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교

in #kr5 years ago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jpg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이미지 출처)

나를 찾기 위해 초록 문을 활짝 열고

하얀 커튼을 걷고 전라로 누웠네
어떤 도둑도 타인도 들어오지 않도록
오직 바람만이 들어와 집이 되도록
바람이 모든 것 위에서 표정이 될 때
시작없는 춤 속에서 새로이 짝짓고 물들고
끝없는 직조 속에서 나를 잃어 버리며 찾네
온몸이 시원하게 달아올랐을 때
들을 수 있네, 공기가 숨 쉬는 소리를
언제부턴가 손에 걸린 팽팽한 금빛 실
살며시 잡아당기며 그 위를 내달리면
모든 것이 배열되네, 나를 해독하며
보랏빛 모이라이는 옷을 벗으며 두르네
어서 오려므나, 나의 아이들!
너희를 낳기 위해 나는 태어났으니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발을 딛으면
논리보다 빠른 논리가 잔도로 펼쳐지지
꿈에 취한 프쉬케를 서풍이 받치듯
벼랑의 감각을 즐기게나, 몽유병자여!
아득하게 벌리고 있는 심연의 입 위에서
펼치고 튕기며 내달리는 말이라는 걸
벼랑은 방향보다 많은 방향으로 끝없이 피어 가는 길
이 미로는 실도 날개도 용서하지 않아
그 위에서 흐르는 물을 내려다볼 때
바람을 즐기며 나는 흐르고 있네
나비의 양면처럼 하늘과 바다도
달리는 그에게는 어떤 옷도 없지만
가벼움 속에는 모든 옷보다 많은 옷이 있지
춤추는 바람이 모든 옷을 벗기고 내달리며
근사한 솜씨로 본 적 없는 풍경을 펼쳐 낼 거야
꽃가루를 온몸에 휘감은 파렴치한 도둑이
춤추며 베일을 벗을 때 꿀은 시로 피어나네
꽃가루 밑 수의만이 구름으로 흩어지고 있어
그 음란함 속에는 오직 하나만이 없지
그곳은 따뜻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아
오히려 무한한 거리와 폭력을 인식하지
그 사이로 바람이 즐겁게 내달리니까
그 끔찍한 균열음을, 무시무시한 피리 소리를
사람들은 때로는 웃음이라 부르네.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3
JST 0.033
BTC 62772.18
ETH 3032.07
USDT 1.00
SBD 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