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본의 역사왜곡

in #kr-history6 years ago

안녕하세요^^
올바른역사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joey0513 입니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왜곡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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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본'이란 이름도 한국에서 배워감

‘일본(日本)’이란 이름은 삼한(三韓)사람들로부터 유래
( 삼한(三韓) - 고조선의 진한 마한 변한.)


"요시다도고(吉田東伍)"가 펴 낸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과
명치(明治) 33년 1월에 발간된 역사잡지(歷史雜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일본(日本)’이라는 나라이름은 원래 한국사람들이 일찍부터 써온 것인데,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나라(일본)의 나라이름으로 정했다.
    (伴信友)

  • '日本'이라는 이름은 삼한(三韓)사람들이 먼저 쓰던 것이다.
    (星野恒)

*'日本'이라는 국호는 원래 한국인들이 쓰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일본의) 국호로 됐다.
(木村正辭)

메이지(明治)시대의 석학(碩學)들이 입을 모아 증언(證言)하고 있듯이
"일본(日本)" 이라는 이름은 한민족이 오래 전부터 써 왔다.
그런데 당시 백제의 아래나라이던 일본 열도 사람들이
백제가 문을 닫고 나서 일본이 독립한 때부터 "일본"으로 국호를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주: 원래 일본의 왕족은 마한,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건너간 사람들.

일본으로 건너간 고대 한국인들은 원시 석기시대이던 일본 원주민들에게

청동기 철기문명등을 가르쳐 주고 일본의 지도자들이 됨.)

가야인들이 개척한 일본열도가 독립하여 스스로 "야마토('日本'이라는 말은 '야마토'의 한자표기)’라고 일컫기 시작한 것은
서기 663년 백제가 나라문을 닫은 후부터다.
‘야마토(日本)"는, 원래 ‘위지’한전(韓傳)에 기록돼 있는 야마국(邪馬國 - 우가야)을 가르키는 이름이며
경북 고령지방을 중심으로 번영한 가야의 종주국 우가야를 지칭한다.

(펀주: 일본인들은 일본이라는 말을 얼마전까지 "야마토"라고 불러왔다.

아마터 -> 야마터 -> 야마토

"아마" 는 "해의 꼭대기, 해의 근본"을 뜻하는 우리 한국의 옛말.
"아"는 "아이", "아침"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떠오르는 해.
(고)조선의 한글이름인 "아사달"은 원래 "아ㅅ달" 즉 "떠오르는 해의 나라"라는 뜻.
"마"는 "마루(정상)" "마ㅈ이(첫째 아이)" 에서 보이듯이 꼭대기,처음.
"터"는 지금도 쓰이듯이(나루터,우물터) 곳, 장소.
원래 고대 한국어인 "아마터"라는 말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뜻.
야마국(邪馬國 - 우가야의 다른 이름)이란 가야인들이 스스로의 나라를

"아마터" 혹은 "야마터"로 불렀기 때문.)

즉 야마국의 자치령(自治領)이 되어 일본열도에 살게 된 그들은

종주국 ‘우가야(야마국)’를 계승하는 나라임을 내세웠던 것이다.

(펀주: 가야인들의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왕족이 됨.
본국인 한반도 가야를 윗나라로 받들고 지냄.)

일본왕실은 고대로부터 <가라가미> (가라(가야)의 신 = 韓神 : 한국신)를 받들어 모시고
(가라[加羅]=가야[伽倻])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가라가미 마쯔리>(韓神祭 한신제)를 지내 오고 있다.

일본 학자들은 <가라가미 마쯔리(韓神祭 한신제)> 는 중세때부터 쇠퇴하여

근년에는 폐지됐다고 사전마다 써놓고 우겨대지만
그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왜냐하면 근년에 와서는 봄에 <가라가미 마쯔리(韓神祭 한신제)> 를 지내던

2월21일을 일본의 건국기념일로 제정해 놓고
왕실뿐 아니라 온 국민이 축제를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2.지난 1883년에 일본육군합동참모본부가 만주 침입을 위한 자료 수집차 밀파한 사카와 가게노부(酒勾景信) 중위가 집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을 조작한 데서부터 시작된 일본의 우리 역사에 대한 도전과 훼절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한민족사를 망가뜨렸고, 급기야 우리 내부의 사관조차 흔들어 놓을 만큼 일제 식민사관의 상처는 매우 크다.

일본이 35년간 식민통치를 하면서 한민족을 역사의 우민으로 만들고자 전개한 발악적 사관은 식민사관·반도사관·황국사관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복부가 무단통치를 자행하다가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른 바 문화정책으로 전환, 독립의지의 정신적 원천이 되는 조선의 전통과 문화, 역사를 말살시켜 영원한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악랄한 것은 1922년 당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가 총독부내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여 1938년까지 활동하면서 한민족사를 시원부터 새로 창작하는 전대미문의 역사말살공작을 벌인 사실이다.

