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단상: 지자체가 지역화폐의 최대 수요자가 되어야

in #kr6 years ago (edited)

지역화폐 단상: 지자체가 지역화폐의 최대 수요자가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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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지역상품권

이재명 지사가 취임한 후 경기도에서는 '청년배당(기본소득)'과 '지역화폐'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재명 지사는 청년배당 등의 각종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함으로써 '복지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과 '지역화폐'는 이재명 지사 사회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 기본소득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제시했으니 이번에는 지역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경기도에서 시행할 것으로 보이는 지역화폐의 모델은 성남시의 지역화폐(성남사랑상품권)를 통한 청년배당 지급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기본소득이라는 말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지역화폐라는 용어에서도 '정명(正名)'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청년배당은 기본소득이 아니듯이 지역상품권은 지역화폐가 아니다. 전자는 후자로 이행하기 위한 징검다리라고 우길 수 있으나 그것은 좋은 시기에 호박에 줄을 그으면 수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화폐에만 논의를 한정하면, 상품권을 아무리 유통시켜도 그것은 죽어다 깨어나도 화폐가 될 수 없다. 주류 경제학은 물론 화폐의 기원을 "유통의 활성화 → 화폐의 정착"이라는 식으로 설명(활발하게 유통되면 말보로 담배도 화폐가 된다! 2차대전 포로수용소에서는 그랬다!)하지만 그건 주류경제학이 틀린 거다.

한편 각종 선거 공보물, 성남시 홍보자료, 언론기사를 보면 성남시를 포함해 지난 지방선거 이래 공약으로 내걸렸던 지역상품권 활성화 정책 등은 대부분 지역화폐로 지칭되어 있다. 아마도 정책의 참신성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지역상품권을 지역화폐라고 자꾸 포장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화폐 본래의 의미에 비춰볼 때 그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선 화폐의 기능을 열거하자면, ① 결제수단, ② 교환의 매개수단, ③ 회계의 계산단위, ④ 가치의 저장수단 등이 있다. 사실 지역화폐라 해도 국가화폐를 계산단위로 삼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것은 제외하도록 하자. 또한 지역화폐의 도입 목적은 자산축적이 아닌 소비와 유통 활성화에 있으니 가치 저장수단 기능도 제외하자. 그렇다면 남는 것은 교환의 매개수단과 결제수단이다. 결국 지역화폐의 관건은 결제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교환수단으로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수용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역상품권은 지역 내 지정된 상점에서의 제한적인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뿐 실제로는 지역 내에서 전방위적으로 유통되지 않는다. 즉 교환의 매개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중에 보겠지만 이것은 정책의 한계점을 낳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각종 지자체에서 홍보하는 지역화폐란 사실은 소상공인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상품권 정책에 불과하다. 물론 상품권을 통해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인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을 올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발생한 소득 또한 지역 내에서 순환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지역상품권을 도입하는 대다수 지자체는 소득의 외부유출이 심각한 지역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상품권을 수령해서 현금으로 교환한 소상공인이 지역 내에서만 지출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소득에서 나온 지출이 다른 누군가의 소득이 되는 등의 연쇄적인 효과, 즉 ‘소득승수’의 발생에 의한 지역경제 활성화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한계지점은 상품권의 이름을 화폐라고 바꿔 부른다고 해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지자체는 상품권에 대해 100% 현금 지급준비를 해야 한다. 만일 지역상품권을 굳이 화폐제도라 부른다면 과거의 금본위제나 달러와 100% 태환을 보장하는 개발도상국의 화폐와 비슷한 위상이다. 한편 현대 화폐제도의 핵심은 부분지급준비제도(일부 국가는 아예 지급준비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이며, 더 심원하게 말하자면 화폐는 (은행)신용이다. 이러한 신용은 소득의 실현과 이윤의 회수까지 시간이 걸리는 생산과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출 등으로 창출되지만 거꾸로 이러한 신용 그 자체가 생산과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물론 현재의 신용화폐제도는 은행과 기업 간의 신용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노동자와 소상공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는 소외되어 있기 십상이다. 다만 분명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던 현대화폐제도의 원리를 지역에 적용해볼 필요는 있다.

본래 지역화폐는 '사회운동'으로서 시작되었다. 또한 그 지적 기원은 프루동의 '노동화폐(개인이 제공한 노동에 대해 사회가 지는 부채의 형식으로 화폐를 발행하는 시스템이며 이자를 낳지 아니함)'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지역화폐는 지역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교환을 지역 내 참가자들 사이에서 활성화하자는 운동으로서 시작된 것이다. 이때 지역화폐를 뒷받침하는 것은 화폐에 대한 참가자들 간의 신용이다. 지역화폐가 정말 의미가 있으려면 ‘현금’에 의해 뒷받침 되지 않는 지역 내 신용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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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키즘 사회주의 사상가 프루동

물론 이러한 자발적인 지역화폐 운동에도 한계점은 있다. 애초에 화폐가 범용성을 지니는 이유를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만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제력이 없는 참여만으로는 지역 내에서조차 확장성과 통용력을 가질 수 없다. 운동으로서 돌파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나 지자체의 권한을 빌려오는 방법을 최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그것 역시 앞서 보았듯이 상품권 정책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지역상품권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역화폐로 통용시키려면 우선 지자체 자신이 지역화폐를 (액면대로) 수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가령 지자체가 유상으로 제공하는 공공/복지 서비스에 대한 대금결제를 지역상품권으로도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면 거기서 지역화폐에 대한 신용이 발생하며, 특히 해당 복지 서비스(지역마다 있는 의료원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가 광범위하게 제공될수록 상품권 자체도 지역 내 교환수단으로 사용될 여지는 커진다. 또한 지역상품권이 교환수단으로서 지역 내에서 유통된다면 지역상품권 도입으로 인한 지역 내 소득순환도 더욱 커진다. 이렇게 된다면 적어도 지역상품권을 지역화폐의 맹아 정도로 볼 수 있게 된다.

가장 궁극적인 조치는 지방세를 지역화폐로 수령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역화폐는 법정화폐 못지 않은 통용력을 지닐 것이다. 물론 일상의 불편과 혼란 그리고 지난한 법적 제도적 개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현실화는 요원할 것이다.

다만 지자체가 유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역상품권으로도 수령한다는 정책만큼은 상대적으로 빨리 도입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지자체는 100% 현금 지급준비를 하지 않아도 발행한 지역상품권들을 성공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보다 적은 재정으로 더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금본위제 우월론나 하이에크(100% 지급준비 아래의 민간은행 화폐발행 제도)의 교설 등의 미신을 믿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은 법정화폐가 그 배후의 어떠한 실물적 가치보증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성공적으로 유통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사실 법정화폐가 통용되는 비밀은 간단하다. 국가가 법정화폐를 배타적인 세금 지급수단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세금은 아무도 피할 수 없으므로 모두가 법정화폐를 수령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범용성을 지닌다. 지역화폐에도 마찬가지의 통찰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상품권이 진짜 지역화폐가 되려면 지자체 자신이 그것의 최대 수요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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