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 과거에 대해서

in #kr-diaryyesterday

오늘은 오후 늦게 연구소에 가려고 했다. 프린트를 좀 하고, 미뤄둔 메일도 마저 보내고, 금방 끝내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구실에 도착하니 마침 친구들이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나 할까?" 했던 것이 결국 두세 시간이 되어 버렸다.

최근 쓰고 있는 논문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수학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역시 연구나 관심있는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즐겁다. 혼자 붙잡고 고민하던 문제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다만 수학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내 과거 이야기도 조금 하게 됐다. 예전의 일들이라 이제는 크게 숨길 것도 없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숙소에 돌아오니 괜히 신경이 쓰인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 '괜히 말했나?'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사실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특별한 비밀도 아니고, 숨겨야 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꺼낸 뒤에는 늘 조금은 불안해지는 것 같다. 상대는 별생각 없이 들었을 수도 있는데, 정작 말한 사람만 혼자 복기하면서 '이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며칠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조금 그런 기분이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편하게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그 일이 이제는 현재의 나를 흔드는 상처라기보다 하나의 경험이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이야기를 하고 나면 괜히 머쓱하고, '너무 많이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숨기고만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나는 조금은 벗어난 것일까.

가끔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때도 있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나는 결국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당시의 나는 그 나름의 고민과 가치관 속에서 최선을 다해 결정했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나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이야기였는데, 이제는 하나의 지나온 시간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기억이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여전히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조차 예전과는 다르다. 과거를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한 번쯤 느끼는 머쓱함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회복이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면, 나도 조금은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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