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배고팠던 한라산 등반기 (성판악-관음사)

in KOREAN Society3 years ago (edited)

아부지가 제주도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1년 2~3번씩 제주도에 가곤 합니다. 전날 먹을 걸 좀 사 놨어야 했는데 터미널 앞에 편의점이 있으니까 아침에 편의점에 들러 먹을 걸 사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아무 준비를 안 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5시 40분쯤 편의점에 갔는데 문을 안 열었더군요. (참고로 제주도 편의점들은 24시간이 아니라는 걸 이날 알게 됐습니다. ㅠㅠ) 버스 기사님한테 언제 출발하냐고 여쭤 보니 바로 출발한다고 하셔서 500미리짜리 물 2병만 가지고 버스를 탔습니다.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해서 먹을 걸 사려고 보니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만 가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컨디션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첫 2시간 동안은 엄청 달려서 사라오름 쪽으로 갔다가 다시 나왔는데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배고픔의 고통이 그렇게 큰 줄 전혀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떠 오를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무작정 누웠습니다. 10분 정도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오르기 시작하는데 정말 한 발자국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말 한 발자국 옮기고 쉬고, 한 발자국 옮기고 쉬고를 반복한 끝에 결국 백록담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뭘 먹는 사람도 많았고 마지막 백록담에 오를 때는 사진 찍으시는 할머니 한 분과 같이 올랐는데 먹을 거 있으면 좀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진 올라오는데 입 밖으로까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사진 찍어주며 올라갔는데도 말이죠. ㅎㅎ

백록담을 배경으로 할머니 사진을 찍어 드리고 전 바로 관음사 코스로 향했습니다. 관음사 코스가 성판악 코스에 비해 짧긴 하지만 경사도 심하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코스라 더 지치더군요. 이러나 저러나 배고파서였겠죠. 중간에 휴게소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이 사발면을 먹는데 그 냄새 때문에 미치겠더라고요. ㅎㅎ 결국 하산사자마자 관음사 건너편 휴게소에 가서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핫브레이크를 그 자리에서 2개나 사서 먹었습니다. 약간 한이 됐었나 봅니다. ㅎㅎ

어쨌거나 진짜 죽을 것 같았지만 물 2병만으로 한라산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론 아무리 낮은 산에 가더라도 물도 충분히, 먹을 것도 충분히 준비해서 갑니다. 어여 족저근막염으로부터 해방(?)돼서 다시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IMG_3931~photo.JPG

B11533AA-3F0F-4E14-9575-E6CE4A7620F1.jpg

IMG_2626.JPG

IMG_2628.JPG

IMG_3944.JPG

IMG_3951~photo-full.jpg

IMG_3957.JPG

IMG_3958.JPG

6ADF0966-252A-4F84-82E9-D81C55FA56AA.jpg

IMG_3965.JPG

Sort:  

어려운 산을 물두병으로 등반하셨군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진짜 고생했어요. 다시는 비슷한 경험도 해 보고 싶지 않습니다. ^^;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2
JST 0.033
BTC 70434.55
ETH 3761.18
USDT 1.00
SBD 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