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재정론은 틀렸다> 서평: 국가가 부채를 지는 것은 국가의 도덕적 의무이다!

in #kr6 years ago (edited)

이번에는 스팀잇에 쓰는 두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도 주류경제학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글의 경우 어쩌면 주류에 반기를 드는 스팀잇의 정신에 부합하는 동시에 스팀잇 등의 국가화폐 외의 대안화폐에 대해서도 반기를 드는 글일 수 있겠습니다.

최근 화폐이론에 대해 공부하면서 언젠가는 써야지 써야지 몇번이고 다짐했던 것을 서평의 형식으로 쓰고자 합니다. 제가 서평을 쓰고자 하는 책은 바로 랜덜 래이(Randall Wray)가 집필한 <균형재정론은 틀렸다>입니다. 매우 흥미롭고 강렬한 독서였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기회가 되면 읽어보길 바랍니다.

여기서 <균형재정론은 틀렸다>라는 제목 자체가 많은 분들에게 의아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균형재정은 지금까지 경제학계뿐만 아니라 언론지상에서 '절대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언론들은 몇몇 국가들의 국가부채가 GDP의 몇 퍼센트라는 소식을 연이어 전하면서 재정적자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균형재정론은 틀렸다>라는 저작은 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먼저 국가가 부채를 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계와 기업은 수입보다 지출이 적어야 지속 가능하지만 정 반대로 정부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야만 오히려 국가와 국민경제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부채를 지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주장은 언뜻 보면 상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식에 따르면 국가의 부채는 죄악이고 균형재정은 선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은 크게 두 가지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첫번째 잘못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조선시대 현물경제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나랏님이 흉년이 든 불쌍한 백성을 구휼하고 싶어도 그 구휼의 최대한도는 그 동안 나랏 곳간에 모아 둔 현물형태의 쌀과 삼베의 수량에 제약됩니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 정부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말하는 '예산제약(budget constraint)'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조선시대 현물경제와 다릅니다. 애초에 균형재정론을 강조하는 시각은 현대 자본주의 화폐경제를 조선시대 현물교환경제와 비슷한 모델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틀렸습니다.

현대 화폐경제에서 화폐는 현물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현대경제의 화폐의 본질은 바로 신용입니다. 그리고 그 신용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부채입니다.

이처럼 균형재정론이 견지하는 가장 잘못된 가정 중 하나는 국가가 가계나 기업과 똑같은 예산제약에 직면한다는 가정입니다. 확실히 기업이나 가계는 영구적인 부채를 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채는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에서 비롯됩니다. 이에 따르면 어느 가계도 어느 기업도 영원히 부채를 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계나 기업은 수입 이상의 지출을 영구적으로 지속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어느 시점에서든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이뤄내거나 지출 이상의 수입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경제주체로부터 신용을 얻고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 가계나 기업과는 다른 입장에 있습니다. 국가는 그 본성상 원래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것이 당연합니다. 이는 국민경제 전체를 회계적으로 일관되게 측정할 때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귀결입니다. 이게 이상하게 들린다고요? 자, 차분하게 잘 생각해 봅시다.

일단 대외부문이 존재하지 않는 폐쇄경제를 생각해 봅시다. 이때 국민경제 전체를 차변의 금융자산과 대변의 금융부채가 서로 상계되는 T계정으로 일관되게 측정합시다. 또한 이때 국민경제의 하위부문을 정부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눠서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부문이 부채를 져야만 비로소 민간부문이 순자산(흑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다른 논리적 가능성은 없습니다.

정작 경제학자들이 이 사실에 무지한 이유는 경제학자들이 회계를 잘 못하기 때문이라고 래이는 말합니다.

특히 국가가 지출해야 할 영역이 복지지출, 사회안정망확충, 고용확충 등이라면 이러한 지출을 통해 국가가 조세수입 이상의 지출을 통해 부채를 짊어지는 것은 오히려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도덕적 의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재정지출을 통해 노인연금을 지급하고 이를 통해 국가가 부채를 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노인연금을 지급받은 노인은 연금 중 일부를 저축할 여력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노인의 순저축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국가의 재정적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서 재정적자가 어째서 잘못이 될까요? 오히려 적어도 이 경우에는 재정적자는 마땅히 국가가 짊어져야 할 도덕적 의무라고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정부의 재정적자를 통해 청년이 더 많은 고용기회를 얻고 빈곤층이 빈곤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 재정적자는 마땅히 국가가 짊어져야 할 도덕덕 책무 아닐까요?

