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꿈이 뭐니?] 우리는 어떻게 만나는가? _ 1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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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병이다. 요점만 말하지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된다. @isis-lee님께서 [너 꿈이 뭐니?] 이벤트에 지목해주셔서, 요 며칠 곰곰이 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난 번 공감연습 이벤트도 그렇고 정말 감사한 일이다.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이야기 하려니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글이 길어져, 제한된 시간에 한 호흡으로 쓸 수가 없어, 나누어 쓰기로 했다. 양해 바란다.

키가 컸으면 하는 마음?

내 고향은 중부내륙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나는 유년 시절을 고향에서 보냈다. 여기에서 굳이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 시절의 풍요로움을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 나에게는 결핍이 없었다. 그 시절 내가 가질 수 있는 욕구들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건강하게 먹고, 따뜻하게 잠들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엄마 배고파!", "엄마 졸려!" 등 부모님께 요청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와 아빠가 감당해야 했던 세계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겠지만 당시에 그런 것은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가족이 세계의 전부인 곳에서 어린 내가 외로움을 알 리도 만무했다. 가끔 나의 얼굴에서 쓸쓸함을 발견하면 엄마 아빠가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그러면 나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아빠가 가끔 껄끄러운 수염으로 나의 얼굴에 비비곤 했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애정 어린 행동인지 어린 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유난스럽게 반응했고 그럴 때마다 아빠가 더 즐거워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알 수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생기면 성당에 나가 기도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린 시절은 언제나 풍요로웠고, 알 수 없는 열기로 충만했던 공간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우리 가족은 인근의 중소 도시로 이사를 했다. 아빠는 조금 더 먼 거리로 출퇴근을 해야 했고 엄마도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하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했기 때문에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비밀’, ‘거짓말’, ‘우정’, ‘의리’라는 말들에도 조금씩 끌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말 수가 적어지기도 했다. 말수가 줄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까닭 모를 반항심에 뜨거워지는 밤도 있었다.

그렇게 학교 일로 바쁜 나날들이었지만 정작 고민은 다른데 있었다. 한창 성장기에 다른 친구들만큼 키가 크지 않았다. 방학이 지날 때마다 친구들은 한 뼘씩 키가 커, 다시 만나곤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씩 위축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음은 늘 나를 벗어나 있다가, 내가 혼자 남겨진 빈 방으로 돌아오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때부터 나는 머뭇거리거나 서성거리는 등 쭈뼛거림에 익숙해졌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풍요롭고 충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일치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보다 어긋남에서 피어나는 위태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무리 엄마, 아빠라고 해도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역설적으로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사랑한다. 성당에 나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키 크게 해주세요!’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나 ○○랑 사귀고 싶은데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말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세상에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온전히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알게 되었다’는 표현보다 강제적으로 ‘알아버렸다’라는 말이 당시의 격정을 설명하기에 더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친구들과 어울려도 외로웠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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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로 인해 온전히 혼 자 감당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군요. 대단히 중요한 성장점인거 같네요. 빙 시인님의 명료한 인지력이 참 좋습니다

이번에도 @isis-lee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글을 쓰게 되었어요. ^^ 숙제라고 하기에는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꿈 챌린지를 연재하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읽다가 몇 줄 안 남았길래 아니 키크는 이야기로 꿈을 접을라고? 하다보니 계속이군요 ㅎㅎ

ㅋㅋ 걱정입니다. 이 글을 어떻게 끝을 맺을지...
생각보다 길어지다보니, 하고 싶은 말에서 너무 멀어진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ㅎㅎ

하하 응원합니다. 글 재미있어요 ㅎㅎ

ㅋㅋ 감사해요~~
시작은 했으니, 마무리는 지어야죠..ㅎㅎ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virus707님 jjangjjangman 사용법을 이제야 파악했어요.ㅜㅜ
매번 찾아주셨는데....

감사합니다.

짝사랑은 남자에게 인생의 쓴맛을 제일먼저 경험하게 해주는 채찍이죠. 젠장.

그래서 씁쓸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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