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의 영어 이야기] #05. 영어는 왜 이리 안 들릴까? - 2편

in #kr-english6 years ago

연필 영어 스팀.jpg


아는 단어가 많아도 영어가 잘 안 들리는 이유는 숨어 있는 복병들 때문이다. 지난 시간에 이어 마지막 세 번째 복병에 대해 알아보자.


세 번째 복병: 우리말이 되어 버린 영어 단어


아는 단어도 잘 안 들리게 만드는 세 번째 복병은, 우리말에 스며든 영어 단어들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어의 범람에 몸살을 앓았던 우리말이 이제는 영어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중에 영어로 된 어휘가 꽤 많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영어단어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다. 고유명사라던가, 그 단어가 이미 우리말에 고착화된 경우가 그렇다. '사진기'라는 말 대신 대부분 '카메라'라고 쓰는 것처럼 말이다. 평소에 영어단어를 마구 섞어서 쓰면 아는 단어가 많이 늘어나니까 영어실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듣기 영역에 있어서는 이것이 마이너스가 된다. 앞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단어는 ‘우리말화(化)된 발음’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원어민이 실제 사용하는 발음’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당연히 영어 발음이 낯설고, 잘 안 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를 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예가 바로 milk와 help이다. milk는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미을ㅋ/미여ㅋ]처럼 발음이 되고, help도 [헤얼ㅍ/헤어ㅍ]라고 발음된다. L의 발음이 우리말 ‘ㄹ’과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카페에 가서 "미을ㅋ 티 주세요."하지 않고, 홈페이지에서 "헤얼ㅍ 데스크"를 찾지 않는다. 이렇게 '밀크'와 '헬프'로 발음이 굳어지게 되면 원래 영어단어의 발음은 너무나 낯설게 돼버린다.

우리는 Santa Claus를 ‘산타 클로스’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종종 [새너 클러스]처럼 발음한다. 우리가 ‘카메라’라고 부르는 camera도 영어 발음은 [캐므러]이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경우는 AP 뉴스를 듣다가 나온 [이너넷]이었다. 도대체 이너넷이 뭘까? innernet? 인트라넷 같은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인터넷(internet)’이었다. 우리 동네 미국인 아저씨는 ‘커뮤니티 센터(community center)’를 [커뮤니리 세너]라고 말한다.


새너 클러스? 이너넷? 커뮤니리? 세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래에 우리말에서 자주 쓰이는 영어 단어 몇 개를 가능한 원어 발음에 가깝게 적어봤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음과 얼마나 다른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영어 발음을 우리말로 옮기는 건 한계가 있다. r이나 f를 표기할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발음보다는 좀 더 원어민 발음에 가깝게 쓰려고 노력했다. 가능하다면, 어차피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인터넷을 사용 중일 테니 영어사전 홈페이지에 가서 아래 단어들을 검색해보고 발음도 들어보기 바란다. 각 단어에 Daum 영어사전 발음을 링크해놨으니 바로 클릭해도 좋다. Shift 키를 누르고 클릭하면 발음이 새 창으로 뜬다. 꼭 발음을 들어보자.)


1. 래바이 발음 듣기
종교를 잘 모르더라도 <탈무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우리말로는 ‘랍비(rabbi)’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래바이]이다. '유대교의 율법학자'를 뜻한다.

2. 커롸리 발음 듣기
일본에서 넘어간 단어다. 우리말로는 ‘가라테(karate)’라고 하며, ‘족발당수’에도 나오는 ‘당수’라고도 한다.

3. 피음 발음 듣기
믿기진 않겠지만, 우리말로는 ‘필름(film)’이다. 영어의 'L'과 우리말 'ㄹ'의 발음이 얼마나 다른가를 확연히 보여주는 단어다.

4. 어르씨 발음 듣기
미국에서 이 차 광고를 처음 봤을 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한참 들여다봤다. 우리말로는 ‘오디세이(Odyssey)’라고 한다.

5. 미-러 발음 듣기
거울이 아니다. 흔히 우리가 ‘미터기’라고 부르는 ‘계량기(meter)’이다. Parking meter [파킹 미-러]는 ‘주차요금 계량기’, water meter [워러 미-러]는 ‘수도요금 계량기’.

6. 페로우 발음 듣기
처음 이 단어를 접하고 p가 아니라 f 발음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에 뭔가에 속은 듯 억울하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pharaoh)’라고 한다.

7. 야아ㅌ 발음 듣기
역시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말로는 ‘요트(yacht)’이다.



이렇게나 복병이 많다면 도대체 영어 듣기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려서 외국에서 살았더라면, 혹은 어려서 원어민 선생님한테 영어를 배웠더라면 영어를 듣는 귀가 뚫렸을 것이다. 옆에서 시시때때로 제대로 된 영어 발음을 여러 차례 들려주고, 단어의 뜻도 알려주고, 우리의 틀린 발음도 고쳐줬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제대로 된 영어 발음을 찾아서 듣고, 단어 뜻을 공부하는 건 굳이 외국에 나가거나 비싼 어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가능하니까 말이다. 이불 밖을 벗어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내가 했던 ‘영어 듣기 실력 향상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1. 무작정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들은 내용을 공부한다.