폐쇄경제 전체를 고찰하자면 국가는 오히려 자신의 적자(부채)를 통해 다른 가계와 기업의 흑자(금융 순자산)를 뒷받침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부채는 그 자체로 나쁘지 않습니다. 강형욱 선생님의 말마따라 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듯이 이 세상에 나쁜 재정적자는 없습니다. 다만 나쁜 것은 개를 잘못 길들인 견주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쁜 것은 재정적자를 잘못된 용도로 발생시킨 정부입니다.

좋은 용도로 발생한 부채란 바로 일하면서 소득을 버는 보통의 성실한 가계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고용기회와 사회적 안정망을 부여하고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재활 기회를 부여하는 데 따른 지출에서 비롯된 부채입니다. 나쁜 부채는 부자감세를 통해 생긴 부채입니다. 또한 나쁜 부채란 지난날 금융위기처럼 마땅히 파산시켜야 할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지 못하고 열심히 일한 가계와 기업 대신 이들 부실 금융기관의 악성부채를 구제해주는 데서 생긴 정부부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어째서 정부는 가계와 기업과 달리 재정적자를 영구적으로 안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의 성격 그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국가는 자신이 정한 국가화폐로 세금을 납부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는 자신이 정한 화폐가 경제 내에 유통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 뿐이니까요. 결국 모든 경제주체들은 언젠가는 국가가 정한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수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 국가 역시 국가화폐를 지정함으로써 동시에 자신이 정한 화폐로 세금을 수령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국가는 자신이 정한 국가화폐의 발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발권력의 원천은 크게 정부의 국채발행과 중앙은행의 지준금 공급입니다. 국가는 자신이 가진 이러한 발권력을 통해 민간에 대해 이런 저런 적자지출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적자지출은 앞서 말했듯이 민간의 저축(순자산 보유) 원천이 됩니다. 이처럼 국가는 이런 적자지출을 통해서만 민간부문에서 흑자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간이 비로소 국가에 세금을 낼 여력이 생깁니다.

일전에 케인스가 설명했다시피 누군가의 지출이 있는 다음에 다른 누군가의 소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득이 있는 다음에 저축과 세금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이 현실경제의 작동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재정수지에 관한 설명을 할 때 궁극적인 출발점으로 삼아야할 것은 (자국화폐의 발행을 통해 민간의 수요에 부응하는) 국가 지출입니니다. 국가는 사전적인 조세수입의 한계 내에서 지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자신의 발권력을 이용해 적자지출을 한 다음에 그 일부를 조세로 회수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다시피 이러한 국가의 지출은 사전적인 조세수입 없이도 국채발행을 통해서든 중앙은행 차입을 통해서든 어떻게든 달성됩니다.

이처럼 개별 가계와 기업과 달리 정부는 자신이 이미 민간에 대한 행한 지출을 통해 제공한 통화의 일정부분만을 조세라는 형태로 회수하는 존재입니다. 이때 정부는 자신이 지출을 통해 제공한 화폐보다 더 적은 양을 조세로 거두어야 마땅합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정부는 반드시 재정적자를 통해 정부예산을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정부가 철저히 조세수입 한도 내에서만 지출해야 한다는 균형재정 예산제약을 스스로에게 엄격히 부과한다면 정부는 궁극적으로 민간에서 창출된 순자산(흑자)을 전부 국가에 귀속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닙니다.

내친 김에 민간이 창출한 순자산을 국가에 귀속시키자는 이야기는 바로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주의자이므로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극단적인 발상이 평소 정부의 철저한 균형재정을 요구하는 이들이 지향할만한 일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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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지난 댓글에서 놓친 부분인데 저는 이 글이 스팀잇 등의 국가화폐 외의 대안화폐에 대해서도 반기를 드는 글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레이가 화폐를 신용/신뢰의 징표(token) 또는 차용증서라고 본 것은 스팀잇에는 딱 맞는 정의죠. 그런데 작가님... '도덕적 의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가신 거 같아요~ㅎㅎㅎ ^^

그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짚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넵~ 건필하세요~^^

Why do we fall..?

So that we can learn to pick ourselves up.

