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예찬 3

in #kr-diary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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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에 비해 일찍 집을 나섰다. 그 바람에 한 시간 정도가 비어서, 집 다음으로 편한 공간인 카페를 찾았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드는 카페는 아직 찾지 못한 터라, '집 다음으로 편한 공간'이란 특정 카페를 뜻하진 않는다. 그냥 카페라는 공간이 대체적으로 편하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약속이 집 앞이었기에 그 정도 시간이면 그냥 집에 갔다가 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뭔가 귀찮았다. 고양이들에게 나를 그리워할 기회를 잠시 주기로 했다.

출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딸기잼을 넣은 수제 요거트를 주문했다. 보통 주는 대로라면 개인적으로 너무 달다. 그래서 잼을 적게 넣어달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딸기 잼 외에 다른 옵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집에서 요거트를 만들 때도 꼭 딸기 잼을 곁들인다. (요즘은 게을러져서, 집에서 요거트를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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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예쁘지만, 개인적으로 그래놀라나 오트밀 등이 들어가지 않은 깔끔한 요거트가 좋다.

그냥 약간의 시장기만 달랠 생각이었는데, 카페 직원이 빵, 그리고 발사믹 식초를 넣은 올리브 오일을 서비스로 주는 바람에 배가 부른 상태로 카페를 나왔다. 게다가 빨리 일어나서 바닷가를 걸을 생각이었는데, 문제의 직원이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본의 아니게 가게를 보게(?) 된 셈이다.

먹을 계획이 없었던 빵을 먹은 반면 계획했던 산책은 무산되어서, 결국 의도했던 비싼 저녁을 먹을 입맛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이 약한 편이 절대로 아닌데도, 카페에서 서비스로 주는 음식은 좀 싫어도 먹는 편이다. 안 먹으면 미안할 것만 같다. 게다가 그런 음식은 아무리 맛이 별로라고 하더라도, 뭔가 장점이 하나는 있다. 따뜻하거나, 예쁘거나, 부드럽거나.

요즘은 요거트나 탄산수, 또는 우유에 생딸기로 만든 청을 넣은 음료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어느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도 한다는데, 어쨌든 최근에 찾은 개인 카페들에선 항상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미세먼지가 한창 심할 때 그나마 가장 나은 곳으로 잠시 피난을 갔었는데, 그곳의 어느 프랜차이즈에서는 생딸기 청을 우유에 넣은 것을 캔 음료로 즉석 제조해주었다. 거기 있는 동안은 실컷 마신 것 같다.

사실 나는 우유를 그냥은 마시지 못한다. 이상하게 비위에 좀 거슬려서다. 그리고 핑크색 색소를 넣은 시중의 딸기 우유도 싫어한다. 그나마 생딸기 우유 음료가 흔해져서 '딸기 우유'라는 것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카페 음료에 들어가는 생과일의 종류는 매우 많지만, 딸기야말로 딱 카페 메뉴에 맞는 과일이 아닐까 한다.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고, 달콤하고 색상이 화사하다. 또한 음료뿐 아니라 디저트를 예쁘게 꾸미는 장식 효과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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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딸기는 끝물을 넘어 완전히 끝난 것 같다. 최근에 배송을 받은 딸기는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입에 넣으면 겉이 흐물거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딸기를 여름 과일로 인식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겨울과 초봄이 제철인 듯. 올해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딸기를 무척 자주 사먹었다.

작은 화분에 딸기 식물을 키워본 적도 있는데, 수수한 흰 꽃을 피운 후에 마치 스커트처럼 작은 딸기가 열리는 것도 봤다. 다른 화분보다는 관리가 까다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20세기 서양의 기록들은 다양하게 딸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가든 파티라든가 기숙학교의 기념식 등, 야외에서 펼쳐지는 모임에서 딸기와 크림의 조합은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간단히 컵에 딸기와 우유 생크림을 넣은 것을 말한다. 그 후 대량으로 생산되는 과자 등이 늘어나면서, 간단한 다과회 정도의 용도로 딸기를 그렇게 대량으로 제공하는 일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물가 상승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생과일이니까.

