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집이 쩍쩍 갈라져 무너지게 생겼는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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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 용산 상가 건물 붕괴 사고 뉴스는 나를 3년 전 겨울로 데려갔다.

2015년 크리스마스가 며칠 지난 일요일이기도 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나는 기자실에서 기획기사 한 꼭지 쓰고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실력 없이 연차만 쌓은 사스마리(경찰기자)였다.

“야, 서울 OO구 주택가에 금이 가서 사람들 대피하고 난리란다. 가봐.”

지시가 떨어졌다. 먼저 해당 구청으로 갔다. 주민들이 구청 강당 바닥에 깔린 매트에 누워있었다. 알아보니 한 공사장 주변 주택 여러 채의 안팎에 금이 가고 가스가 새어 나왔다. 주민들은 살려고 도망 나온 것이었다.

주민들은 날카로웠다. 주민 A는 “멀쩡하던 집의 천장과 벽이 갈라졌다. 팬티 한 장도 들고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 B는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우리 애들 얼굴 찍지 마라”고 소리쳤다.

나는 공사장으로 갔다.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 벌써 타사 취재진이 북적댔다. 언덕 일부를 깎아지른 땅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 주택 몇 채가 당장에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구청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현장점검을 하고 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건축과 교수 C가 취재진에게 말했다. “상하수도에서 물이 새 지반이 약해져 그쪽이 내려앉으면서 균열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구청 측은 “2개 동은 붕괴 우려가 있고 6개 동도 위험한 등급이 나왔다. 붕괴 우려가 있는 동은 철거를 요청하기로 했다. 나머지 6개 동은 정밀 안전점검을 하고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공사장 인근 주택 주민 132명이 대피했다. 구청에 따르면 26가구 74명은 구가 임시로 마련한 모텔 등에서 묵고, 55명은 친척이나 지인 집으로 옮겼다.

주민 D는 “며칠 전부터 집 앞 전봇대가 싱크홀처럼 푹푹 꺼져서 구청에 신고했는데 무시한 거 같다”고 했다. 주민 E는 “건물 벽에 금이 간다는 민원을 넣었는데 구청이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원래 연휴 끝나고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새벽에 세 차례 현장에 나가 사태를 파악하고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권유했다. 거부한 것은 주민들”이라고 했다.

구청 강당에 앉아 기사를 송고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아까 소리쳤던 주민 B가 오른손에 큰아들, 왼손에 작은아들로 보이는 어린이의 손을 잡고 나를 스치듯 지나 구청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모자 너머로 8층짜리 회색의 각진 구청 건물은 굳건하게 서 있었다. 구청 정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였다. 구청에서 붕괴위험 주택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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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중이다...
라는 생각을 연상케하네요...

아아 그렇네요. 사람이 나중이라니...

하아... 번쩍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할 시간에 좀더 붕괴현장을 미리 점검했더라면 ㅠㅠ

예 그 트리가 참으로 밉게 보이더라고요.

그때 뉴스 본 것 같아요. 공무원들 그 동네 살았으면 저리했겠냐는 베뎃을 본 것 같네요...

그렇죠. 자기들 집이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애초에 공사를 그따위로 못 하게 했겠지요.

현장감이 느껴지네요. 이런 기사는 쓰실 일 없는 세상이 왔으면...

그러게 말입니다. 어찌 사건사고 없을 수 있겠냐마는... 미리 막을 수 있는 것들은 막아냈으면

아이쿠! 크리스마스트리와 붕괴된 건물이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군요!

그러게 말예요. 참 꼴보기 싫은 트리...

연말에 갑자기 집 밖으로 도망쳐서 생활해야 했을 사람들만 불쌍하네요. 그래도 그 다음에 더 큰 사고로 인한 뉴스가 나지 않은걸로 봐선 다행히도 잘 마무리 되었나봐요.

그러니까요. 아무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지만... 씁쓸...
다행히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현장은 정말 아찔했어요.

기자셨군요. 대단하십니다 ㅎ
저런 사건사고 현장에 많이 다니셨다니 고생하셨겠네요. 안다치신 것도 다행일테고요

어휴 아닙니다. 대단하긴요.
사건사고 현장에 갈 때마다 마음이 착찹하지요. 지금은 내근 부서라 좀 덜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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