듣기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주구장창 듣기만 해야 할 것 같지만,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게 그 내용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저 하염없이, 24시간 내내 영어를 듣기만 한다고 듣기 실력이 확 늘지는 않는다. (늘 수는 있겠지만, 느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 스팀잇에서 60 이후로 명성도 높아지는 속도라고나 할까.) 공부하지 않고 듣는 것은 내 귀에 BGM처럼 흘러갈 뿐이다. 한 마디로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다. 공부를 딱히 하지 않았는데도 영어 채널을 계속 틀어놨더니 어느 순간 영어가 들리더라, 하는 건 이미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안에 쌓인 실력이 상당한 사람 혹은 영어를 듣지 않는 다른 시간에도 영어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 즉, '듣기'와 '공부'를 동시간에 병행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듣기'와 '공부'가 연결되는 사람들 얘기라는 거다.

기본 영어 실력이 쌓여있지도 않고, 하루에 네댓 시간씩 읽고 말해가며 영어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어만 틀어놓지 말고 '듣기'와 '공부하기'를 병행해야 한다. 그냥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귀가 트일 수 있다.

들은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는 건 이런 뜻이다. 뉴스가 됐건 드라마나 영화, 혹은 팝송이 됐든 간에 자신이 들은 것을 해석해보고, 단어를 찾아 외우고, 내용을 이해하고, 이해한 걸 바탕으로 다시 또 한 번 들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듣기 실력이 쌓인다. 아는 만큼 들리기 때문이다.

들은 내용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다음 편쯤에 정식으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2. 모르는 단어는(아는 단어 더라도) 항상 사전을 찾아보고, 반드시 발음과 강세까지 확인한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때는 철자나 뜻만 확인하지 말고, 반드시 발음과 강세를 확인한다. 사전을 찾아볼 때는 눈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발음기호는 외계어처럼 생겨서 그걸 봐도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감이 잘 안 오기 때문이다. 또한 원어민의 발음으로 들어보든 자신이 말해보든 간에, 직접 발음을 들어서 자신의 귀에 그 단어를 익숙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가능하면 꼭 단어 발음을 들어보고 본인이 직접 말해보는 과정까지 거치는 게 좋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전자사전이나 인터넷 사전은 발음까지 들려주는 기능이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yacht의 뜻이 ‘요트’구나, 하고만 넘어가면 미국인이 [야아ㅌ]라고 말했을 때 십중팔구는 못 알아듣는다. 자신이 이미 아는 단어 더라도 한국식 발음만 알고 있다거나 그 단어의 강세를 모른다면 반드시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기르자. 사전을 찾아보는 작은 습관이 내 막귀를 뚫는 강력한 드릴이 될 수 있다. 내 발음이 원어민 발음처럼 바뀌는 건 좀 더 어렵겠지만, 듣기 실력은 확실히 향상될 것이다.

[불이의 영어 이야기] 지난 글들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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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영어 이야기] #01. 영어를 잘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불이의 영어 이야기] #02. 영어를 잘 하는 비결

[불이의 영어 이야기] #03. 문법, 나만 어려운 거니?

[불이의 영어 이야기] #04. 영어는 왜 이리 안 들릴까?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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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냥 얻어지는건 없나봅니다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오는 거죠. 문제는 그 노력을 얼마나 재미있게 할 수 있느냐인거 같아요.

어흑... 정말 어려워요.ㅠㅠ
독해는 조금은 하는데.. 왜이렇게 귀에 안들리는지...
결국 공부만이 답이군요...

다음 편에 연음에 대해 써보려고 하는데요. 알파벳 하나의 발음(예를 들어 f, r, th, L 등등)도 어렵지만, 단어가 됐을 때, 뒷 단어와 연결이 될 때는 연음이 돼서 발음이 또 달라져요.
그래서 눈으로 보면 다 아는 것도 귀에 잘 안 들리는 거죠.
음.. 역시 공부만이.. ^^;;

ㅎㅎ 재밌어요^^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넵. 불금 즐겁게 보내세요. :)

야아ㅌ 는 정말 예상 못한 답이 ㅎㅎ. 재밌게 읽고 갑니다.

저도 처음 듣고 어이없었답니다. ㅎㅎㅎ

다 아는내용이네요. 그런데 다 안들리네요 ... 흑흑

이제 여기에서 배웠으니 앞으론 더 잘 들릴 겁니다. ^^;

다시 사전을 꺼내야겠어요~ 브리님~~~

좋은 생각이십니다. :)

하나 더 추가요~ 라푼젤 ㅋㅋㅋㅋ
친구가 이 발음을 영어로 듣고 심히 충격받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저는 워낙 아이볼때 그 영화를 원어로 많이 들어서그런지 라푼젤이 더 어색하더라구요~
정말 듣기만 한다고 되는건 아닌거 같아요. 내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따라야 결국은 나에게 쉬운 단어가 되는듯합니다. 요즘 브리님 글읽고 어학공부좀 빡세게 다시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맘처럼 안따라주는게 단점입니다만 ㅜㅠ.

그렇군요, 라푼젤. ㅎㅎㅎ
맞아요. 고유명사들도 발음이 어렵죠. 특히 오로라 공주. ㅎㅎㅎ

음...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군요...
공부, 공부,... 이제 공부좀 그만하고 싶어요 ㅠㅠ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게, 재미있으면 좋겠는데요. ^^;

브리님 굿모닝이요 ㅋㅋㅋ 히히...이러나저러나 공부 ㅋㅋㅋ^^ㅋㅋㅋ

이러나저러나 공부 ㅎㅎ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즐겁지 아니한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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