사실 딸기는 중세부터 큰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는데, 기독교의 '의(righteousness)'를 상징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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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가 그려진, 은근히 흔한 중세의 그림

보통 세속적인 의미에서 '의', '의로움'이라고 하면 의협심과 정의로움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기독교 성경에서의 '의'는 거의 구원의 조건 혹은 구원을 받은 그 상태를 가리킨다. 적어도 바울의 서신에서는 그런 대목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딸기는 '완벽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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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화가 보쉬(Hieronymus Bosch)의 딸기 그림

딸기를 좀 다르게 나타낸 예도 있다. 보쉬의 작품 세계에서, 딸기는 가장 육체적인 과일이다. 아담과 이브를 죄로 이끈 사과와 나란히, '세속적 즐거움'의 대표주자로 딸기를 그려냈다. 보쉬의 작품에서 딸기는 단순히 세속적인 것을 넘어서 오컬트적이기까지 하다. 가치의 전복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딸기가 그만큼 다양한 느낌을 주는 과일이라고 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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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가장 어울리는 과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딸기만큼 향과 맛, 과육의 식감까지 다 마음에 드는 과일도 드물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체로키 부족의 신화에서도 딸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인류 최초의 남자가 인류 최초의 여자와 싸워서, 여자가 그를 떠나게 된다. 남자는 창조주에게 도와달라고 절규하고, 신은 여자의 발걸음을 늦추기 위해 먼저 구스베리, 그 다음에는 허클베리를 자라나게 한다. (참고로 허클베리는 '허클베리 핀'의 그것인데, 블루베리와 비슷한 종류에 속하며, 미국 아이다호 주를 대표하는 과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신은 천국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서 자라나고 있는 과일을 여자의 발치에 던진다. 그게 바로 딸기다. 여자는 하트 모양의 빨간 과일에 매료되어서, 남자를 떠나기 위해 싼 짐을 풀어버리고 딸기를 담는다. 딸기를 담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만이 살아나고, 싸운 것을 까맣게 잊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말이다.

딸기는 제철이 아닐 때는 확실히 맛이 떨어진다. 심지어 청이나 잼으로 만들어도, 제철이 아닌 딸기를 사용하면 차이가 느껴진다.

(과일청을 취급하는 '정담'의 운영자 @newiz님에 따르면, 제철이 아닐 때의 딸기는 너무 금방 발효되어서 청으로도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집 안팎으로 카페 생활을 장식해준 딸기에게 잠시 작별을 고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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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화곡동의 작은가게
없는정성 듬뿍담네

작은악마 들어가면
작은천사 없어지네

사람들을 홀린다는
마법식물 넣어주며

그곳으로 오이가고
이곳으로 아이오네

그곳에서 일어나는
그것의칼 날을가네

아 진심 현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옥갬성이지만 굿

ㅋㅋㄲㅋㅋㅋㅋㅋ 프린팅해서 매장에 걸어놓고 싶네 ㄹㅇ ㅋㅋㅋ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오늘 세로드립도 애틋하네ㅎㅎ
고마워 젬형ㅎㅎㅎ
나도-*

안했다고 아오

세로드립 꿀잼-*

진짜 한번 해봐야겠다 ㅋㅋ

운다
오늘도 운다.
그저 울뿐
그래서 울었다.

그딴 프사 달고 그딴 말 좀 쓰지마 ㅋㅋ

타임투다이

-데쓰-

건너편 현관의 발소리
또각 또각 또각

나에게 오는 발소리
또각 또각 또각

어느덧 뒤까지 왔네
또각 또각

뒤를 볼수 없는 지금

더이상 발자국 소린 안들리네

와 이 컨셉으로 자주 써봐 ㅋㅋㅋㅋㅋ

-프리스트-

희개하는 이순간
나의 죄는 용서받네

두번다시 안할악행
그러므로 용서받네

용서의길 용사의집
작은천사 작은악마

알고보니 단죄의꿈
나는결국 엔드게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세로드립도 애틋하네ㅎㅎ
고마워 젬형ㅎㅎㅎ
나도-*

그딴거 안했다.

안쓰러운..뉴형

카페가면 거의 커피라...
요거트는 신선하네요. ㅎㅎ

딸기는 좋아하는데... 밍밍한 딸기는 너무 싫어요. 그래서 살 때 고민하게 됩니다.

집에서도 기계, 핸드드립 다 드신다고 하신 것 같은데 커피 엄청 좋아하시네요. 저는 한동안 안 마시다가, 요즘 들어서야 하루 1잔 정도 마시는 게 수면을 방해하진 않는 상태가 됐네요. ㅋㅋ

딸기는 싱거우면 정말 아쉽고, 흐물거리면 더 싫긴 해요. 요번에 산 딸기는 겉은 정말 멀쩡했는데 막상 먹으니 겉이 무너진 느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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