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생의 명상 해방구, 마음충전소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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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의 하늘은 무슨 색일까?

2018년 5월 19일, 2018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실시되었다. 1만 5천여 명을 뽑는 시험에 응시자가 21만 5천여 명이다. 전국 평균 14.3대 1의 경쟁률. 20만 명 정도는 시험에서 떨어졌다.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44만 시대. 공시생 중 다수는 낙방을 경험한다. 고시 공부의 메카라는 노량진에는 수많은 예비 공무원들이 합격을 위해 빠듯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마음이 지친 그들을 위해 가까이에서 고민을 들어주며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있다. 방전된 마음을 충전하는 곳, 마음충전소(소장 등명 스님)다.

|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나요?

노량진역에 내리자 역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빽빽하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공부하던 이들이 대부분 나와 있었다. 볼펜 딸깍이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침 삼키는 소리에도 민감한 게 수험생이라고 했던가.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열흘 앞둔 시점. 지나가는 이들은 이맛살을 잔득 찌푸리며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다. 몇몇 사람들은 길 위에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순간에도 손에 책을 쥐고 있었다.

사단법인 자비명상(대표 마가 스님)이 올해 초 개소한 노량진점 마음충전소. 공시생들이 북적이는 골목의 상가 건물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의 힘든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발 닿는 곳 가까이 문을 열었다.

마음충전소의 대표 프로그램은 마음충전명상이다. 간단한 질문들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컬러를 찾고, 1인용 텐트에 들어간다. 헤드셋을 끼고 내레이션을 따라 천천히 호흡하며 자신을 마주한다.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내 집중이 되어 자연스레 명상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음충전소에서는 각자의 성격과 힘들어하는 이유 등을 나눠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명상을 지도한다.

“처음 명상하는 사람에게 그냥 앉아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라고 하면 대부분 잘 하지 못해요. 그래서 유도명상을 통해 명상의 상태로 안내합니다. mp3에 저장된 음성파일을 통해 천천히 명상을 익히게 도와주는 거예요. 신기하게 혼자 그렇게 명상하는 것이 다른 어떤 방법보다 마음 충전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등명 스님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어설픈 위로가 때로는 상처가 될까, 열심히 하라는 말이 채찍질로 들릴까. 스님은 그저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명상을 권한다.

등명 스님은 “여기 오는 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다들 지쳐서 마음이 약해져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물으면 원인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비교하고, 포기하고, 후회하고, 회피하고, 부정하는 생각들이 원인이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공부가 힘들어지고, 책상 앞에 앉는 것이 힘들어진다. 주변 사람과도 거리를 두고 스스로 그 안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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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제야 여기 왔을까”

“한창 마음이 복잡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시기가 있었어요. 마음이 허하다가도 화가 나고 우울한 감정이 들어 어지러웠습니다. 한숨만 나오는 매일을 반복하다 마음충전소 간판을 보고 저도 모르게 들어왔어요. 스님 설명에 따라 마음 색을 찾고 텐트에 들어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명상이라는 것을 했어요. 15분 정도 지나니 눈물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시험을 준비하면서 똑같은 매일을 보내고, 힘들어도 혼자 삭혀야 하고, 모든 게 허무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명상을 하고 나니 ‘왜 이제야 여기 왔을까. 나 너무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연주(26) 씨가 공무원을 준비하며 노량진을 찾은 것은 지난해 초. 고향인 대구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공무원이 되고자 상경해 공부하는 중이다. 명상을 하기 전에는 시끄러운 락 음악을 듣거나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폭식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은 일시적이라 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자존감은 낮아졌고, 공부와 삶의 목적이 흐릿해졌다. 무작정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며 안 좋은 습관들로 몸을 혹사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아주머니께 주문할 때 말고는 대화할 기회가 없대요. 저도 한마디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 적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사소한 일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화날 때가 있었습니다. 이유도 모를 감정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우울증도 생겼었습니다.”

하루 종일 학원과 독서실에만 있는 공시생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넓은 강의실에서 100명이 넘는 수강생과 함께 수업을 들어도 혼자이고, 작은 독서실 칸막이 안에서도 혼자다. 속앓이로 곪는다. 송연주 씨도 그랬었다. 명상을 만나고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신의 마음이 바뀌니 주변 환경도 바뀌었다.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였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이런 거구나. 텐트를 나와서 하늘을 보니까 되게 맑고 넓고 반짝이는 푸른빛으로 보이더라고요. 그 전에는 진짜 하늘을 볼 생각을 못 했죠. 눈부신 형광등과 컴컴한 천장이 제 하늘이었습니다. 명상을 체험한 후에는 ‘나’를 돌아보고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정말 많이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스스로 느껴질 정도로요. 명상의 느낌을 알고 난 후에는 거의 매일 찾아와요. 또 이곳에 오지 않아도 혼자서 명상합니다.”

마음충전소에서는 마음 트레이너 선생님이 고민 상담과 명상을 지도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려 애쓰고 있다. 힘든 일상 속에서도 마음 써야 할 곳 많은 공시생들의 방전된 마음을 충전해주려 노력 중이다. 등명 스님은 말한다. “명상하세요” 44만 공시생에게 권한다.

김우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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