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와 아버지 - 수영장에서 26

in #kr-writing6 years ago

'상급 레인'에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소년이 앞에 가고 남자는 그 뒤에 바짝 붙어 수영을 시작한다. 둘 다 초급에 가깝다. 폼도 그렇지만 좀 느리다. 걷는 속도다. 그런데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한다.

수영을 하면 그들과의 거리가 계속 좁혀진다. 그들이 내 뒤에 바짝 붙어 출발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가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50m 차이를 만들어도 1번 왕복하면 다시 좁혀진다. 그럴 때마다 수영을 멈추고 그들 뒤를 '걸어' 간다. 같은 레인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추월하기도 힘들다. 나도 나름 꽤 천천히 수영하고 있지만 '걷는 속도'로 수영하는 사람들과 '상급레인'에서 함께 수영하는 건 좀 힘든 일이었다.

아이를 수영선수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쉬지 않고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조금 잘하는 초등학생을 쫓아 본 적이 있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폼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보다 빠르고 체력도 월등했다.

오늘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는 좀 지쳐 보인다. 초보자가 물속에서 '걷는 속도'로 쉬지 않고 수영한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혹시 치료나 재활 목적이라면 중급이나 초급 레인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왜 굳이 상급레인으로 들어왔을까.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들은 아마 아직 수영장 규칙을 잘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수영을 멈추고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수영장은 실력별로 레인이 구별되어 있다는 말을 하자 남자는 자신도 잘 안다면서 짜증을 낸다. 수영하다가 부딪혔냐면서 되묻는다. 당신과 아이가 많이 느려서 뒤에 정체가 되서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왜 그렇게 느리게 가냐며 '아이에게' 말한다. 애한테 책임을 떠넘긴다.

그들에게(아버지에게), 상급 레인에서 느린 속도로 수영하고 싶다면 자주 멈춘 다음 빠른 사람을 먼저 보내야 같은 레인에서 수영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상급레인에 둘만 있다면 상관없지만 여러 명이 있을 때 너무 느린 속도로 쉬지도 않고 수영하면 뒤의 사람이 추월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나갔다.

이들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수영선수로 아이를 훈련시키는 것도 아닌데 '걷는 속도'로 힘들게, 쉬지 않고 상급 레인에서 수영하는 이유가 뭘까. 그냥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일까. 세상은 여전히 잘 모르는 일들이 새록새록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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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영 2개월 반 정도 배우고 있는데, 스스로 초급이라고 보기에 초급라인에서 계속 수영을 하는데...
어르신들이 중급으로 가라고 짜증을 내시더라고요... 수력 2개월에 중급 가면 민폐라고 말씀 드렸죠...
세상에는 신기한 분들이 많습니다.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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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영장에 있는 초급분들보다 속도가 빠르신 모양이네요.

저는 잠실 수영장에서는 중급레인에 맞더라고요. 수영장마다 오는 분들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가라고 할 정도면 중급레인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요?^^(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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