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자기암시가 아니다.

in #christianity6 years ago

최근 치유사역으로 유명한 모 장로의 집회에 다녀온 분이 필자에게 그 집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말해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치병을 치유 받을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장로가 자신의 병이 낫는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손을 번쩍 들라고 했다. 그러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쭈삣쭈삣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믿음이 있어야 병이 치유된다고 강조하면서 믿음으로 손을 들라고 다그치기를 여러 차례 하자, 어느 한 사람이 손이 올라가면서 동시에 앞을 다투어 많은 사람들의 손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자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보니까, 동영상 밑에 소개 글을 읽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기뻐하며 손을 올리고 있다는 글귀를 올렸다고 한다. 내 원 참, 쇼도 아니고 쩝.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예전에 귀신들려 필자에게 찾아온 자매가 있었다. 그래서 필자와 함께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귀신이 나갈 것을 믿음으로 선포 한다”를 주구장창 외쳤다. 그래서 기도를 중지하고, 왜 말 끝마다 선포하는 기도를 하냐고 물었더니, 위의 모 장로의 치유집회에 참석해서 그렇게 기도하라는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매에게 귀신이 나간 것을 믿음으로 구주장창 선포했는데, 왜 필자에게 귀신을 쫓아달라며 왔느냐고 물으니 묵묵부답이었다. 믿음으로 손을 들고 입으로 선포하면 죄다 응답이 내려오고 불치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났다면, 필자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믿음으로 선포했는데, 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그런 분들의 집회에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성령이 그 집회에 운행한다는 증거로, 사람들이 뒤로 넘어가게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사를 시행하면 서로 넘어지고 싶어서 몸에 힘을 빼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넘어가는 것을 웃으며 즐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집회에 참석하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대단한 기적을 체험할 것을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사도들과 제자들 아니, 예수님조차 보여주지 못한 성령의 능력을 임팩트 하게 보여주다니,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집회에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도 없고 맹인이 눈을 뜨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사건은 없는 것일까? 치유 받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많으나, 정작 의사가 입증해주는 기적적인 치유를 확인할만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거참, 희한한 일이다.

다시 본문의 주제로 돌아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 선포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불치병이 치유되는가? 그게 성경적인 믿음의 생산방식인가? 아니다. 그런 방식은 심리적이고 인본적인 방식을 빌려 온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 자기 최면, 자기 암시, 초월명상, 마인드 컨트롤도 똑같은 방식의 심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자기의지가 강한 사람이 탁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믿음인가? 자신의 훈련과 의지로 얻어지는 심리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아쉽게도 이런 일이 우리네 교회에 비일비재하다. 내적치유도 이에 빠지지 않는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공로로, 우리가 나음을 받고 평화를 얻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간 상처를 입은 내용을 쓴 편지를 불로 태우고, 상처를 준 사람을 형상화한 바가지를 만들어 두들겨 패는 심리적인 퍼포먼스가 왜 필요한가? 이 역시 심리적이고 인본적인 방식을 성경말씀으로 교묘하게 포장해서 교회에 끌어들인 세상적인 치유방식에 불과하다.

믿음은 하나님이 당신이 기뻐하시는 자녀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은사)이다. 그 선물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면 된다. 성경에는 그런 사람은 의인이라고 부르셨다. 그래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고 하신 이유이다. 그런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자격을 얻는 일에 힘을 쓰면 견고한 믿음이 얻어질 것이다. 그게 바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들 가장 기뻐하신다고 성경에 약속하셨다.(히11:6) 그래서 성경에는 수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간절히 찾아오라고 명령하셨다. 그게 바로 쉬지 않는 기도의 모습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항상 하나님을 부르고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라는 말씀이기도하다.

그러나 교회에서 듣는 것처럼,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봉사를 하고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전도행사에 참여하는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야 믿음이 자란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형식적인 희생행위를 가지고 믿음의 유무를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행위의 속내나 목적, 동기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다. 그래서 아무리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죄와 싸울 생각이 없고, 거룩한 성품으로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으신다.

다시 처음의 집회장소로 다시 되돌아가보자.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손을 드는 행위만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감동하시겠는가? 하나님은 그런 집회에 참석해서 손을 들기 전에, 치유를 해주실 만한 믿음을 공급해주신다. 그렇다면 집회가 아니라 집이나 직장에서 기도해도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이미 하나님이 치유를 해주실 만한 믿음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말끝마다 선포하는 형식의 기도도 마찬가지 이다. 선포를 한다고 입으로 선포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런 믿음이 있다면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고 괴성을 지르면서 선포를 외친다면 입만 아플 것이다.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이성적이고 심리적이며 인본적인 방법을 가미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으므로 다 이루셨다고 고백하셨다. 당신에게 아직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달구고 감정을 격앙시키는 집회를 찾아다니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으면, 골방에 들어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를 구하시기 바란다. 성경의 위인들을 살펴보라. 그들의 영적 능력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얻어지는 성령의 공급하심이었다.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와 말씀의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는 할 생각이 없이, 안락하고 손쉬운 방법을 찾아 여기 저기 기웃거리니까, 귀신의 덫에 걸려 재산을 탕진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적을 경험할 수 없다. 귀신의 기적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해서, 평생 그들의 포로가 되어 살다가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이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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