 '완주'가 되는 느낌이에요..음 우리의 골인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요? 네드가 파워다운을 다하고 손절행? 스티미언들이 서로 치고박고 싸우다가 대폭발?
ㅋㅋㅋㅋㅋ부디 해피엔딩이길

저렇게 써놓으시고 해피엔딩바라시는 건가요 지금 ㅋㅋㅋㅋㅋ 에휴. 케콘님이라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뭐하고 있는건지 ㅋㅋㅋㅋㅋㅋ 마지막 의리이자 희망이랍시고 연재를 하겠다고 공표하고 말았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연재 자체에 너무 부담감느끼시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럴거니까ㅋㅋㅋㅋㅋㅋㅋ
케 세라 세라 ㅋㅋㅋㅋㅋㅋ

케콘님이야 웹툰 연재도 하시는 분이니 (저는 멘탈 나갈 듯...) 스팀잇 연재쯤이야.....ㅜㅜ 근데 케 세라 세라 뭔가요. 들어본 것 같은데 욕이나 흑마법 주술같기도 하고.....ㅋㅋㅋㅋ

'될대로 되라'의 프랑스언가 그럴걸요 ㅋㅋㅋㅋ 어쩐지 한국에만 유명한 문구인가보네요 ㅋㅋㅋㅋ

좋은데요? 에라이!! 될대로 되라!!! 아몰랑!! ㅋㅋㅋㅋ

"Que sera, sera" 스페인어 맞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 "신이 다 알아서 해주실거야" (아는체 죄송합니다 ㅠ)

죽지 않으려고 걸었다ㅜ 순례길을 걸으시고 오신 봄님의 인생은 그전보다 훨씬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늘 행복하시길

북키퍼님! 정말 그럴까요? 어찌보면 인생이 많이 달라져있긴 하네요. 지금 이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인생이 그전보다 훨씬 나아지기를... :)

환영합니다.^^
스팀잇이 스팀가격 하락이라는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이럴 때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히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같은 순례자들 아니겠습니까.ㅋㅋ
이번엔 멈추지 마시고 같이 걸어가요~^^

지지하이트님! 요즘같은 때는 왠지 저라도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요 ;ㅁ; 그럴 때 순례길 이야기만한 것이 없죠. 산티아고까진 걸어야하니까요 :) 지지하이트님 지금은 어디쯤 걷고 계시려나요? 같이 걷는 길동무가 있어 든든합니다. 우리 모두 부엔 까미노 :)

안녕하세요.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아직까지 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네요. 간접 경험이라도 얻을 겸, 연재하시는 글 잘 챙겨 보겠습니다.

@appealchoi 님 방문해주셨군요 :) 문득 홀로 여행이 떠나지고 싶을 때 눈 딱감고 비행기표부터 끊으시면 가게 돼있습니다 ㅎㅎㅎ 꼭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되지요. 쉬는 날 국내여행이라도 훌쩍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

그저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는... 꼭 무사히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felixsuh 님 안녕하세요 :)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 지 지켜봐주세요! ^^

저도 항상 고민이 없어 고민이었습니다. 나름 순례길 비슷한 것도 조금 걸어봤는데 스스로에게 물어본 바로는 '왜 걷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걸어야할 것 같아서'라는 답만 나오더라고요. 다 걷고 나서라도 그 길을 왜 걸었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네요.

대학교 1학년때 교양으로 영어 초급수업을 들었는데 자신의 걱정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쓰라고 하더라고요. My problem is no problem 이라고 썼더니 외국인 강사가 다시 쓰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왜 걷는지 모르지만 걷고 있을 때... 그런 경우 '길이 나를 불렀다' 라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

우와 산티아고.... 얼마전 발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오지 할머니가 산티아고로 딸을 만나러 가신댔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네요. 글을 보고 유추해건데, 산티아고 무사히 완주하신거죠 ^^?

오오! 그런데 칠레 수도도 산티아고인데 어떤 산티아고였을까요 ㅎㅎㅎ 저는 발리 가보고 싶던데요!! 완주는 아직까진 비밀입니다 :D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이들면 그 노래가사 공감 안할 줄 알았는데... 왜 길은 끝이 없는거죠.

지구는 둥그니까요.
https://steemit.com/stimcity/@ab7b13/180617
여기 이 노래 참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넌 너의 길을 계속 가거라, 난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 이도가 똘복에게-

ㄷㄷㄷㄷㄷㄷㄷㄷ

ㄷㄷㄷㄷㄷㄷㄷㄷㄷ이제 이해...

고만해요… 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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