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8] 아동기 방임이 성인기 폭력 행동에 미치는 영향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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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네 가지 subtype으로 구분이 됩니다. 첫째는 신체학대, 둘째는 정서학대, 셋째는 성학대, 넷째는 방임입니다. 아동학대가 성인기의 반사회적이거나 병리적인 행동을 예측한다는 연구는 많았으나 아동학대의 subtype을 구별하여 각각의 subtype이 미치는 영향력을 보는 연구는 부족했습니다. 특히 다른 subtype에 관한 연구에 비해 방임에 관한 연구가 부족했습니다.

방임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방임은 자신의 보호ㆍ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ㆍ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로 규정한다. 즉, 보호자가 고의적, 반복적으로 아동에 대한 양육 및 보호를 소홀히 함으로 인하여 아동의 건강이나 복지를 해치거나 혹은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말하며 방임에는 의료적 처치의 거부 등 신체적 방임, 유기, 장시간 아동을 위험한 상태로 방치하는 등의 부적절한 감독, 교육적 방임, 정서적 방임 등이 있다.1

제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Bland와 동료들의 리뷰 논문은 방임이 다른 subtype만큼이나 인간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2 즉 방임의 결과로서 내현화 및 외현화된 문제 행동, 인지나 정서 발달에서의 지연, 자아탄력성에서의 부족이 단기 및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방임은 성인기 사이코패시(정신병질)와 연관되는 아동기 심리적 특질의 발달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성인기 폭력 행동(violent behavior)이 결과 변수입니다. 방임이 다른 subtype만큼 영향력이 커 보이긴 하는데, 구체적으로 성인기 폭력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다른 subtype에 비해 어떤지 보려는 것이죠. 이를 위해 아동학대의 subtype을 구별하여 성인기 폭력 행동에 관한 상대적 영향력을 보는 논문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조방정식을 사용한 Vachon 등(2015)의 연구에서는 다른 subtype에 비해 방임이 외현화 행동(눈에 띄는 문제 행동, 예를 들어 싸움이나 파괴적 행동 등)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방임이 대개 신체적 학대 및 정서적 학대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방임의 영향력이 간과되기 쉬운데, 이 연구는 분리해서 분석하여 방임이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하지만 학대에도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가 구분되듯이 방임에도 신체적 방임과 정서적 방임을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Taillieu 등(2016)은 정서적 방임과 정서적 학대의 상대적인 영향을 비교하였는데 정서적 방임이 주요우울장애, 사회불안장애, 분열성, 분열형, 회피성 성격장애 등과 관련되는 데 반해 정서적 학대는 물질사용장애 등을 포함하여 모든 정신장애의 발달에 관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위험인자였습니다. 이 연구에서 정서적 방임과 외현화된 행동 문제 간의 관계를 다루진 않았지만, Bland 등은 정서적 방임이 성인기 폭력 행동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적을 수도 있다는 시사점을 짚어냅니다.

이런 선행 연구 결과들이 있는바, 첫째 정서적 및 신체적 방임을 구별하고, 둘째 학대의 다른 subtype도 포함하여, 외현화된 문제 행동에 대한 각각의 상대적 영향력과 subtype을 합쳐서 분석하였을 때의 상대적 영향력을 살필 필요가 있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Rivera와 Widom(1990)의 종단 자료를 재분석한 Grogan-Kaylor와 Otis(2003)에 따르면, 인종, 나이, 성별, 아동기 신체적 및 성적 학대를 통제한 이후에도 아동기 신체적 방임이 성인기의 범죄로 인한 체포를 예측했습니다. 한편 Mersky와 Reynolds(2007)의 연구에서는 아동기 방임이 성인기 폭력 행동의 발달에 기여하지만, 아동기 신체적 학대가 성인기 지속적인 폭력 행동에 대한 보다 강력한 예측인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Evans와 Burton(2013)의 연구에서는 아동기 신체적 학대가 아니라 아동기 신체적 방임이 청소년기의 폭력적 범죄와 연관됨을 밝혔습니다. 정서적 방임을 비롯한 학대의 다른 subtype과 달리 신체적 방임만이 폭력 범죄의 유의미한 예측인자였습니다.

