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m TV #8. 신데렐라다운 신데렐라 영화

in #kr-movie5 years ago (edited)

A summary in English is to be found at the end of thi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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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처럼 고전적인 스토리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 그것에 따르는 어려움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오스카 해머스타인(Oscar Hammerstein)이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와 팀 라이스(Tim Rice)가 아닌 이상에야 흥행이 쉽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 본인이 그들 중 한 명이 아니라는 것 자체가 핸디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신데렐라를 이미 내놓은 바 있는데, 무대에 앞서 텔레비젼으로 방영되었다. 그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가 첫 주연을 맡은 후로, 1997년도에는 가수 브랜디(Brandy)와 동남아계 주연을 위시한 다인종 프로덕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미 성공한 작사, 작곡가들이 뭉쳐서 내놓은 작품이니, 처음부터 신데렐라 뮤지컬의 대명사로 굳어진 셈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신데렐라다운 영화로 꼽는 것은 1976년도에 영국에서 만든 구두와 장미(The Slipper and the Rose)이다. 셔먼(Sherman) 형제가 작사, 작곡을 했는데,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처럼 거물들이 작사 작곡한 것이 아니라서인지 크게 이름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음악적으로 누구의 작품인지는 굳이 찾아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메리 포핀스(Mary Poppins)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작사, 작곡 팀이다. 구두와 장미가 그런 영국 뮤지컬 세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보통 성공적인 뮤지컬에서는 곡 몇이 인기를 얻어 스탠더드 넘버로 굳어질 가능성도 있는데, 이 영화의 음악 중에는 딱히 그런 것이 없다. 분명히 뛰어난 멜로디와 편곡을 자랑하는데도. 아마도 영화 자체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오랫 동안 매니아층이 형성된 듯도 하다. 아는 사람만 알지만,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신데렐라 스토리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하는 영화이다.

원래도 일명 '쓰레빠'로 불리는 '슬리퍼'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지칭하는데, 별다른 조정 없이 발을 쑥 밀어넣어서 신는 신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도 한국인이 보면 더더욱 없어보이는 제목이긴 하다.)

사실 객관적으로도 이 영화에서 가장 별로인 요소가 바로 제목이다. 일단 기억에 잘 남지도 않는 제목이고, 유리구두가 (다른 극에 비해서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데다가, 장미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으니까. (사실 장미라는 것이 등장한 기억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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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와 장미 포스터

하지만 제목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디즈니의 신데렐라보다도 더 동화스럽고, 그 낮은 인지도가 이해가지 않을 정도로 음악도 아름답다. 특히 평론적으로보다는 대중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매력이 있는 스코어라고 여겨진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기억에 남는 곡이 없었는데, 우연히 두 번째 접하게 되면서 노래 위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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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퀸 마더라고 불리던, 현 영국 여왕의 어머니가 극중의 왈츠를 특별히 극찬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왕실에서 매우 흡족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는 전통적으로 왕/여왕이 지정한 아티스트들이 꾸미는 무대가 열리는데, 일명 로열 커맨드(Royal Command) 공연이 그것이다. 구두와 장미는 그 해의 로열 커맨드 공연일에 왕실이 지정하여 상영된 영화이다.

영국에서 유명 가수와 작곡가는 많이 나왔지만, 영화를 만들게 되면 아무래도 헐리우드에 비해 그 규모가 초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기자기한 작품을 노리는 경향이 있고, 신데렐라처럼 고전적인 동화를 표현한 대표작으로 삼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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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전적인 스토리에는 여성 주연이 사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을 캐스팅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무명에 가까운 신인 배우 제마 크레이븐(Gemma Craven)을 섭외했다. 이 때 26세 정도 되었었다고 하니, 동화를 토대로 한 영화 주인공으로는 적지 않은 나이다.

이런 역할을 맡은 후에는 딱 그 전형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이 배우 역시 이 신데렐라 영화 이후로 다른 작품을 크게 많이 맡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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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강도(?)도 적당하다. 단순히 옷과 머리만 바뀌는게 아니라, 같은 얼굴이지만 너무 다른 모습이랄까.

앞에서 가장 신데렐라다운 영화라고 평했는데, 동화 특유의 환상적인 분위기 외에도, 어거지로 현대적인 의미를 집어넣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도 일부러 신데렐라 캐릭터를 벗어버리려는 노력이 엿보일 정도이니, 사실상 신데렐라다운 신데렐라 영화는 드문 셈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이니, 미리 알려두는 차원에서 언급한다.)

이 영화의 신데렐라는 갑자기 진취적인 여성으로 변모하지도 않고, 그저 착한 마음을 가진 캐릭터에 충실하다. 부모를 여읜 슬픔을 극복한 후에는 적당히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로 발전한다. 수동적인데, 주어진 시대와 상황에서는 그게 또 그냥 현실적이다.

