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보좌관에게 전화 했는데 쑥스러워서 튀어나온 말이 하필…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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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6일 중독자의 회복일기

요즘 저는 이런 저런 취재에 나서고 있습니다. 제가 구축중인 탐사보도 매체의 창간기사 때문이지요. 오랜만에 취재에 나서니 설렙니다. 제가 다시 우리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쁩니다. 살아갈 힘을 준다고 할까요. 또한 마약을 다시 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매일 마약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받습니다. 어느날은 약하게 찾아오고 어느날은 강하게 찾아옵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이게 중독의 본질입니다. 지금까지 중독자들이 자신의 심경에 대해 침묵만 해왔기에 우리 사회가 몰랐던 것뿐입니다. 그럴때마다 이 투약욕구를 붇들어매어주는 가장 큰 도구는, ‘삶의 의지’입니다.

그러나, 한번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되면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재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의 낙인 효과가 너무나 커서 기존의 업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살기란 좀체 어렵습니다. 아예 자신이 기존에 하던 일과 상관없는 전직을 하는게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그건 그 자체로 개인과 사회에 불행이지요. 개인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버리고 나머지 인생을 완전 새로 살아가야 해서 불행이고, 사회는 그 개인을 재사회화 하는 비용을 들여야 해서 모두 불행이지요. 우리 사회가 유지하고 있는 중독자에 대한 회복 제도와 문화가 과연 최선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취재를 다시 시작했는데, 전화를 할 때마다 쑥쓰러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라는 기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좀 난감하거든요. 며칠전 한 국회의원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경찰개혁과 관련해 제가 추진하려는 보도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것을 논의하기 위해 적당한 국회의원과 보좌관을 접촉해야 했습니다. 일단 제가 평소 점찍어둔 일 잘하는 모 국회의원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아..네. 저기."

한 남성 보좌관이 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구인지 설명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저, 허재현 기자라고 합니다. (약간 침묵) 혹시 저 아세요?"

제가 말해놓고도 어찌나 황당한 문장인가 싶던지. ^^

약간의 침묵 사이에 한 열가지의 고민이 담긴 문장이 머릿 속에서 뒤엉켜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 한겨레 허재현 기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굳이 한겨레를 밝힐 필요가 있나? 내가 새로 창간한 매체 이름이 있는데.'
'그런데 아직 이 매체는 이름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데. 뭐라 설명하지?'
'그냥 한겨레 허재현 기자라고 할까? 근데 법적으로는 한겨레 직원이 더이상 아니잖아.'
'그냥 허재현이라고 밝히면 내가 누구인지 알수도 있지 않을까?'
'허재현이 무슨 기자의 고유명사도 어떻게 허재현 기자라고만 말하냐?'
'그렇다고 마약때문에 해고된 한겨레 허재현 기자라고 말하는 것도 창피하잖아.'
'아, 그냥 전화 끊고 싶다. 앞으로 내 소개할때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하나?'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온 문장.

"혹시 저 아세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보좌관은 "네, 이름 많이 들어봐서 압니다" 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냥 "네. 제가 그 한겨레 허재현기자입니다"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 한겨레 허재현 기자입니다' 라는 말에는 문장의 앞뒤 혹은 중간에 많은 생략된 단어들이 있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그냥 쑥쓰럽게 '하하하' 하고 웃어버렸습니다.
보좌관의 이어지는 대답은 그러나 어색한 긴장을 하고 있던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간 많이 힘드셨지요?"

아... 세상에나. 국회의원실에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는지 묻기보다,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지 내 안부를 물어봐주다니!

"아네.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계속 기자로서 살아가 달라고 응원해주어서 이렇게 조그만 매체를 창간해서 취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실은 경찰 개혁과 관련한 보도 아이디어 보따리들이 있어서 의원실에 보따리좀 풀어볼까해서 전화드렸어요."
"아네. 그럼 저희가 오후 4시에 시간이 되는데 그때 찾아와주시겠어요? 경찰 담당하는 보좌관이 계신데 같이 시간 비워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결국 이날 오후 보좌관을 만나 간단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저의 보도 아이디어는 경찰청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원이 꼭 한번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고 하면서 제 제안을 보좌관이 아주 반겼습니다. 보좌관은 제 아이디어를 꼼꼼하게 메모해 돌아갔습니다. 역시 허재현 감각 아직 안죽었어! 얏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 곳곳에 쏟아지는 햇볕이 제 사지 육신의 피부에도 따뜻하게 내려앉아 부드럽게 매만져 주는 듯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잘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살아야 삶의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한 기쁨이 계속 돼야 중독에 휘둘리는 일상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많은 중독자들이 저와 같은 회복의 과정을 겪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마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중독자들의 삶을 정확하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회복과정의 일기를 오늘도 쓰고 있습니다.

혹시 제 전화를 받으시는 공무원 여러분.
제가 혹시 '저 아세요?'라고 묻거든, '아, 이 기자가 지금 매우 창피해하고 있구나'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시 바랍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늘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투브 허재현 TV를 구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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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영상 관련된 ㅋㅋ 별로 내용에 설득력이 없는것 같아요. 일본이 제재 해서 득볼게 별로 없는데, BTS 때문에 제재 못했다고 하기에 한일 무역적자가 어마어마하죠. 일본 관광객의 25%가 한국이라는데.. 전반적으로 인터뷰가 두리뭉실 한것 같아서 재미가 없어요. (너무 솔직한가요 ㅋㅋ)

아직 방송 초기라 시행착오중입니다. 반드시.점점 좋아질겁니다. 살아남아야 하기에 ㅎㅎ
의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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