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바스티아 연재(10)] 화폐의 본질 그리고 부와 가치의 혼동

in #kr-newbie6 years ago (edited)

<지금까지의 이야기> by @jin90g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인간본성 일반법칙에서 경제학의 토대를 찾으려 한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정하고 다채롭고, 따라서 그 능력 또한 무한정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능력의 개선은 욕구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며, 따라서 인간은 분업과 협력을 통해 ‘보다 적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만족’을 성취해야 생존·번영한다. 각자의 생존·번영의 원리를 통해 살아가는 것을 각 생물의 자연상태라 하니, 교환-시장경제는 인간의 자연상태다.

욕구의 만족이 실현됨을 유용성(utilité)이라 하고,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서비스(service)라 한다. 유용성은 때때로 오직 자연에 의해(무상으로), 때때로 오직 노력에 의해(유상으로), 대부분 언제나 자연과 노력의 협력에 의해 전달된다. 그리고 어떤 것을 유용성이 진정 완비된 상태로 끌고 오는데 있어, 노력의 작용은 자연의 작용에 반비례한다.

가치(value, prix) 개념은 교환 관계에서 무엇이 교환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상거래의 정의로움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욕구, 노력, 만족의 연쇄는 개인에게 고유하다. 다만 오직 노력만이 타인에게 전달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품의 값어치가 투입되는 노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실로 자연의 쓸모가 신의 은총이라 무상으로 제공된다면, 거래되는 것은 노력뿐이지 않을까?

그러나 교환의 목적은 ‘보다 적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만족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교환에서 주목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노력을 투입했느냐가 아니라, 상대가 제공하는 노력이 얼마나 내 만족을 실현하는가에 있다. 따라서 교환되는 것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타인의 만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다시 말해 ‘서비스(service 이바지)다.

인간의 서비스는 무한정하고 다채롭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공통된(성질이 같은, 양적인)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교환된 이후에야 비로소 ‘같음’, 그리고 ‘교환의 비례’ 라는 척도를 얻게 된다. 교환이 일어나기 전에는 가치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서비스의 ‘가치’는 ‘교환되는 서비스들의 관계’다. 관계이기 때문에 가치는 상대적이고, 사람 대 사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가치는 주관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흔히들 말하는 유용성(부)와 가치는 서로 상반되는 것인데 이를 사람들이 혼동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약탈했니 안했니 오해한다는 것이다. - 물론 정말 약탈한 사람은 따로 있다. 여기서는 착각한 사람들을 다룬다. - 부는 만족으로 측정되고 평가되지만, 가치는 장애물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여기가 고전경제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풀어내려 했던 화폐착각 문제의 출발점이다.


<부와 가치의 혼동 – 화폐의 본질>


(메니페스토 청년협동조합 인기 콘텐츠, 예산배정게임)

바스티아의 서비스-가치 이론은 자본과 이자를 지연(딜레이) 서비스로 설명한다. 실물화폐가 교환의 공간적 범위를 극복하게 해준다면, 지연과 이자를 다루는 신용증서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교환을 성립시킨다. 그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지폐와 신용이 서비스-가치 이론으로 설명된다. - 지폐의 출발점은 예금증서니까. (바스티아 연재 9번 참조) - 따라서 본질적으로 이자는 약탈물이 아니다. 토지 대여료가 이자의 한 종류라는 점에서 토지 대여료 또한 약탈물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교환 속에서 한 사람의 이득은 다른 사람이 치른 희생의 대가가 아니다. 교환에서 우리가 갖는 이득은 우리가 그만큼 타인을 도와줬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바스티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약탈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자유로운 교환의 대척점에 서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고의적인 약탈을 제외한다면, 우리의 교환을 오염시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약탈은 부와 가치의 혼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화와 신용증서로 교환이 확장되고 복잡해지면, 우리는 쉽게 부와 가치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처음에는 경화(硬貨 금속화폐)와 생산물을 혼동한다. 그 다음에는 지폐와 경화를 혼동한다.”(『국가는 거대한 허구다』) 또한 우리는 화폐가 상품이 아니라 상품을 초월한 특권적인 거래 척도 혹은 거래 수단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부와 가치가 서로 상반된다는 것을 언급했다. 부는 자연과 노력에서 오는 모든 유용성의 총합이며, 만족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가치는 장애물에서 생겨나며, 우리가 대가로 치르는 서비스에 관련된다. 화폐는 단지 교환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한 하나의 상품, 하나의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폐는 우리가 상거래에서 교환하는 다른 서비스들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그러므로 부와 가치를 혼동하는 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착각은 국가 외적으로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더 나아가 식민지 개척의 토대를, 국가 내적으로는 쓸모없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이용한 강제적인 경기부양과 중앙은행 법정불환지폐의 토대를 이룬다. 정치가들은 경제 활성화라는 대중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출을 극대화하고 수입을 줄여서 국제통화를 축적하려 한다. 그 결과 대중들에게 필요한 생필품들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화폐량이 증가하기에 물가는 폭등, 나라는 품귀 현상을 겪는다.

또한 정부는 일자리를 억지로 창출하기 위해 불필요한 댐 공사와 공무원 채용 확대를 시도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낭비하고 파괴한다고 해서 부와 고용이 증대하지 않는다. 파괴는 이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사업으로 부가 파괴됐기 때문에 유용성은 줄어들고, 사람들의 만족 또한 줄어든다. 우리는 더 궁핍해지고 더 고통받는다.

