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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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아~ 늘 잘 살제? ㅎㅎ
내 장가간다~^^

느닷없는 카톡이 왔다. 내친구 오리(엉덩이가 톡 튀어나와서)가 지 장가간다고 오랜만에 톡을 했다. 오리는 내 대학 노래써클의 동기이자, 내가 여지껏 베프 그룹에 넣어둔, 유일한 “남자 사람 친구”다.

나는 뚱뚱했던 적이 없는데, 2학년 여름방학때, 뷔페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 7킬로 정도가 불어버렸었다. 오리는 그 때부터 나를 꿀꿀이라 불렀다. 누가봐도 그냥 약간 살집이 생긴 정도였는데, 오리가 그랬다. 너는 어떻게 한 짐이냐? 여자가 말이지...

우리 동기 중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잘하기로 치면 오리만한 놈이 없었다. 아이들을 그렇게 놀려댔다. 피부가 까만 아이를 연탄이라 부르며 놀렸고, 착하디 착한 같은 과 동기한테는 축구선수라 부르며 놀렸다. 몸이 축구선수라며... 내가 꿀꿀이 별명 싫다니까 한 때는 나를 유도선수라고 불렀던 적도 있다. 나쁜놈.

우리 모두 결혼하고 애낳고 하는 동안, 오리는 피터팬 같았다. 어른이 되지 않고 그렇게 우리들의 친구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여지껏 우리들을 놀리더니, 장가 간다고 연락이 왔다.

대학 졸업할 때 쯤(정확히 내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시절에), 내가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할 때도 같이 만나 그들도 친구가 되었다. 내 글에서 자주 언급한 나의 베프인, 미국사람과 결혼해 지금 상하이에 살고 있는 친구와도 같이 만나 친구가 되었다. 오리는 그아이를 보고 여자최민수 라고 불렀다. 나쁜놈. 심지어 최민수의 미국인 남편과도, 막걸리 사태(?) 이후 친구가 되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그렇게 그 아이는 내 인생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내 사람이다.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남자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오리와는 그 수많은 밤을 술과 노래를 하며 같이 지냈지만, 단 한 번도 썸을 타본 적이 없다. 왜냐면, 오리는 여자친구가 없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변태오빠한테 빠져 그렇게 짝사랑을 할 때에도, 오리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여기서 변태오빠란, 변씨 성을 가진 우리 한기수 선배로, 내가 써클에 들어가자마자 뿅~ 반해버린 후, 또 바보같이 4년 내내 짝사랑만 하던,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다가, 황망스럽게도 우리 동기 여자애랑 결혼해 버린, 매정한 오빠ㅠ.

워낙에 많은 밤을 같이 써클실에서 보냈기 때문에, 젊고 혈기 왕성하던 우리에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둘이 사고칠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이성은 취중농심(醉中弄心)을 막았다. 왜냐면 친구로서 완벽했으니까.

그런 오리가 장가를 간단다. 남사스럽다 오리야. 이제와서 뭔 결혼이냐 결혼이. 그냥 빨리 애나 만들어라... 고 농담은 했지만, 진심으로 기뻤다.

동기 중 오리가 연탄이라고 부르던 여자아이가 졸업하고도 몇 년 후에 우리 동기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여기 오고 나서도 줄곧 모임을 하고 있고, 내가 한국에 가게 되면 꼭 모임을 만들어서 아직도 모이고 있다. 나는 과 친구가 없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는 시건방짐을 온몸으로 풍기며 다녔고, 또 미안하지만 공부하고 장학금 받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그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써클은 달랐다. 거기서 우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변태 오빠한테 빠져 있었지만, 연애도 많고, 이별도 많았던 낭만의 시절이었다.

노래 써클마다 그런 징크스가 있는데, 한 기수가 노래를 잘 하면, 그 다음 기수는 또 노래를 못하는 기수들이 들어온다. 우리 기수가 노래를 못하는 기수였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노래를 못하는 아이라, 써클활동 2년동안 발표회 할 때마다 여중(여성중창)만 했다. 나도 듀엣도 해보고 싶고 솔로도 해보고 싶었는뎅ㅋ

발표회는 보통 여성중창, 남성중창, 트리오, 듀엣 솔로, 그런 패턴으로 진행이 되다가 마지막에 떼창을 하며 끝이 나는데, 오리와 내가 같은 화음을 넣으며 불렀던 그때의 발표회가 기억이 남는다. 그 때 우리가 불렀던 엔딩 곡은 바로 이 곡이다.

오리야. 난 니가 그렇게 여자친구를 바꿀 때 니가 너무 부러웠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결혼을 안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러고 보면 인연은 따로 있나봐.
니 설마 스물몇살 짜리랑 결혼하는거 아니지? 응응?

뭐라노...!
내가 무슨 성추행범도 아이고..
아이다... 내보다 네 살 어리다. 나이 많다.

웅 그러면 결혼식 기다리지 말고 빨리 애부터 만들어라.

안그래도 걱정된다.
나 죽기 전에 애 대학이나 보내겠나.

그런 걱정 하들말고, 얼른 만들어 낳아라.
시간이 없다!!!!

