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을 먹지 않으면 병약해진다.

in #christianity6 years ago

필자가 어렸을 때 시골에 살 때는 제비들이 많았다. 제비들은 초가집의 처마 밑에 논의 진흙을 입에 물어다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래서 적당한 때가 되면 알을 낳고 부화하여, 둥지 안에 여러 마리의 새끼들이 올망졸망하게 들어가 있다. 어미가 벌레를 입에 물고 날아오면 새끼들은 노오란 주둥이를 커다랗게 벌리고 큰소리로 울어대어, 그 벌레를 자신의 입에 넣어달라고 성화를 대고 있다. 그러면 어미는 새끼 중에서 가장 크게 입을 벌리고 큰소리로 울어대는 새끼에게 벌레를 넣어준다. 사람 같으면 공평하게 넣어주겠지만 짐승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크고 건강한 새끼가 있는 반면에, 자그마하고 병약한 새끼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병약한 새끼가 어미가 될 확률은 극히 적다. 이미 힘이 세고 커다란 새끼가 둥지 밖으로 밀어버려 경쟁자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나려면 어미로부터 벌레를 받아먹어야 한다. 그게 생존의 비결이다.

이는 영적 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영적 양식을 열심히 먹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반면에, 양식을 잘 먹지 않은 사람들은 병약하게 살아가게 마련이다. 영적 양식이란 다름 아닌 기도와 말씀이다. 잘 먹고 있다고? 예배 때마다 설교를 열심히 먹어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그렇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설교를 열심히 듣는다고 말씀을 잘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나라처럼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나라도 드물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기본이고, 새벽기도회도 예배를 드리고 나서 개인기도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들은 설교만 가지고도 수천 번을 상회할 것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라디오나 유선방송을 즐겨듣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설교를 잘한다는 유명한 목회자의 설교방송을 하루 종일 듣는 이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은 양식을 풍부하게 먹어서 건강한 영혼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설교는 성경을 근거로 설교자가 가공을 하고 포장을 해서 먹여주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설교에는 설교자 개인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해석하고 올곧게 잘 적용한 설교라면 영양가가 풍부하겠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변질시킨 설교도 넘치고 있다. 사실 고작 20분도 안 되는 설교시간에, 예화나 자신의 이야기, 정치, 혹은 교회나 교인들의 이야기로 도배하는 설교자도 적지 않다. 말이 설교이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설교시간임에도 정작, 말씀의 양식을 먹는 시간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의 목회철학은 설교시간이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동기를 부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글만 안다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다. 성경의 용어를 모르면 성경사전을 뒤져보면 금세 알 수 있고, 성경구절이 이해가 안 되면 평신도용 주석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지 않는 교인들이 넘쳐나는 게 우리네 교회의 실상이다. 왜냐면 성경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경을 왜 읽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깨닫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 말씀은 읽는 사람의 환경이나 상황, 신앙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날마다 읽고 삶에 적용해야 하는데, 교회의 지도자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동기부여를 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는 양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수십 년간 교회를 다녔어도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크리스천들이 우리네 주변에 허다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병약하며 악한 영들의 포로가 되어 살기 십상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영혼이 건조하고 냉랭하며,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사는 이유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병약한 영혼의 원인은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못해서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으면서 양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지 않고 물만 먹고 나오는 사람과 같다. 그래서 영혼에 능력이 없고 삶에 힘이 없는 이유이다.

또 다른 영혼의 양식은 기도이다. 물론 우리네 교회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기도 하고 기도회를 많이 갖고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새벽기도회를 갖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정도로, 기도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도회에 가는 것과 기도를 하는 것은 다르다. 기도회에 참석한다고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는 학생이 아침 일찍 학교에 간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새벽기도회에 가보면 대부분 1,20분 기도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네 새벽기도회의 풍경이다. 이들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특별새벽기도회를 만들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도했다는 만족을 주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형식적인 기도회에 참석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또한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도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교제의 통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행위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을 마치 중국집 웨이터나 조폭해결사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 분은 당신의 영혼을 지옥에 던져버리실 수 있는 두렵고 떨리는 분이시다. 심판대 앞에서도 중국집 웨이터로 여겨서 당신의 요구사항을 주문하실 것인가? 그래서 아무리 기도를 했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응답이 내려오지 않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갈급한 심정으로 오직 자신만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그러나 세상의 욕구를 채우고 부유하게 해주는 부자아버지로 여기는 자녀라면 가증스럽게 여길 뿐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세속적인 성공을 원하거나 부유하게 살기를 원하거나, 혹은 삶의 지난한 문제가 생기면 기도자리를 찾는다. 그래서 울고불고 하다가 기도가 응답이 오고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문제가 생길 때까지 기도를 쉬기 일쑤이다. 그런 이들에게 내려 줄 하나님의 은혜는 없다.

영혼을 건강하고 지름지게 채워주는 양식은 성령이 주시는 은혜이며, 이는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예배의식을 반복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작 영혼의 양식인 기도와 말씀을 채우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늘 영혼이 건조하며 냉랭하며 삶에 기쁨과 평안이 없다. 그래서 늘 갈급해하고 답답해 하지만, 교회에서 주문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영혼이 건강하고 지름지게 하는 일은,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서 양식을 배부르게 먹여야 한다.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야 영혼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런 이들에게 천국의 보상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에 나가서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면 천국은 자격은 꿈도 꾸지 말라.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질 천국은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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