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인도 해외연수 보고서 표절 사건 외전 - 표절의 표절의 표절

in #kr6 years ago

어제 지방의회의 엉망진창 해외연수 표절 보고서에 관한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2017년 3월 경북 청도군의회가 인도에 다녀온 후 제출한 보고서를 나중에 인도에 다녀온 경북 군위군의회와 충북 영동군의회가 그대로 표절해서 제출했다는 스토리입니다. 애초에 연수 목적지 자체가 관광에 있다는게 문제라는 지적도 했구요.

오늘은 간략하게 추가적으로 알아낸 사실들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어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표절을 한 군위군의회와 영동군의회가 문제고, 표절 당한 청도군의회는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청도군의회도 베끼기로는 별 차이 없다는 슬픈 진실이 (...)

청도청도.jpg

문제의 청도군 보고서입니다. 2017년 3월에 연수를 다녀오고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국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있으며, 전체 의원은 총 545명 (...) 2010년에 여성의원 할당제 법안이 통과되어 실시되고 있으며, 여성 의원의 비율은 하원 10.8%, 상원 8.8%, 지방의회 의원들은 8.5%입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가 않습니다. 2010년에 여성의원 할당제 법안이 통과되어서 실시되고 있는데, 여성 의원의 비율은 10%나 그에 못미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보통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면, 여성 의원 비율이 이렇게 낮지 않을텐데요?

위키피디아의 인도 여성 할당제 법안 항목을 찾아보면 해답이 나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인도의 상원인 라쟈 사바에서 2010년에 여성 할당제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하원인 로크 샤바에서 법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지 않아, 법안은 결국 통과되지 못하고 하원이 해산한 2014년에 폐기되었다고 합니다. 보고서에서 이야기했던 "2010년에 여성의원 할당제 법안이 통과되어 실시되고 있"다는 건 잘못된 정보인 셈이죠.

그뿐 아니라 보고서에서 소개한 여성 의원 비율 역시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보고서가 쓰여진 2017년 4월 기준으로, 국제 의회 연맹(IPU)가 밝히고 있는 인도의 여성 의원 비율은 하원이 11.8%, 상원에서는 11.1% 입니다. 보고서가 밝히고 있는 퍼센티지와 다릅니다.

결정적인 오류는, '총 545석' 이라는 인도의 국회 의석 수입니다. 545석이 상원과 하원을 합친 것인지, 하원만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보고서에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못합니다. 역시 위키피디아인도 국회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인도의 상원(라쟈 사바) 의석의 정원은 250명이며, 인도의 하원(로크 사바)의 정원은 552명입니다. 보고서가 쓰여진 2017년 4월 시점에서는 결원이 있었기 때문에 라쟈 사바의 의원들은 총 244명, 로크 사바 의원들은 총 542명이었습니다. 역시 IPU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청도군의회 보고서에서 545석이라고 주장한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정보인 셈이죠.

그렇다면, 청도군의회가 구체적인 수치와 정보들을 제시하면서도 다 틀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잠시 구글링을 해보니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볼까요?

인도여성.jpg

2010년 3월 10일, 인도 상원에서 여성 의원 할당제가 통과된 이후 나온 한겨레의 기사입니다. 여성 의원 할당제가 상원에서 통과되었을 무렵만 하더라도, 하원에서 별 다른 문제 없이 제도가 통과될 것으로 여겨졌기에 한국에서도 많은 언론들이 관련한 기사를 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결국 제도의 시행이 좌초된 바 있구요.

재밌는건, 청도군의회의 2017년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치들이 2010년 한겨레 기사에 나온 수치들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총 545석의 의석, 하원의 10.8%, 상원의 8.8%, 지방의회의 8.5%. 이제 좀 어떻게 된 상황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결국 영동군의회, 군위군의회 등이 표절한 청도군의회의 인도 연수 보고서 역시 무려 7년 전의 국내 언론 기사들에 실린 이야기를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직접 인도에 가서 조사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최근의 자료들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예전 신문 기사를 아무런 고민 없이 베꼈다는 뜻이죠. 위키피디아만 확인해도 체크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지방의회의 공식 문서에 버젓하게 남아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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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스팀잇 생활하시나요?
무더위야 가라!!!!

좋은 분석 감사합니다. 공공기관별로 비슷하거나 같은 사업을 발주하여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가 많다단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예를 들면 광역지자체에서 수억들여 웹 주제도 사이트를 구축했는데 또 기초지자체에서도 웹 주제도 사이트를 구축하여 또 수억을 쓰는 사례가 있던데요.

그거 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전혀 통일성도 없고 불필요한 사이트는 계속 생기고... 안그래도 요즘 조사하고 있는 문제가 조금 그 주제랑 연관된 문제이니 나중에 또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듯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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