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 이별

in #kr5 years ago (edited)

오래 사랑한 사람이 별 이유 없이, 갑자기 싫어지기도 한다. 나는 애교가 많은 그를 사랑했다. 나는 그 애교 때문에 그가 싫어졌다.

지난 사랑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시계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기계식 시계 하나를 10년 조금 넘게 찼다. 나는 그 시계를 사랑했다.

물론, 이 시계 말고도 갖고 싶은 시계가 서넛쯤 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시계를 갖게 되더라도(실은 못 가질 확률이 훨씬 높다) 평생, 이 시계를 곁에 두고 자주 찰 생각이었다.

브랜드의 파워, 가격, 성능 따위를 다 제하고 내가 보기에 내 시계는 시중의 시계 중에서 제일로 잘 생겼다. 물론, 24시간마다 밥을 줘야 하고 방수 기능이 턱없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시계가 싫어졌다. 내 시계를 포함해 모든 기계식 시계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흔히 기계식 시계는 대대손손 물려가며 차는 것이라고 한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기계식 시계는 100년도 찰 수 있다, 잘 관리해 주기만 한다면. 기계식 시계는 주기적으로, 한 3~5년 간격으로 분해소제를 해야 한다. 뚜껑을 열어 먼지를 제거하고 기름칠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기계식 시계는 너무 작고 또 너무 민감하다. 당연히 내가 분해소제를 할 수 없다. 전문가에게 분해소제를 맡기면 꽤 많은 돈이 든다. 내 시계는 한 50만원쯤, 내가 사고 싶은 시계는 100만원쯤 한다.

하루에 몇 초씩 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분해소제를 할 때가 된 것이다. 지금 이 시계를 차면서 여러 번 별 거부감 없이 분해소제를 맡겼다.

언젠가 뚜껑이 열린 내 시계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작고 정밀하고 꽉 짜인, 아름다운 세계였다.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이기도 했다.

분해소제를 앞두고 나는 내 시계가 싫어졌다. 돈 50만원이 아까운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녔다. 아름다운 세계는 작은 충격에 쉬 깨질 나약한 세계이기도 했다. 그 나약함이 치가 떨리도록 싫어졌다.

분해소제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돈에 돈을 더 모아 은팔찌를 하나 살 것이다. 녹이 슬지도, 고장나지도, 썩어 문드러지지도 않을 은팔찌를 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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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변하는게 맞겠죠 ㅎㅎ

변하지 않는 사랑도 있겠죠 ^^

시계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afines님 시계가 울면서 전해달래요.

분명 시계 이야기인데 왜 가슴이 저릿한지 모르겠어요. 정밀하고 예민하고 섬세하던 그 사랑은 나약함이 되어버리고 갑자기 꼴보기 싫어지는 마음. 흑.

새로 만날 튼튼한 은팔찌에게 잘해주세요.

미안 사랑해서 헤어지는 거...

아 이건 좀 아니네요.

가성비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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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핀시계 추천합니다.

군대시절 기억이 솔솔~

저 진심으로 지샥 살지 고민했었어요 ㅠ

분해소제..? 첨들어보는 단어네요;; ㅋ
귀한 시계는 그렇게 관리를 해야하는 군요..!!
근데.. 정말 비싸네요.. 그냥 저렴한거사서 몇해 차다가 배터리 가끔 바꿔주고 고장나면 버려도 되는 그런 시계만 차던 저이기에 더욱..

저도 뭐 과분한 시계 찼던 거죠. 생각해보면 쿼츠 시계도 배터리만 갈고 잘 관리해주면 평생 차는 거 아니겠습니까

50만원이면 고민이 될 법하네요.
어떤 사랑은 꼭 헤어져야 할 운명인지도..

대충 한 4년에 한 번이라 감당 못할 정도는 아녔지만, 그냥 왠지 싫어졌어요 ㅠ

또 모르죠 언젠가, "잘 지내니?" 하면서 질척댈지도...

돈을 더모아 집에 바밸랙 하나 들여 놓으시는 건 어떤가요 ㅎㅎㅎ
소드님 메리크리스마스 입니다^^

잘 지내셨죠? 조금 늦었지만,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랙이 집에 있긴 한데... 한계중량이 낮아서 바꾸긴 해야 해요. 지금이야 헬장에서 하니까 괜찮은데. 앞으로 꾸준히 하려면 바꿔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은 사고 싶은 랙이 있어요. 이동식인데 한계중량도 튼실하고 맘에 드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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