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카운셀러

in #kr-writing6 years ago

빗물이 세차게 바닥을 두드렸다.
네 마음을 보여달라고 밤새 날이 새고도 하루종일
땅을 두드렸다.

수많은 눈물이 흘렀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비는 땅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까맣게 타들어가는 밤을 보냈다.

작은 새싹이라도 하나 내어 보여주면 좋으련만

빗물은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며
내 창문을 하루종일 두드렸다.

내 생각만으로도 가득찼다고.
그만해.

비는 그칠줄 몰랐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러 밖에 나왔다.

빗물은 내가 반가웠는 지
초록에 물방울이 맺힌 나무들을 보여주었다.
나뭇가지들이 가만히 내게 손을 흔들었다.

할말이 뭔데?
비는 재잘재잘 말문을 열었다.

난 하늘로 돌아가면 땅이 그리워서 참을 수가 없어.
하늘을 둥 떠다니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나는 다시 반하곤 해.

그래서?

땅위를 맴돌고 돌다가 마음이 커지고 무거워지면
어쩔수 없이 땅으로 쏟아져내리는 거거든.
땅은 내가 와서 무척 시원할거야.
하지만 언제나처럼 말이 없어.

그런데?

꼭 너처럼 퉁명스러울 때도 있어.
가끔 땅이 내게 사랑을 고백할 때도 있어.
그 순간을 위해 나는 계속 이렇게 땅을 맴도나봐.

고백이 아주 좋았나보지?

응. 아름답고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보는 거야.
그 사랑고백에.
땅은 내게 무지개를 내어줘.
그렇게 내가 땅의 마음을 두드리고 두드리면
내가 떠날때가 되어서야
희미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는 거야.
땅은 원래 그렇게 느린가봐.
땅에 심겨진 나무들도 느릿느릿하잖아.

그런 진부한 사랑이야기 하자고 날 불러냈어?

넌 그런 사랑이라도 하고 있니?

밤새 창문을 두드려 잠을 달아나게 하더니
이제는 속을 뒤집어 놓는다.

......

네가 그리워하는 그 애를 종종 만나러 가. 그 애 소식 모르지?

알바 아니야.

그 애는 잘 지내. 가끔 니가 그 애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 애도 머를 그리워하더라.
내가 그 애의 창가에 놀러갔을 때 네 이야기를 했었어.
보.고.싶.다.
라고 하던데.

지난 이야기야. 되돌이표처럼 너같은 만남과 이별은 안해.
너나 평생 땅을 맴돌면서 살아.

그래. 걔도 니가 차갑게 돌아선 걸 알고 있더라.
그게 꽤 마음이 아픈 모양이야.

비는 지루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내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나도 너처럼 생명력이 가득하면 좋겠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리워하고 달려가고 두드리고 또 찾아오고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면 되잖아. 넌 아직 살아있어.

감정을 뱉어내고 감정을 붓고 하는 게 타이어를 끄는 것 처러 무겁고 힘들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비는 참 산만한 친구다.
내 일정에 아무 관심이 없고 제 할말을 떠들고
내 깊은 맘속 생각을 한가닥 끄집어낸다.

내가 머무는 동안 막 다 뱉어내봐. 네가 아팠던 일과 돌아설 수 밖에 없어서 마음이 무너졌던 일을 ...

사실 난 너희가 헤어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어...
숨을 죽이고 제발 제발... 바랬는데

너와 그 애는 돌아서서 서로 먼 길을 가더라.
마지막으로 네가 택시에 올라타 뒷창문너머 그 애를 바라봤을 때 그 애는 횡단보도를 후다닥 뛰어가버렸지.

그때 난 네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을 들었어.

넌 보지 못했지만 그 애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울고 있었어. 마음속으로 너를 다시 만나러 갈거라고 하더라.

네 눈물이 속눈썹을 적시기도 전에 내 눈물들이 땅이 쏟아졌어. 그 날 비왔던 거 기억하지?...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비는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항상 언제나처럼...

혹시 아직도 내 연락을 기다린대?

글쎄... 세달전에 마지막으로 봤는데, 한번 전화해봐.

아니. 그럴 일은 없어. 내가 할머니가 될때까지.
그 애 얘기 앞으로도 안하면 안될까?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할 수 밖에 없어. 난 네가 이렇게 푹젖은 솜처럼 지내는 거 보는 게 슬퍼.

지금은 어쩔수 없어. 참아. 그냥 슬퍼도 참아. 그 애 목소리를 다시 들으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 그리고 또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것 같아. 안그러고 싶다 이젠.

네 마음대로 해. 그건 네 마음이니까.

나는 도통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저렇게 해가 지는 풍경을 볼 때마다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이를 갈고 부득부득 앙금을 껴안고 살아가면서
민들레 홑씨처럼 가볍게 날아가고 싶다고 하면서
어쩜 저렇게 푹 젖은 솜같은지.

나는 비록 제때 사랑받지 못하고 떠날 때에만 잠시 사랑의 달콤함을 확인하고 다시 지구를 한바퀴도는데.
저들은 참 작은 존재들이 저렇게나 굳센 고집을 붙잡고
무거운 마음을 끌고다닌다.

나는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싶은만큼 그리워하며 자유롭게 변화하며 살아가는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나도 썩 즐겁지는 않지만
새파랗게 아픈 이야기를 담담한 얼굴로 해나가는 너를 지켜보면 조금씩 마음이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가 내일의 날씨를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그 애에 대한 생각도 잊어가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 너에게 말을 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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