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우리는 흔히 학력만능주의를 문제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이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인 '시험능력주의'가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병리라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에서 SKY 대학, 판·검사,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은 단순한 직업적 성공을 넘어 사회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상징한다. 문제는 이러한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자신이 획득한 지위와 자원을 자녀에게 다시 이전하면서, 교육이 계층 재생산의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식 시험능력주의가 단순한 선발 방식이 아니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그 뿌리는 조선시대 과거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험 성적이 곧 능력이며, 순위를 매기는 시험이 가장 공정한 선발 방식이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깊게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과연 시험 점수가 인간의 능력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시험 경쟁의 결과가 정말 공정한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사례를 소개하며 학력주의와 능력주의가 현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학력병'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에 따르면 학력병은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라기보다 입시 경쟁의 전쟁터가 되었고, 학생들은 교육의 본질보다 선발 경쟁에 매몰된다.
입시제도 역시 완전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 수시 비중이 높아지면 비교과 활동과 각종 스펙을 쌓는 데 유리한 경제적 계층이 혜택을 얻고, 정시 비중이 높아지면 장기간 시험 준비가 가능한 재수생이나 사교육 수혜층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영재학교와 특수목적고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적 이상보다는 경제적 자원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저자가 비판하는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단순히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결과를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포장한다. 시험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결과로 이해하게 되고, 실패한 사람들은 구조적 문제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게 된다.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법학자 마코비츠 역시 능력주의가 불평등의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안으로 기회의 다원화, 특권의 제한, 가치의 다원화, 노동의 인간화, 숙련 중심 사회의 구축, 사회적 연대의 회복 등을 제안한다. 교육 분야에서는 대학 서열 체제 완화, 수직적 위계 구조의 극복, 그리고 능력 경쟁보다 지혜와 시민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강조한다.
다만 책의 후반부는 문제 제기에 비해 대안 제시가 다소 원론적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입시 경쟁과 학벌 구조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능력주의가 가진 순기능이나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시험과 능력, 그리고 공정성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의 교육과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