대규모 종단연구 자료를 활용한 한국인 연구자의 연구도 언급이 되고 있네요. Yun 등(2011)의 연구에서는 아동기 신체적 및 정서적 학대가 아닌 아동기 방임만이 초기 성인기 폭력 행동의 빈도를 유의미하게 예측했습니다. 앞서의 연구가 감옥이나 소수자 집단에서 행해진 것과 대조되게 이 연구는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대규모 표집에서 아동기 방임과 성인기 폭력 행동 간의 연관을 시사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참고로 연구자는 한국 사람이지만 연구자가 속한 대학은 미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동기 방임이 어떻게 성인기 폭력 행동의 발달에 기여하는 것인지 유전적, 뇌과학적, 환경적, 아동기 정신병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중 아동기 정신병리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아동기 방임과 middle childhood(아동과 청소년의 사이쯤 되는 기간?)의 외현화된 행동 장애의 발달 간의 연관을 시사하는 연구가 많습니다. middle childhood에 나타날 수 있는 외현화된 행동 장애의 예로 적대적 반항 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와 품행장애(conduct disorder)가 있죠. 이 두 장애는 성인기 반사회적 행동과 공격성을 강력하게 예측합니다. 이런 경로를 통해 아동기 방임이 성인기 폭력적 범죄로 이어지는 것일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끝으로 고등학교 졸업, 취업, 결혼과 같은 변수들은 아동기 학대 및 방임으로 인한 성인기 폭력 행동의 가능성을 낮추는 보호 요인(protective factors)입니다. 아동기에 방임을 경험한 경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조기 개입을 하여 그 나이 또래의 발달 과업을 잘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인기의 범죄를 예방하는 한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후에 그것을 처리하고 관리하기 위해 쏟아붓는 예산에 비한다면 예방에 쏟아붓는 예산은 더 적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아동이 방임되는 것에 관한 사회적 예방책 마련은, 이 리뷰의 논리를 따른다면 사회의 범죄 발생율을 감소시키는 데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본 리뷰에서 연구자들이 외현화된 문제 행동을 결과 변수로 삼은 연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내현화된 문제 행동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측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 리뷰의 저자는 방임이 내현화된 문제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제도적 대비책 마련과 같은 주제를 염두에 둔다면 사회적 손실이 어느 정도 측정 가능한 외현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나을 테죠.

여기서부터는 이 논문과는 다소 관련성이 미약한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심리학자는 흔히 개인 내적인 것에만 관심을 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말도 일견 맞지만 개인 내적인 것과 개인 외적인 것, 즉 사회적인 것은 당연히 결부가 돼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심리치료를 하는 전문가들은 마음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가상화폐만 해도 그렇죠. 이걸 투기로 볼 것인지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빛과 그림자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둘 수밖에 없죠. 가상화폐로 인해 불면이 생긴 어떤 사람이 치료자를 찾아 왔다고 칩시다. 투기로 인한 중독으로 접근하는 치료자와 기술적 진보의 그림자로 보는 치료자는 치료 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병리적인 혹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개인의 행동을 야기하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마음의 안팎을 오가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도 다양한 개인 내외적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원인들 간의 상호작용도 복잡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다만 그 복잡한 실타래를 잘 풀어서 최대한 인식 가능한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이 임상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최종 목표는 개인의 치료뿐만 아니라 사회의 치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 심리상담이나 치료는 초보에 가깝지만, 이 분야에 오래 몸 담게 된다면 사회의 병든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심리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본 리뷰의 저자처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개인의 행동(예. 폭행이나 성범죄)의 근원을 다각도로 탐색하여 예방책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ef)

  1. 안동현, 강지윤 (2002). 아동 학대 및 방임. 신경정신의학, 42(1), 14-33.
  2. Bland, V. J., & Lambie, I. (2018). Does childhood neglect contribute to violent behavior in adulthood? A review of possible links. Clinical psychology review, 60, 126-135. *아직 출판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논문입니다.

*이 글은 교차 게시물(cross-posted material)로 http://slowdive14.tistory.com/1298731 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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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연구 소개 감사합니다. 제가 학위 논문으로 아동학대의 subtype과 조현병 증상을 연관지은 적이 있어 더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이 계시다니 쓴 보람이 있네요. ㅎ 논문 주제셨군요. 어떤 상관이 있을지 호기심이 발동하네요.

감사합니다.

방임에 관심 갖고 논문 써서 냈으나 리젝... 남의 데이터로 쓰니 변수 통제도 잘 안 되고 결과도 아리까리했죠. 일단 방임과 학대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으니 깔끔하게 나눠서 영향을 보기가 쉽지 않은 한계도 있습니다. 더 많은 관심과 예산을 투입해 좋은 자료를 얻을 필요가 있겠죠. 빈곤과 열악한 사회적 환경은 매우 강력한 발병인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좁은 스팀잇 커뮤니티에서 방임과 관련된 연구를 하신 연구자 두 분을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변인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살리다 보면 논의 쓰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무자르듯 나눠버리면 현실 반영이 안 되고 연구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통계적 혹은 실험적 방법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힘으로 연구 수행이 어려우니 말하신 대로 아동학대와 같은 사회적 주제들은 국가 사업으로 진행이 되면 좋은데.. 아직 그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 아닌가도 싶고요. 빈곤과 열악한 사회 환경이 강력한 발병인자라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신경인지장애가 고학력이나 고소득 계층에서도 발견되긴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SES가 높은 계층보단 낮은 계층에서 발생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것 같네요.

우선은 지나가다가
@홍보해
부터 하고 댓글은 찬찬히 달겠습니다. :)

감사해요~ 저도 다른 사람을 위해 가이드독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slowdive14님 안녕하세요. 개사원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볼 때마다 반갑습니다. 자주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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