당시 사이토 총독은 이렇게 강조했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의 혼, 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에게 가르쳐라.”

<조선사편수회> 회장은 일본 총독부 정무총감, 고문에는 이완용과 권중현, 박영효가 자리했다. 일본 동경, 교토 제국대학에서 파견된 구로사카(黑板勝美), 미후라(三浦周行)교수와 중추원의 이나바(稻葉繼雄)가 가담하였고, 경성제국 대학 등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 류)등 일본인 사학자들이 역사 편수관으로 참여하였으며, 보조편수관으로 친일 사학자 신석호와 이병도가 민족사 왜곡에 가담하게 되었다.

<조선사편수회>에서는 한반도와 만주와 대마도 지역에 있는 조선의 주요한 역사 자료와 대마도 소(宗)씨 가문 소장에 있던 조선사 관련 자료 약 20~30만 권을 은밀하게 수집하여 수차에 걸쳐 불태워 없앴다. 당시 한국 상고사와 단군 관련 자료 등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소장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각해버렸으며 한국인이 개인적으로 역사책을 지니는 것을 통제하였다. 그들이 소장한 한국사의 소중한 기록물들은 모두 일본 궁내성(宮內省)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부는 일제 강점기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약탈, 수집해간 "데라우치 문고" 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데라우치는 1910년부터 5년간 문집류, 서화류, 궁중자료 등 1000여종 1500점에 달하는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조선사편수회>는 2만4000페이지에 달하는 <조선사 35권>을 창작하여 한민족사를 신라 건국(BC.58)부터 갑오경장(1895)까지 약 2000년만 인정하고, 나머지 역사는 조선과는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 상고사에 있어서 단군조선의 실존 역사를 곰, 호랑이가 나오는 신화로 해석하여 단군 조선사를 가공의 설화 이야기로 말살시켰다.

그 결과 2000여 년의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없애버렸다. 단군신화는 그리스· 로마의 신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유일한 민족이다. 서양의 신이 하늘에 있는 비인간이라면 한민족의 신은 바로 인간이다. 고로 단군신화는 환족(맥족)과 웅족(예족)의 결혼, 거기에서 출생한 왕검이라는 단군(CEO)에 관한 성공이야기이다.

1995년에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만난 러시아 사학가 뿌친은 “단군조선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시아의 고대사를 논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타국들은 없는 역사도 있다고 만들어내는데 어째서 한국인들은 있는 단군조선 역사를 없다고 주장하는지 모를 일이다.”고 말했는데 그의 질타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986년10월9일 고 이병도씨는 “단군조선은 실존했던 왕국이며, 조상이 기록한 고기(古記)는 믿어야 한다”고 실토했다. 일제 식민사학의 앞잡이로 지탄받던 그가 고 최태영선생(서울대 법대 초대학장)의 강력한 설득으로 진실을 토로한 것이다.

그리고 일제는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상고사 부문과 일본 고대 국가 생성의 기원이 된 가야와 백제의 활동을 무시하거나 축소시켜 버렸다. 또한 근대사에 있어서는 조선시대를 사대주의와 당쟁, 사화 등 민족성의 단점만 부각시키고 유교를 국가 멸망의 원인으로 인식시켜 조선시대에 대한 국민의 애착심을 단절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이 모든 역사서술은 식민사관, 반도사관, 황국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식민사관은 우리나라는 개국 초기부터 자주 독립국가가 아닌 외세에 의하여 지배받아 온 식민지 형태의 종속국가라는 주장이다. 즉 한반도의 북쪽은 고조선이 한 무제에게 멸망하여 낙랑군 등 한사군이 설치되어 중국에게 식민지화 되었고, 한반도의 남쪽은 과거 일본이 바다를 건너와 정복하여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하여 통치를 하였으므로 자주국가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한사군은 고조선의 땅이 아니라 현재의 난하에서 요하에 이르는 지역에 설치된 한나라와 쥬신(범조선을 말함)의 국경완충지대였다. 그리고 임나일본부는 허구라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다.

반도사관은 우리나라가 역사상 한 번도 반도 밖으로 세력을 펼쳐 보지 못한 약소하고 왜소한 국가였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 내놓은 주장이다. 즉 한민족은 유사 이래 압록강 두만강 너머와는 무관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통해 만주침략은 한민족사와는 무관하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또 광활한 역사 영역을 한반도 안으로 억지로 축소시켜 민족사를 동강내 버렸다.

황국사관이란 한민족이 오랫동안 식민지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일본의 황국 신민이 되어 일본 천황의 지배를 받는 화려한 역사로 변화된 사실을 영광스럽게 알라는 식의 역사교육을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식민사관은 해방 후 지금까지도 악령처럼 우리의 의식 저변에 무서운 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차대전 때 끌고 간 징병과 위안부문제를 왜곡하고,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아스쿠니 신사를 정부 수반이 공공연하게 참배하고, 독도영유권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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