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을 갈망하는 이들만 보라.

in #christianity5 years ago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위의 문장은 필자가 철없던 청년 시절에 책상에 붙여놓고 마음을 굳게 했던 내용이다. 뭐,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청년의 시절은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일찍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대학시절 내내 알바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했고, 암울한 삶을 잊고자 매일처럼 술에 취한 채 잠이 들었다. 그렇게 허망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군에 가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몰두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회사는 필자의 성공과 부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막대한 대출을 얻어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은 빛의 속도로 인생실패자의 나락에 밀어뜨렸다. 그렇게 필자의 짧은 인생은 끝이 났다. 그러나 목숨이 붙어있었기에 지금 이 글을 쓰는 게 아니겠는가? 그 후의 얘기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막장드라마와 같은 인생극장을 써내려가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떠내려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십여 년의 세월을 또 흘려보냈다. 필자가 그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기도를 할 턱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를 훈련시키는 자리에 앉아있다. 지금의 인생이 만족스럽고 즐겁다면 필자의 칼럼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사는 게 지옥 같아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면, 혹시라도 필자의 칼럼이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결책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령과 동행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리를 지식으로 받아들여서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반복하는 모습이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라는 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필자의 얘기가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무능하고 무기력한 삶의 모습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증거라고 인정하는 사람만 읽으시면 된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첫 번째, 세상으로 난 창문을 닫으라.

당신이 여전히 세상에서 이룰, 그 무엇이 있다면 성령의 사람이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뭐 그게 부자나 성공, 권력이나 명예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고질병이 낫고 악성부채가 해결되며, 찢겨진 가정이 회복되고 생계비를 얻는 직장을 얻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아도 그런 문제를 해결될 수 있다. 영성학교에 온 사람들은 귀신이 쫓겨나가고 정신질환이나 고질병이 치유되고 기적적으로 재정문제가 해결되며 가정이 회복된 사람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아직 아니다. 왜 그런지 아는가? 기도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속내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가 암울하고 절망적일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세상으로 난 창문을 닫으시라. 어차피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았지 아니한가? 당신이 기도하다가 죽는다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처음부터 세상으로 난 창을 닫든지, 아니면 삶의 지난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창을 닫든지 간에, 당신의 눈이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만날 것을 꿈도 꾸지 마시라. 영성학교를 찾아온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도 여전히 세상으로 난 창을 닫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세상으로 난 창을 닫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이 기도를 하지 마시라. 아무리 죽기 살기로 기도하더라도 성령이 내주하는 일은 결코 없을 터이니까 말이다.

두 번째,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라.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이다. 기도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고 경배하며 감사하며 죄를 회개하는 교제의 기도이다. 성경을 읽는 것도 지식을 머리에 쌓아두는 행위가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기는 행위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매일 쉬지 않고 해야 한다. 물론 생업에도 종사해서 생계비도 벌어야 하고, 가정일도 하면서 자녀도 돌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일도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뒤로 물려야 한다. 그렇게 대충 대충한다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것이고 자영업이 망할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고 있는 한,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지 않겠는가? 그런 믿음이 없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 어쨌든 성령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와 말씀에 삶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런 결심은 친구가 끊기고 친인척과의 왕래도 사라지고 직장상사나 동료에게 왕따를 당하며 외롭고 쓸쓸하게 살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취미나 좋아하는 일도 죄다 끊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최우선을 두는 사람들은, 대략 하루에 서너 시간의 기도와 한 시간 이상 성경을 읽는다. 그러니 어떻게 취미생활을 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이 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세 번째,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으라.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으로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자기부인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자기주장, 고집을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아니라고 한다면 고집을 피워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날 때부터 죄로 인해 부패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중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으로 판명이 날지라도, 항상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악한 영들은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여 미혹시키고 죄를 짓게 만든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다른 이들의 주장에 대해 유연하게 대하고, 성경적인 지도자의 말이 자신의 견해와 다를지라도 순종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 미혹의 영이 지배하는 사람은 교만하고 고집스러우며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다른 이들의 견해에 유연하게 대하고 지도자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싶다면 성령의 사람이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라. 위의 세 가지 사항을 굳게 결심하고 철저하게 삶에 적용한다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성령은 눈에 불을 켜고 그런 사람을 찾으시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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