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있다고?

in #christianity6 years ago (edited)

당신이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떤 이들은 으레 성경에서 나오는 덕담정도로 여겨 심드렁하겠지만, 어떤 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동공이 확대되는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능력을 주신다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슈퍼 울트라 초사이어인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말을 책상에다 붙여놓거나 아예 수첩에다 적어놓고, 틈만 나면 자기암시(?)를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일마다 대박을 터트리며 살고 계신가? 아마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설교 단상에는 이 말씀을 들이대며, 사람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목회자들이 허다하다. 이 설교를 듣고 가슴 뛰는 이들은 새신자이거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그 말씀의 위력이 자신에게 나타나는 일은 별개라는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일 게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곱씹어 보고 싶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당신에게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은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성경에는 당신의 성공이나 탐욕을 채우려는 근거로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설교 단상에서 이 말씀을 들이대고 침을 튀기며 목청을 높이더라도, 원래 이 말씀은 그런 의도나 목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 구절을 주문 삼아 암송하더라도,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하기 전에 기록한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자. 그는 자족의 성품을 통해서 풍부함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궁핍함에도 불편해 하지 않는 비결(능력)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능력의 실체는 자족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말씀의 위력으로 탐욕을 채우고 성공을 추구하는 발판으로 삼고 있다. 자족과 탐욕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보는가? 바울은 자족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데 당신의 탐욕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번영신학을 추구하며 목회성공을 얻으려는 탐욕스러운 목회자들은,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끌어들여서 세속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현혹이 되었다면, 당신은 성경말씀을 앞세워 욕망을 채우려는 목회자들의 덫에 걸려들은 셈이다.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품이다. 그런데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왜곡해서 탐욕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그런 사람은 기뻐하시겠는가?

그렇다면 왜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자족이나 절제와 같은 단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가? 자족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이고, 절제는 욕심을 추구하는 마음을 억제하는 성품이다. 이러한 것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단어들이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사람들의 속내를 알아채고,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한다는 기복신앙을 넣어주며 전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러한 전도방식은 여전히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금과옥조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만 오면, 하나님이 도움으로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여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집사는 장로로 추대 받지 못한다. 무언가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이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보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속내나 목적, 동기 같은 마음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거들떠보지 않으신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는 탐욕을 부추기고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교인들이 적지 않으며, 그런 마음을 부추겨서 교회를 키우고자 하는 목회자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전혀 성경적이지 않는 기복신앙과 마귀적인 번영신학이 교회에서 맹위를 떨치는 까닭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1:2)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것을 죄악시하시는 분이신가? 아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약속하는 말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세속적인 축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선순위의 맨 앞에 올라있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의 영혼이 잘되는 것에 가장 우선시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되는 사람들에 한해서, 세상에서 잘되는 세속적인 축복을 허락하고 계시다. 그러나 영혼이 잘되는 자격이 결여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게 우리가 교회에 나온 이유가 아닌가? 우리가 교회에 나온 이유는 예수 믿고 천국가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천국에 가는 것에 관심이 없이, 세속적인 성공만을 바란다면 하나님의 뜻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적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일도 없다. 목회자가 아무리 목청을 높여 축복을 약속하더라도,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런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영혼에 관심이 없고, 그들이 내는 헌금에만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당신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삯꾼목사에게 속아 재물과 시간을 허비하다가 지옥에 떨어지든지, 아니면 교회를 그만 다니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다. 아마 후자가 그나마 낫지 않겠는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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