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 버린 곳

in #kr5 years ago

353px-Goya_Dog.jpg

(프란시스코 데 고야, <개>. 이미지 출처)

노을도 들지 않고 식은 하늘 밑에서

혼자서 나는 보았어,
그것이 영영 흩어져 버리는 게 싫어서
영원하게 만들면 나도 영원해질 것 같아
그렇지만 함께 올려다볼 옆얼굴은
없네, 영원히 없어,
놀랍도록 풍요의 조건인 불모야.
언제나 따뜻하게 식은 바람만이 지나가네.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까?
아니, 이젤은 무겁고 붓은 느리고
물감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빈약하지.
풍요는 빈손에 있는 법,
손이 꽉찬 화가가 뭘 볼 수 있겠어?
악기가 있었다면 좋았을까?
어째서 완벽에 소음을 더하지?
음악은 말라붙은 이를 위해 준비된 꿀물
이 촉촉한 사막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아.
귀머거리들에게만 이어폰이 필요하듯―
기억할 수 없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불쌍한 나
그래,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내가 있었어.
슬프게도, 유일하게도, 영원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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