블로그에만 올리시는지 알았었는데 스티밋에도 글을 올리시기 시작하셨네요. 자본 측면에서 볼 때 부채도 '자산'이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나라 정부가 빚이 많다고 하면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라 걱정을 안할 수 가 없죠. 특히 이러한 정부부채로 위태한 나라로 바로 옆나라 일본이 종종 언급되면서 '우리도 저렇게 되면 망해!'하며 겁주는 언론도 많구요

바로 그 '겁주는 이야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가분의 경제학' 신봉자로서 오늘도 밑줄 쳐 가며 공부하고 갑니다!

엌 과찬의 말씀입니다

Randall Wray의 Modern Money Theory를 번역한 책. '균형재정은 틀렸다'라는 섹시한(?) 제목이 붙어 작년말에 출간되었는데... (서평의 제목 또한 못지않게 섹시하다. 재정적자가 '도덕적' 의무라니... 와우~) 글쎄... 오늘날 '균형재정론'을 마음 속 깊이 진리로 신봉하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이미 재정적자가 일상화된 글로벌 경제에서 적절한 문제설정은 '어떤 적자가 좋은 적자인가?'가 아닐까? 현실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이 책 역시 선대에서 이미 제기된 균형재정론의 오류보다는 '좋은 적자와 나쁜 적자를 가려내는 이론적 툴'을 제공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미덕이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신고전파 헤게모니 아래 균형재정론에 대한 환상, 재정적자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라면 얼마간 인정하겠지만...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압도적인 두께에 책값 또한 압도적이라는 것...ㅋㅋ(책과 글의 의의에 합당한 봇/팔/리 삼종세트 발사합니다~^^)

와우! 독자를 발견하니 참 반갑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습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전문 연구자도 아닌 개인 더러 사라는 건 폭력입니다. 전직 번역가/출판사 사장의 솔직한 고백...ㅎㅎ

애용하시는 지역 도서관에 구매 신청을 하시면 좋지요. 저도 조만간 하려고요. 안 팔릴 줄 알면서 낸 역자 홍기빈과 출판사의 정성이 고마웠습니다.

네... 사는 곳이 일산이라 도서관 시스템은 잘 돼 있는 편입니다. 상습 구매신청자이기도 하구요.^^ 안 팔릴 줄 알면서 책 내는 심리... 해봐서 압니다.^^ 이런 책은 도서관에서 구매해 주어야 할 공공재라는 뜻에서 한 농담이었는데 자칫 오해할 소지도 있었겠네요. 저 역시 출판사의 엄청난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번역 및 출판 쪽의 같은 업종에 계신 적이 있다는 걸 몰랐다가 약간 눈치만 챘습니다. 공공도서관 도서 신청은 저와 비슷하시네요. ㅎㅎ 오해하진 않았습니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현물생산 능력이 계절적 한계를 초월한 현대시대에는 고전적 개념은 폐기해야죠.

동감합니다.

결국 '건전한국가'가 핵심이군요. 현재의 자본주의적 아니면 민주주의적 질서의 틀안에서 건전한국가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 '건전한 국가'가 '건전한(?)' 재정적자로 구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드는 군요^^

레이가 어디선가 쓴 글에서 '국가가 적자 지출로 (민간의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새로 찍어내서 쓴 돈의 양이 민간에 새로 유입되는 통화량이다. 즉, 국가의 적자 지출 = 민간의 통화량 증분이다'라고 이해할 만한 대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부분에 관해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적 요소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레이의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모르긴 해도, Wynne Godley인가요? 이 냥반의 거시경제 부문별 항등식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단순한 상상으로는, 제 메모(https://steemit.com/kr/@hsalbert/2tbppq) 말미의 창수/갑돌/영수 사이 채무증서 유통에서 창수의 발권(채무증서, iou)이 통화 창출이고, 영수가 창수 집에 가서 이 iou를 건네는 것을 세금 납부에 비유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와인 고들리까지 섭렵하셨다니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근 후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오해십니다. MMT를 얼떨결에 접하고, "신기하네, 이거 뭐지?" 하다가 레이가 어디선가 mmt 발상의 기원으로 knapp, 민스키, 와인 고들리, 아바 러너, A mitchell innes를 열거하기에 고들리의 이름만 들었을 뿐 공부하진 못했어요. 고들리의 업적은 엄청나서 엄두가 안 납니다. 누가 갈촤주길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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