ㅋㅋㅋㅋㅋ

웨딩사진을 보내준다.

하이고.. 우리 오리는 여전하다. 우찌 하나도 안늙었냐?

뽀샵이다.ㅋㅋ

그러고 보니 니 키높이 신었제??

표 마이 나나?

어!ㅋㅋㅋ

사진은 나한테 처음 보여주는 거란다. 기특하다 내친구.

오늘 하루종일 웃음이 난다. 사랑하는 내 친구 오리야... 행복하게 잘 살아.
5/28 결혼 이라는데, 부담갖고 올 생각 하지 말란다. 결혼하고 필리핀에 둘이 올거라고.
내가 그럴 수야 없지. 나 혼자라도 간다고 했다.

오리 결혼식에 가면 내가 눈물이 날것 같다. 주책도 없이. 나 왜이러니. 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선수 시상식에서 태극기 올라가고 애국가만 나와도 눈물이 난다. 일제 시대 때 태어났으면 독립운동을 했지 싶다. 박근혜 탄핵되는 날,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고 선언했을 때 얼마나 눈물이 나든지.. 그모습을 보고 우리 신랑이, 아니 조국이 해준게 뭐가 있다고 나라 걱정에 눈물을 흘리냐고. 돈 벌어다 주는 자기 위해 좀 울어달라고...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너만 보면 화가 나지 눈물은 안난다.. 고 했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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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우정이에요..결혼식까지는 남사친도 오고 햇었는데 다 결혼하니 카톡에나 주소록에나 남아있고 대화가 없네요 ^^ 여사친도 못챙기는데 하믄서 그리된듯요.
북키퍼님 의리 최고 ~곧 한국 오시겟어요^^

연탄 때문에 우리가 다 같이 만나는 듯요. 한국은 곧 가게 될듯요

글에서 친구에 대한 애정과 그를 추억하는 행복이 묻어납니다. 저도 친구들과 오래오래 연락하고 지냈으면 좋겠네요.

어린시절.. 그시절의 친구들은 그렇게 애정하게 됩니다. sleeprince 님의 친구들과도 오래 연락하기를요^^

정말 아련한 추억이~. 이젠 이런 글 쓰지 맙시다 ^^ 잘 읽었습니다.

하하. 그럴께요 이젠 이런글 안 쓸께요. 감사해요^^

재미나게 읽어 내려간 우정 이야기로 꾸몄지만 이 글의 핵심 문장은 마지막 한 줄인것 같습니다 ㅋㅋㅋ

너무 재미나서 한 농담이구요~
저는 생각보다 이른 결혼에 서운해서 심통 날 뻔한 베프 여사친이 있었죠. 정작 학창 시절엔 그 아이가 저를 좋아했고 전 다른 친구를 7년동안 좋아했지만 ㅋㅋ 몇 시간을 지치지 않고 얘기나눌 수 있던 그 녀석 잘 살고 있겠죠? ^^

농담이라고 대댓글을 남기신 deepbleu님 첫번째 댓글로도 충분히 그마음 아니까 걱정마셈 ㅎㅎ 그친구 연락해 보세요. 아마 그 친구도 deepbleu님을 추억하고 있을거예요.

추억은 방울방울하네요. 찡합니다. 리스팀해요 ^^

아효.. 이런 글을 리스팀하다니.. 감사해요. 추억은 방울방울... 오늘밤 저를 깨우네요^^

아효... 전 이런 글이 너무 좋아요. ^^

힝....고마워용 ㅠ

저는 고딩때부터 만나는 여사친 둘이 있는데 지금 둘다 둘째를...ㅎㅎㅎ여사친 한명이 이제 일주일 후면 둘째를 배고 스페인에서 날라오네요. 글만 봐도 너무 좋은 사이로 보여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정확한가요?ㅎㅎㅎ

저의 글을 안읽으셨군요. 실화입니다. 밥잘사주는 예쁜누나

오리너무귀여운별명이네요... 꿀꿀이도~ 저는 얼마남지 않은 밧데리를보고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ㅠㅠ

대사가 딱 제 어릴때 쓰던 신라 지역의... 그중에 분지 주변에서 많이 쓰는 어투인데요? 혹시... 대화체가 재미있네요. 각설하고 노래도 쫌 하시는군요^^ 확실히 못하시는게 없군요. 친구분의 결혼을 태국에서도 진심을 담아 축하합니다.^^

흐흐흐 노래 못해요.. 저는 갱상도 여자랍니당. 오리에게 전해드리겠어요!!

북키퍼님 글에서는 사람냄새가 나요. 저는 대학때 친했던 남자사람친구들과 연락이 하나도 안돼서 그런가 북키퍼님의 진한 우정이 정말 좋아 보입니다!
제가 또 한 눈물 하는데요.. 남 결혼식가서 부모님께 인사하는 타이밍에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주책맞게 그렇더라고요.. ㅋㅋ 아 그리고 북키퍼님 고향이 경상도 이신가 봐요~~ 친근한 말투라서 반가워요~~

네 .. 저는 경상도 여자예요. 사투리 작렬 ㅋㅋ

저도 경상도여자ㅋㅋ

추억 이야기들이 진짜 마음을 울리네요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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