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17(일)역사단편12-역사란 무엇인가?역사상대주의

in AVLE 일상2 months ago (edited)

유사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이
'안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얻으려 노력했다.

물론 철학자들도 인간인지라
'역사'에 대한 나름의 주장을 펼쳤다.
그들이 말한는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사였다.

여기서 혼동을 하면 안된다고 했다.

역사학과 역사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의 관심은 무엇인가?

(1)시험과목으로서의 역사인가?

아니면,

(2)기록에 있는 그것(유물, 지명,인명, 사건)이 무엇인가?
실제로 무슨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인가?

만일 시험과목으로서의 역사라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먼저 기억하라.

역사 교과서
: 특정 역사학 [歷史學]이론을 토대로한 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해석본

결국, 역사라는 명사는
'역사학'의 갈고리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역사이론의 결과물이 '역사책'이다!

image.png

19세기로 접어들때,
유럽의 사상계에서 압도적인 인물이 있었다.

G.W.F Hegel(헤겔)

이사람은
'역사' 가 어떤 보편법칙이 구현되어 가는 과정이며,
개별적인 사건이나 인물등을 통해 실현되어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이걸 반대로 심하게 말하면,
특정의 사건, 인물등이 없으면 그 보편적 법칙이 구현되지 않은 것이다.
예를들어, 국가가 아니라 부족모임이 되는 것이다.

헤겔의 사상체계에 반발하는 수많은 사조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현대의 사상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학에서는 '랑케(1795~1886:독일) '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랑케는 역사에 대한 헤겔의 해석이 결국

보편으로부터 개별적인 것의 가치를 규정하는
'연역법적 방식'에 가까운 것이라고 봤다.

소용돌이치는 당대의 유럽상황속에서
헤겔은 보편적 가치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봤지만
랑케는 개별적인 사건들의 독립적인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신학적인 역사관에서
피가 흐르는 인간적인 역사관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랑케의 이런 시각은
철학분야에서
개인의 의미를 자각하기 시작하던 새로운 사조의 흐름과 같은 것이었다.

경험론(귀납법)과 이성주의적 관점(연역법)의
새로운 전개로 이해하는 것이 빠르겠다.

헤겔에 반대한 랑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어떤 보편적 법칙을 미리 설정해놓고 개별 사건을 규정하려 하면
그 개별사건의 실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역사학은 어떤 사건이 원래 어떤것이었는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입견, 편견, 이해관계를 벗어나'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이다.
'역사상대주의(historism,歷史相對主義)'라고 불린다.

이전 포스팅에서,
경험론은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고 했다.

잘 아는것처럼

'상대주의'는
각각의 존재에 대해 그것의 가치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다른 무언가에 의해 가치가 규정되는 것이아니라
그것스스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기준을 들이대면서 개별적인 존재의 가치를 규정하려 들면
그것은 편견이며
과학의 태도가 아니다.
이 사실을 절대 망각하면 안된다.
특히 역사에서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800년대 중반 유럽으로 유학한 일본인 학자들이
랑케의 역사학을 도입하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멋대로 조작을 했다.

근대 역사학의 핵심이
사료를 '실증'하는 것이라고 정하고
'유물'의 발굴을 통해 입증된것만이
역사사실로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소위 '일본식 실증사학'의 탄생이다.

image.png

'선입견, 편견, 이해관계를 벗어나'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랑케-

어떤 보편적 법칙을 미리 설정해놓고 개별 사건을 규정하려 하면
그 개별사건의 실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랑케-

역사를 이해할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19세기 유럽의 사상가들이 자기들 중심으로 역사시대를
구획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개화기 일본 학자들이 도입했고
식민지시대 사학자들과 그 후예들이 교육받았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역사구분 개념이 있다.

씨족―부족―부족연합체―국가형성

이런 구분은 불과 19세기에 인류학이 발전하면서
'L. H. Morgan'이 제안한

'하나의 학설'이라는 것이다.

어딜가나 이런 기준으로 적혀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끼지만
실제로 이 시대를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주도권을 쥔 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믿을 뿐이다.

식민지시대에 일본의 학설을 기초로
사료검증과 유물발굴 및 해석이 진행되었고,
조선의 역사를 구획짓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일본사학자들은 자신들이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에
입각해서 조선의 역사를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구분의 기준과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씨족―부족―부족연합체―고대국가' 라는 틀을 맞춰놓고

자기들이 임의로 정한 기준에 따라
한국의 고대사료와 유물에 대한
소위

'사료의 실증'을 마쳤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주류 사학계에서 써먹는

"조선의 고대사는 100년전에 이미 증명되었다."

라는 자신감의 정체다.

한국의 자주성을 역사에서 지우려했던
일본학자들과 그 제자였던 식민지시대 사학자들이 작성한 문서를 기초로

"100년전에 이미 증명되었다."

라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주도권을 쥔)' 사학계 인 것이다.

Sort:  

Thank you, friend!
I'm @steem.history, who is steem witness.
Thank you for witnessvoting for me.
image.png
please click it!
image.png
(Go to https://steemit.com/~witnesses and type fbslo at the bottom of the page)

The weight is reduced because of the lack of Voting Power. If you vote for me as a witness, you can get my little vote.

 2 months ago (edited)

흥미롭고 지적 호기심이 생기네요.
에이블이 커지면 오프라인 강연도 괜찮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평안한 오후 보내세요..
.

Posted using SteemPro Mobile

상당히 수준 높은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Posted using SteemPro Mobile

Coin Marketplace

STEEM 0.26
TRX 0.13
JST 0.032
BTC 61133.31
ETH 2887.29
USDT 1.00
SBD 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