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글쓰기]

**adulkid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있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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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글을 쓴다. 평소 생각만 했던 일을 이제야 실행에 옮기게 됐다. 어마어마한 아이디어가 지금 내 머릿속에 있다. 원고 집필이 끝나기만 하면 한반도를 뒤흔들 역사적인 베스트셀러가 출간된다. 아직 세상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이론은 아마 대중들의 지성을 한 차원 높여줄 것이다.
출간된 책이 서점 한가운데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순위에 오른 나의 저서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양산할 것이다. 나의 책은 엘리트들의 대화 주제가 되고, 이에 따라 팬덤이 생기며, 사인회도 개최하게 될 것이다. 표지 뒷면에 사인을 받은 한 소녀 팬은 자못 눈물까지 글썽인다. 얼굴을 나란히 하며 셀카를 요청하는 팬들로 늘어선 줄은 끝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첫 문장을 시작했으니 절반은 이뤄진 셈이다. 일단, 커피부터 한 모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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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출판사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투고(投稿)를 검토했다. 다들 출간만 되면 대박이 날 것만 같은 부푼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콘텐츠가 ‘남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따로 글짓기를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썼다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 어려운 걸 이루었으니 가슴에 안은 ‘자부심’만큼은 한 아름 뿌듯할 터다.
하지만 투고가 편집부의 논의를 거쳐 출간으로 이어지는 케이스는 많지 않다. 일부 문학 장르는 논외로 하더라도, 자기계발, 에세이, 실용서 등 다양한 원고들이 매일 줄을 잇지만 출간회의 테이블에 오르는 일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책 꼴이 될 만한 원고가 정말 그다지도 없단 말인가. 아니면 출판사 직원들이 출판기술을 권력삼아 ‘갑(甲)질’이라도 해대는 건가.
첫 출판사에 근무할 때 내 사수(射手)였던 그이는 나의 글을 검토하며 이런 말을 자주했다.

“얌마, 힘 빼고 써!”

맞다. ‘글을 쓴다’고 하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주변 사람들이 당신의 직업을 물었을 때 당신이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종종 “와~!”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책 쓰는 사람은 뭔가 지성이 뛰어나고 박식하며, 인격의 도야가 남다른 사람일 것이라는 괜한 이미지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바로 이 이미지가 당신을 부자연스럽게 한다. 단체로 줄을 세워놓고 발을 맞추어 걸으라 하면 평소 멀쩡히 걷던 사람이 같은 쪽의 팔과 다리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꼭 있듯, ‘짜세’ 잡고 글을 쓰자니 갑자기 생각이 굳는다. 왠지 어깨도 피곤하다.
공교롭게도 내게 드럼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처음 드럼스틱을 잡을 때부터 줄곧 “힘 빼!”라는 말씀을 하셨다. 꽤 오랜 시간 수학을 한 지금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듣는 핀잔이다. 정말이지 “힘 빼!”는 영원한 숙제다.
허나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동작을 시도하는데 그 누가 처음부터 힘을 뺄 수 있을까. 몸에 익지 않은 기술을 시도할 때는 도저히 힘을 뺄 수가 없다. 안 쓰던 근육을 일깨우려면 부자연스럽고 힘든 시간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 동작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 하더라도 반복하고 때로 익히지 않으면 금세 몸이 잊고 말아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을 수 없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자신감이 좀 붙었다’ 해도 많은 눈들 앞에 서면 다시 또 몸이 굳는다. 이것은 노력의 문제라기보다 정서의 문제에 가까울 텐데, 나의 드럼 선생님께서는 ‘무대 위에 올라, 연습하던 때의 기량을 전부 펼쳐 보인다면 박수 받지 못할 뮤지션은 아마 없을 것’이라 하셨다. 그만큼 무대가 편안하게 느껴지려면 얼마나 많은 무대를 겪어야 하는 걸까? 역시 반복된 경험만이 묘수일 터다.
고수는 정점에서 서로 만난다고 했다. 십 수 년간 책을 만들었든, 수십 년간 드럼을 연주했든,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바는 서로 같았다. 얼마 전부터 나가기 시작한 집 앞 수영장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강사조차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회원님, 힘을 좀 빼보세요. 그렇게 몸에 힘을 주시면 절대 안 떠요.”

꽤 심후한 깊이를 담지하면서도 담백하고, 진지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으며, 나의 개성도 드러낼 만큼의 글맛도 가진다면 참 좋은 글일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렇게 저렇게 궁리를 해도 좀처럼 나아지는 게 보이지 않는다. 마음 가는 대로 글이 써지지 않으면 슬며시 조급해진다. 조급함이 찾아오면 인내심은 쉬이 바닥을 드러낸다.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그래서 일단, ‘힘을 빼는’ 거다. 좋은 글을 쓰자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고려하자면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게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목표를 가질지언정, 당장에는 일단 ‘가장 나다운’ 글쓰기를 해보기로 하자. 말하듯 노래하는 게 ‘노래를 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던 어떤 뮤지션의 말마따나, 글과 말을 구분하지 말고, 카페에서, 그리고 술집에서 수다 떨듯 글을 써내려 가보자. 생각보다 쉽게 속도가 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