경기활성화를 이유로 중앙은행이 해마다 일정량의 통화 팽창(inflation)을 시도하면, 온 나라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채, 해마다 일정 소득을 중앙은행에게 지불하게 된다. 반대로 돈을 빌린 사람들은 돈 값이 떨어졌으니 그만큼 이자를 지불하지 않고 과거의 원금 수준의 가치만 갚게 된다. 심지어 법정불환지폐는 금화나 은화로 태환할 수도 없다. 부와 가치의 혼동이 이토록 막대한 피해와 약탈을 초래하기 때문에, 바스티아는 가치 이론을 명확히 증명하려 한 것이다.

특히 법정불환지폐는 부와 가치의 혼동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시다. 화폐는 교환을 편리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그런데 교환은 서비스 대 서비스로 이루어지므로, 화폐를 통한 복합적인 교환의 연쇄는 종국에는 단순한 물물교환과 같아진다. 농부가 50프랑을 빌려 쟁기를 산 경우, 농부가 실제로 빌린 것은 50프랑이 아니라 쟁기다. “경화든 지폐든 유통되는 돈의 액수가 얼마가 되었든 간에, 빌리는 사람은 빌려주는 사람들 모두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쟁기, 집, 도구, 식량, 원료를 받을 수 없다.”(『국가는 거대한 허구다』) 이에 대해 Thornton은 바스티아의 다른 대화편 「Maudit Argent!」 - ‘빌어먹을 돈이여!’ -를 통해, 바스티아가 현물 화폐를 표시하지 않는 지폐와 증서를 기만으로 다루었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Thornton은 바스티아가 화폐 착각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치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뿐만 아니라, 중앙은행과 법정불환지폐의 폐지, 그리고 금화나 은화 같은 실물화폐로의 복귀를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보기에 중앙은행과 법정불환지폐 폐지는 『경제적 조화』의 논리에도 일치한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의 법정불환지폐와 통화 팽창은 공권력에 의한 합법 빙자 약탈의 정교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환지폐를 공급하거나 통화를 팽창시키면, 정부는 자신들이 제공한 적 없는 가치의 실질적 소유자가 된다. 그렇게 정부는 보답 없이 도움만을 받으면서 등가교환인척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실물화폐로 돌아가자는 제안은 『경제적 조화』의 논리에 상반된다. 실물화폐로의 복귀는 교환의 인위적인 축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지연(딜레이) 서비스를 주고, 이자로 보상받는다. 지연과 이자는 교환을 다른 시대 너머로 연결한다. 그렇지만 실물화폐는 단지 즉각적인 보답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신용화폐가 없다면, 우리는 자본 이용에 대한 보상을 지불할 수 없다.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 자본은 형성되지 않는다.
자본은 자연의 힘을 끌어오기 위해 축적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자본이 없다면 인간은 그만큼 자연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단순한 물물교환은 쉽게 한계를 만날 것이고, 우리 능력은 더는 욕구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실물화폐로 복귀하는 것은 이자를 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오늘날, 이자를 억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가 교환을 원시적인 형태로, 물물교환으로, 미래도 과거도 없는 현재적인 물물교환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경제적 조화』

그리고 엄밀히 말해, 우리는 타인에게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우리가 보답을 전제로 타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 우리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만큼의 지연을 지불한다. 우리가 자본 없이 노력만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우리 노력은 일정한 시간을 차지해야한다. 월급쟁이들은 임금을 받을 때 한 달 동안의 지연(딜레이) 값을 함께 보상받는다. 임금이 체불되면 회사는 체불한 임금에 더해 체불 기간 동안의 이자도 지불해야한다. 영화회사가 영화를 상영해 관람객들에게 표 값에 대한 보답을 상환할 때도, 관람객들은 영화 관람이 끝날 때 가지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모든 서비스의 교환은 자연적으로 지연의 교환을 함축하며, 경화와 신용 화폐는 교환의 확장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막대한 축적 자본을 차용할 때만 이자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근시안적인 사람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바스티아의 서비스-가치 이론은 교환대상이 서비스라는 것을 밝힌다. 가치는 절약되는 노력에 따라 주관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자유로운 교환 속에서 우리는 서로 서비스를 비교·평가하며 등가교환을 조율한다. 토지와 토지 대여료, 자본과 이자, 노력과 임금은 각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정당성을 얻는다. 지연(딜레이) 서비스를 통해, 우리는 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시간에서도 교환을 확장해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부와 가치를 혼동하기 쉽고, 이 혼동은 서로 의도치 않았던 보이지 않는 약탈을 발생시킨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교환에서 얻는 이득이 그 자체로, 본질적으로,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이었노라고 착각해왔던 것이다.

<다음화 예고>

한편으로 가치의 주관성과 상대성을 서비스 개념으로 설명한 바스티아.
그러나 토지 문제를 비롯해 반론을 맞이하게 된다.
설령 신의 은총이 무상의 유용성이라 해도
누군가가 혼자서 다 차지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닌가.

논란을 만든 '로크의 단서' 논란이 이어진 '토지 공개념' 문제
인간의 사유재산과 신이 내린 공유재산 사이에
자연의 물결을 따라 진정한 참된 선을 그어라

보다 저 너머로!
Plus Ul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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