가장 동화적인 이야기는 가장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많이 존재해온 전형적인 캐릭터들과 사건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니까. 마법 등의 요소는 거기에다가 '희망'을 가미하기 위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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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로 전형적인 남자 주연의 얼굴이 있다. 꼭 하나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표적인 상이 많지는 않기에. 미남의 유형은 물론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80년대의 주연 '상'에 대해서는 공감을 잘 못하는 편이다. 가령 패트릭 스웨이지(Patrick Swayze)라던가, 맥가이버 역할이었던 그 아재 배우, 그리고 이 영화에서 왕자 역을 맡은 리처드 체임벌린(Richard Chamberlain)이 그런 경우이다. 50년대의 고전적 미남도, 현대의 곱상한 미남도 아닌, 굳이 묘사하자면 이목구비는 별로 강하지 않고 얼굴 선이 굵은 유형이랄까. 그래도 영화의 결말에서 유럽 전통적인 하얀 파우더를 친 가발을 쓰고 나왔을 때가 그나마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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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외에도 왕과 그 어머니, 친척 등 캐릭터가 나름대로 살아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스케일이 큰 프로덕션이 아니라서, 성이 나오는 도입부를 제외하면 크게 풍경이랄 것이 없지만, 나름대로 신경을 쓴 장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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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다고 여겨진다면, 정말로 익숙해서이다. 그네를 타는 이 장면은 프라고나르(Fragonard)의 그네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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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고나르의 그네

구두와 장미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 제작자가 데이빗 프로스트(David Frost)라는 점이다.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미 대통령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언론인. 비록 작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구두와 장미의 일부 대사(혹은 가사)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프로스트와 닉슨의 '대결'은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극중 프로스트가 자신이 제작한 영화 시사회에 가는 장면도 나온다. 그 영화가 바로 이 구두와 장미다. 아마 어느 대사에선가 프로스트가 제작한 이 영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하는데, 프로스트가 진지한 언론인이 아니라 엔터테이너에 가깝다는 닉슨 측의 인식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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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오늘만은 동심의 화신 제이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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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sndbox: This post is my review on the 1976 movie, The Slipper and the Rose, based on the story of Cinderella. I talk about its reception by the British royalty, as well as the participation by David Frost, the executive producer and renowned journalist. I also give bits of information on the Rodgers & Hammerstein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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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나도 신데렐라처럼 백마탄공주님이 구해주러 올꺼야~!
오늘도 별님 달님 보면서 기도해~

형 어디 갇혀있어?ㄷㄷ

정성스런 글 잘읽고 갑니다.

디클은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동심소녀 제이미에게 무한찬사를~~^^

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오타찾음!!!

동심의 화신 제이미 -> 악마의 화신 제이미

젬형도 오타를 내긴 내는구나!!ㅎㅎㅎ
오타도 찾아주고 나 착하지??ㅎㅎ

ㅠㅠ어떻게 하면 악마를 동심으로 오타내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샤바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이상, 오늘만은 동심의 火신 제이미였다.

요즘 들어서 고전 영화들의 옛날(?) 비주얼들에 다시 눈이 가기 시작하는데 몰랐던 영화도 하나 알게 되었네요 :)
언제나 정성 가득한 글에 제가 더 감사하고요~!

엇, 감사합니다. 메이저는 아니지만 동화로 만든 영화 중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평이 괜찮아요. :)

슬리퍼가 .. 유리구두...?

ㅇㅇ원래도 신데렐라 구두를 glass slipper라고 하는데, 제목에서 유리는 빠졌지만 하여간 구두=슬리퍼야. ㅎㅎ 쓰레빠가 아니라 발을 굳이 끼거나 끈, 지퍼 따위 없이 그냥 발을 쑥 집어넣는 신발을 다 슬리퍼라고 함ㅇㅇ

요즘은 비슷하게 발을 그냥 넣어서 신는다는 의미로 슬립온도 있지...

ㄷㄷㄷㄷ 나만 몰랐던건 아니겠지...? 도와줘요 영알못 님들

설명 ㄱㅅㄱㅅ

ㅋㅋ무슨 도와줘요 수퍼맨처럼 말하네.

존예 제미형님!!! 기억에 남는 동화는 머에요?

ㅎㅎ이거 존잘 지누형님으로 응수해야 하는거죠? 전 동화로는 불새처럼 삼형제의 미션 류가 제일 인상이 깊습니다. 비슷비슷한게 많죠.ㅋㅋ

삼형제의 대표적인 미션 류의...동화로는... 음...아기돼지삼형제를 가장 인상깊게 보셨군요...!! 뭐...나름 형제가 미션을 수행하면서 겪는 좋은 집을 사자는 꿈과 교훈을 주는 베셀 동화죠...^^ 취향 존중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너무 평화로운 결말이라...두 명은 죽거나 사형당하는 류가 재밌어요. 우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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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두에 삼색선이 빠져있는데... 옥의티네요.

아디다스 쓰레빸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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