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스파이를 위한 러시아는 없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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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하고 유능한 러 스파이


나는 냉전의 말미에 태어났다.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 소련이 붕괴하는 영상을 9시 뉴스에서 본 것도 같다. 그러나 그저 파편적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조차 진짜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본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본 것을 당시에 본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인지 확실히 모른다.

나는 이른바 헐리우드 키드의 아들이었다. 내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가거나 비디오가게에 갔다. 입맞추는 장면만 있어도 ‘연소자 관람불가’ 딱지가 붙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또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라도 보호자와 동행하면 볼 수 있는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았다.

냉전이 당시 헐리웃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는 것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영화 속에서 영미가 그리는 러시아 스파이란 대부분 거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신출귀몰하고 냉혹한 살인마였다. 물론, 언제나, 결국엔 주인공에게 죽임당하고는 말았지만.


는 다 어디로 갔나


애초부터 이게 다 뻥이었거나, 아니면 언제부터인가 뻥이 된 모양이다.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이 연달아 차댄 ‘똥볼’이 하나둘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다.

시작은 암살미수였다. 지난 3월 러시아 출신의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가 영국 솔즈베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이들은 러시아제 독극물 ‘노비촉’에 중독됐다. 다행히 스크리팔과 그의 딸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았다.

애꿎은 민간인만 사망했다. 스크리팔 암살 시도 현장에서 12㎞ 떨어진 지역에서 실수로 노비촉에 접촉한 영국인 남녀 연인이 중독됐다. 이들 중 여성 던 스터지스가 치료 중 끝내 사망했다.

영국은 사건 배후로 GRU를 지목했다. 용의자 2명도 특정해 공개했다. 러시아는 이 용의자들은 GRU 요원이 아닌 일반 회사원이라고 반박했다. 영국의 탐사 전문 매체 ‘벨링캣’이 이를 반박했다. 벨링켓에 따르면 용의자 가운데 1명은 러시아 연방 영웅 훈장을 받은 특부수대 군인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난 4일 네덜란드는 GRU가 지난 4월 지난 4월 유엔 화학금지기구(OPCW)를 해킹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밝혔다. 또 해킹 중이던 GRU 요원 4명을 OPCW 인근 호텔에서 붙잡아 추방했다고 밝혔다.

당시 OPCW는 스크리팔 암살 미수에 사용한 독극물을 분석하고 있었다. OPCW는 또 시리아 두마에서 사용한 화학무기 성분도 분석 중이었다.

같은날 미국 법무부는 GRU 요원 7명을 해킹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은 GRU가 OPCW, 미국 원자력발전업체 웨스팅하우스,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반도핑기구(WADA) 등을 해킹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 금융사기 혐의도 적용했다. 이 7명 중 4명은 네덜란드에서 추방당한 그 GRU 요원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GRU의 실수로 스파이 305명의 신원이 노출됐다. 알렉세이 모레네츠는 전술한 OPCW 해킹 사건 가담자로 네덜란드에서 추방당한 GRU요원이다.

벨링캣이 그의 차량등록지 주소를 추적했다. 그의 주소는 러시아의 한 건물로 돼 있었다. 벨링캣에 따르면 이곳은 GRU의 악명높은 해킹 부대 ‘26165’였다.

벨링캣이 이 주소지를 쓰는 차량을 추적해 총 305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이들의 연령은 27세에서 53세 사이였으며, 전원이 스파이로 추정된다.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에프 선임연구원은 “현대 러시아 정보기관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평가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일련의 사건에 대해 “러시아 스파이들의 역량이 과거 명성에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면서 “GRU는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는 사실도 몰랐고, 증거의 흔적을 남겨 전 세계 다른 지역의 다른 작전에까지 함께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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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댓글 달아 봅니다~ 가즈앗!!! ㅋ

우왓 언제 보아도 기운나는 조원장님의 가즈앗입니다. 가즈앗!

러시아 스파이의 역량이 예전보다는 많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역량이 떨어진 것인지 원래 그러했는데 과장이 섞여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푸틴 집권 후 러시아 정보당국 요직에 '예스맨'들이 포진하면서 엉망이 됐다는 주장도 있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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