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in #christianity6 years ago

추석이 가까워지면 직장인들은 5일 남짓한 연휴를 기다리며 달콤한 휴식을 꿈꾼다. 무더운 여름 같지 않아 선선하고 화창한, 그야말로 놀기 좋은 날씨라 등산이나 낚시도 좋고 어느 조용한 바닷가를 찾아 심신을 쉬는 것도 환상적일 것이다. 얼마 전에 비록 파트타임의 신분이라도 직장인이 된 필자 역시 연휴를 기다리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연휴가 끝나면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겠지만 생계를 유지해주는 수단인 직장이 있기 때문에 휴가도 달콤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연휴를 푹 쉬다가 그만 직장에 다시 돌아가는 것을 잊은 이들은 결코 없을 것이다. 수입은 얻어야하는 직장은 평생 근무해야 할 것이기에 가끔씩 휴가가 끼어 있더라도 다시 돌아갈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쉬다가 다시 돌아갈 직장을 아주 잊어버렸다면 아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희귀한 사건만을 취재하는 TV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법이다. 세상에서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가에 쉬다가 돌아갈 직장을 잊은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에 있다. 그것은 영생을 잊어버리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천국이나 지옥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야 논외의 대상으로 제쳐놓더라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며 천국과 지옥을 존재를 인정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영생을 준비하는 것이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지 않겠는가? 평생 근무하여야 하는 직장이라, 사내외 평판은 물론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 날마다 노심초사하는 이들조차 그곳은 환갑이 되기 전에 떠나야 하는 곳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30대부터 노후대책을 준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평생 근무하는 직장이라도 그리 멀리 않은 장래에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하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진리이다.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모르는 억만장자나 한 푼 없는 노숙자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90세가 넘어 살만큼 산 노인에게나 아직 열 살이 채 되지 못하는 앳된 소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국적이나 피부색에 무관하게 죽음은 누구나에게 찾아온다.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천국으로, 그렇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을 믿는 무리들이다. 그래서 매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아까운 헌금도 흔쾌하게 드리는 것이 아닌가? 언제가 죽음이 찾아오면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려면 어떤 준비를 하아여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주일이 되면 열심히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추가로 새벽예배라도 작정해서 나가야하고 십일조를 거르지 않아야 할 것인가? 이 모든 잣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천국에 가려면 지금의 신앙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기에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안심하고 있다. 자신이 그 믿음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믿음은 지식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 아니라 가슴으로 믿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 가슴으로 믿는 것과 지식으로 믿는 차이는 희생적으로 섬기는 모습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지식으로 믿는 자들은 교회에서 정한 다양한 종교행위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지만, 가슴 깊이 믿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며 목숨이라도 내놓을 정도로 단호하고 결연한 자세를 보인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절대자로 믿으며 자신의 영혼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두려운 분으로 알고 있다면, 그분과 깊고 친밀한 기도의 삶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 기도의 모습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항상 기도하는 모습이다. 또한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즉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은 믿음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행위인 셈이다. 그러나 기도를 게을리 하고 성경을 읽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우리주변에 허다하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영혼들이다. 그래서 천국의 자격은 언감생심이다. 늦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만이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성령의 능력은 물론 성품이 거룩하게 변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인생관으로 변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육체의 사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우리네 교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성경구절인,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천국의 자격을 지닌 성경구절(롬10:10)의 효험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시인하였지만 가증한 자로 책망을 받는 이들을 처지를 곰씹어보라.(딛1:16) 그뿐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라야 만이 가능하다고 하셨으며, 거룩한 성품과 행실로 자신의 세마포를 빨지 않은 자들도 불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적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아전인수적인 믿음을 방패삼아 영생을 얻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실은, 교회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 자처하는 이들조차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영생을 미심쩍어 하는 크리스천들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영적 체험이 없어서이다. 세상의 일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과학적인 실험으로 증명되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존재인 하나님과 천사, 사탄과 귀신들의 활동과 영적인 세계에 대한 확신은 영적 시야가 생기고 영적 깨달음으로 알아진다. 이러한 영적 능력은 기도와 말씀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형식적인 예배행위나 종교적인 희생행위로 생기는 게 결코 아니다.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이들이 믿음이 희미하고 모호하며 피상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의 현장에서 팩트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기도와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영적인 눈이 결코 열리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 열에 아홉은 여기에 속한다. 믿음이 모호하고 애매한데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야 죽어 지옥에 가더라도 할 말이 없겠지만, 천국을 믿어 의심치 않은 크리스천들이 심판대에서 지옥의 판결을 받았다면 그 절망감과 당혹함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마 세상에서가장 어리석은 이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알면서도 그 준비를 소홀히 않다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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