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탈일상성의 공간에서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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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이 많은 편이다. 크고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면 설렌다거나 흥분된다는 주위 반응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나는 오히려 왜인지 모를 참담함을 느끼곤 하는데, 그 이유에는 강남순 교수님이 이야기하는 바에 동감을 하는 부분이 많다. 첫째로는 여러 면에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 그 속에 스스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갇혀 있기 때문인데, '존재 방식'과 '계층' 에 관한 급격한 전환이 생긴다는 말도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늘 여러 일이 문화적, 사회별의 이슈로 부상하지만, 그 속에서 의식을 갖고 이 존재 방식과 계층의 다름을 느낄 수 있는 부분 중 나에게 가장 큰 일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정치적 공간인 공항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한다는 말. 내 존재를 국가권력 기구에 알려야 하며, 내 피부색과 국적, 또는 육체 조건 등이 환대를 받을 것인지, 거부를 당할 것인지 모르며 또는 언제나 범죄자로 취급이 될 수 있는 곳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백번 공감이 되는 것. 출발에 언제나 도착이 보장된 것 또한 아니다. 검사대를 무사히 패스했다 하더라도 이젠 계층별 권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좌석 등급이 매겨져 있는 탑승할 줄에 서야 한다. 푯값이 가장 높은, 널찍한 공간과 특급 식사가 매끼 제공되는 일등석, 비즈니스석은 비행기 입구에서부터 이코노미석과 분리되어 가려진다. 공항에서 기다림과 인내심을 겪는 모든 여행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 공간에서 그들의 존재 방식의 전환을 맞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강남순, 배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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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7월, 한국 일정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는 경유 비행기 안, 중국 상공 어디쯤에서 찍은 사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비행기를 탈 땐 시차를 맞추려 (저렴한 overnight 비행기를 주로 선택했기에) 절대자지 않으려 다양한 노력을 했다. 책을 두세 권 가방에 넣고, 작업 된 녹음 몇 가지를 컴퓨터에 꽉꽉 채워 넣고, 즐겨 먹는 간식거리들을 챙겼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과 시도 끝에 더는 비행하는 시간을 즐기려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노력을 더는 지속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어쨌든 흘러가며, 내가 괴롭든 편하게 쉬든 그 공간의 시간은 제 속도로 감을 깨달았기 때문.

     이젠 그냥 명상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넣는다든지, 기압 때문에 예민해지는 귀를 위해 각종 귀마개와 베고 잘 부드러운 베개를 챙긴다. 아, 물론 과자들은 빠짐없이 챙긴다. 젤리 3~4개, 과자 몇 봉지, 말린 과일 등…. 주로 장거리 비행을 하므로 노트와 펜도 꼭 챙기는 편. 아, 가끔 친구들이 비행기에서의 로맨스-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난 적은 없는지 물어보는데 단 한 번도 없었다. 영화에서만 일어날법한 상공위의 로맨스 뭐 이런 일은 사실 거의 없지 않을까. 물론 매력적인 남성, 여성들이 타는 건 많이 보았지만…. 뭐 이런 평범하지 않은 일은 나에겐 (거의) 절대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파리-한국 정도 되는 장거리 구간의 비행을 전 애인들과 같이 타본 적도 없다. 통제 불가능한 공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짓궂은 상상력만 커지는 것 아닐까(?)



    빠르면 한두 달 안, 길게는 석 달 안에 다시 장거리 비행기를 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절대, 내 어떠한 소지품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길 것을 목표로 삼고 슬슬 심리 통제에 들어가야 한다. 매번 다짐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기다리는 사람들을 다 만나고, 안아보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고 싶다. 하지만 만날 인연들은 다 만나지기에, 큰 걱정이나 부담은 없다. 바쁘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잘 지내다 보면 또 어느새 다시 공항으로 돌아올 시간이 오니까. 6개월, 1년을 내다보고 중간중간 이동할 계획을 미리 짜놓는 삶이 이젠 익숙해졌나 싶기도 하지만 무뎌지는 것 같기도(?) 점점 짐 싸기의 달인이 돼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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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탑승을 '존재방식'과 '계층' 변동의 관점에서 볼수도 있네요ㅎ
전 비행기를 자주 타지 않아서 그런지 혼자 타야할 때면 신이 납니다. 책도 읽고, 팟캐스트도 듣고, 영화도 볼 계획을 세우죠. 중간에 잠이 들어 계획의 반밖에 이루진 못해도 말이죠.

상공위로 가지고 간 계획들을 고스란히 성취(?) 하고 내려오기는 쉽지 않은것 같아요. 몇번 타보니 나에게 맞는 방법의 휴식을 터득하게 되네요. ㅎㅎ

와우,,,너무 멋진 사진이다...행복해라 시스터...🌹

저에겐 비행기를 타는건 정말 고통입니다. 첫번째는 트라우마 때문이고 무섭고 두번째는 답답함입니다.
잠이라도 잘왔음 좋겠는데 긴장감때문에 잠도 안온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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