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이라는 끈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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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이미지 출처)

미신의 어머니는 당연히 공포다. 사실 악덕 중 공포라는 퓌티아의 자식이 아닌 것이 몇이나 되던가? 하여간, 과학과 이성의 시대라는 현대에조차 불안과 공포가 있는 이상 미신이 사라질 일은 없다. 과학과 이성의 수혜만을 누릴 뿐인 비이성적 우중들뿐 아니라, 최고의 교육을 받고 가장 높은 위치에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들조차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인간 존재의 앞에서, 옆에서, 밑에서, 위에서 매 순간 거대하게 입을 벌리고 나타나는 두려운 암흑의 구멍을 과학과 이성은 결코 메워 주지 못한다. 고양이의 발걸음이든 곰의 힘줄이든, 인간에게는 끈이 필요하다.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더 이성적인 것은 그들이 둔감하다는 것과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사에서 최고의 미신 사냥꾼이 그리스도교였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를 위협하는 외부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에 대한 공포다. 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의 적 이상으로 신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힘들의 불안정한 공존이다. 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태에 반응하고 그것을 해석하며 자신을 표현하여 몸에 쾌 혹은 불쾌를 일으킨다. 이성적인 왕이 동요를 막으려 해도, 시중에는 이미 사태에 대한 미신적 인과 연결과 고통스러운 가설들과 책임론이 광범위하게 유통되며 머리와 위장에 불을 지르고 있다. 신민들의 그러한 역동성을 왕이 온전히 통제하고 이끈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야말로 또 하나의 미신이다. 누군가가 '재수 없는 소리'에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재수 없는 일의 실현에 대한 멍청한 공포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불안정한 영토와 신민들이 동요하는 것에 대한 공포와 격분이다. 그 격분이 군주로서의 무능함의 발로라는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그것은 모든 국가가 가진 히스테리다. 물론 이 두 공포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채 뒤섞여 꼬리를 물고 갈마든다. 그런데 「나는 두렵다」와 「내 안의 많은 상반되는 힘들 중 두려워하는 녀석이 있다」는 명제는 어떻게 다른 걸까?

성격의 유약함으로 인해, 혹은 지나친 섬세함으로 인해 다양한 힘들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권위와 통제력이 약해져 있는 국가는 전복되어 무정부 상태에 놓일 위기에까지 처하게 된다. 신발 끈이 풀리는 것이다. 유력한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이 이제는 무력하고 잔뜩 겁에 질려 있을 뿐인 왕을 붙잡고 재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끝없이 재우지 않은 채 꼬집고 구타하고 불로 지지며 고문한다. 여기서 왕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낙사고라스의 무력한 이성이 아니라 제사장으로서의 책잡히지 않을 의식 수행이다. 태양은 멀고 공포는 가까우니까. 그것을 일상적으로는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찝찝함을 남기지 않기 위해」라고 표현한다. 물론 더 좋은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의 감언이설이겠지만 말이다. 수신에서 연애,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수와 감정이 문제가 되는 모든 곳에서는 이성의 커피가 아니라 통치술이라는 알약이, 알코올이 요구된다.

흔히 말하는 「믿는다/믿지 않는다」는 피상적 유희의 차원일 뿐이다. 자기와 상관없는 문제라면 사람들은 자유롭게 믿느니 안 믿느니 떠들어 댈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다하는 자신의 문제가 되면, 그토록 합리적이던 사람이 온갖 신과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의 가능성에 동요한다. 과학적 담론은 확률을 계속해서 낮출 수는 있어도 마음 속에 0을 새길 수는 없으며, 무가 아니라면 모든 것은 유가 되어 버린다. 과학은 천 길 우물은 뚫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메우지 못한다.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 '통상 믿어지는 신(야훼, 알라…)을 믿는다는 자들을 벌하는 신'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왜 한민족의 고유한 신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신을 떠올리는 걸까? 실제로 존재하는 악마는 미신을 믿는 자들을 벌하는 악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 지옥은 착한 호구들을 비웃으며 불태우는 곳이고, 실제 천국은 영리한 악당들을 치하하며 근사한 주지육림을 제공하는 곳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 가설들에도 전통적 믿음들과 마찬가지의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하는 통상적인 미신들 외에도 무한한 미신들의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기묘하게도 사람들의 심리는 이렇게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심리는 여기에 동하지 않으며 믿음도 불안도 일지 않는다. 이것을 누군가는 신이 우리를 위해 그어 놓은 선이라고 지껄이겠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우리를 위해 우리 몰래 긋는 선일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감당하고 납득할 수 있는 신만 만들어 낸다. 악마보다 교활한 것은 인간이다. 악마의 부모도 인간이니 당연한 일이다.

많은 미신은 그나마 괜찮은 상태다. 그것들은 쉽게 인식하고 실천 가능한 명시적 의례의 수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톨릭적, 보편적 구원의 길이다. 공식적인 성상이 없다면 뭘 껴안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더 큰 해일을, 더 무서운 암흑의 역류를 막는 제방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정신 건강을 위한 적절하고 영리한 둔감화고 선제 조치일 수 있다. 그것은 심연 위에 우습지만 분명한 하나의 길을 긋는 것이다. 닭이든 인간이든 분필로 한 줄이면 된다. 가톨릭적 방식은 언제나 전통의 권위와 다수의 공통적 온기에 호소하며 힘을 확보한다.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면, 다수가 따르는 것이면, 그 미신은 근거 없지만 절대적인 설득력과 안정을 자아내면서 다른 심연의 미신들을 몰아낸다. 전통과 다수는 비합리적인 권위지만, 차악의 비합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은 의례나 제사, 카니발의 수준을 넘어 일상 전체를 잠식해 갈 수도 있다.

영리한 동물적 본능은 적절한 둔감성을 유지한다. 미신을 지나치게 늘리지 않도록 감각 자체를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범위 자체를 제한하는 것, 분수를 설정하는 것도 포함한다. 타인의 살과 온기에 파묻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간 감정이 닻을 내리는 항구는 이성이 아니라 이성의 육체다. 이성은 미신의 어머니인 공포 자체(그 이름 중 하나는 굴베이그다)를 응시하고 붙잡아 해부한다. 아폴론과 모르페우스의 유효 영역은 다르다. 이성은 단기적인 통치의 영역에서는 상당히 무력하지만, 장기적으로 삶의 방향을 만들 수는 있다. 불안과 공포 자체에서 자유로운 삶을, 바람을 막기 위해 더 튼튼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바람을 집으로 삼는 삶을 의지하고 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은 미신을 요구하지 않는 삶을 만들고자 한다. 필로소포스들은 소박한 옷과 불편한 잠자리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면서 부유한 소피스테스들과 구분되었다. 철학자들이 미신을 믿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그것은 구체적인 미신의 비합리성을 논증하고 비판하는 것만이 아니다. 미신과 기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비겁하고 게으른 삶의 방식을 경멸하는 것이다. 어떤 엄격함도 자긍심도 없이 유약하고 천박한 감정들이 기어오르게 하는 왕 같지도 않은 왕을, 가장 한심한 노예를 경멸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감정을 뻣뻣하게, 과학적으로 안전하게 냉각시킨다. 시를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과학은 방법론의 문제다.

그러나 세 방식 모두, 주는 것만큼 많은 것을 앗아 간다. 대범한 철학자는 예술가의 비합리적 징크스와 공포와 고통을 비웃을 수는 있어도, 그처럼 섬세하고 광기가 깃든 세계를 낳을 수는 없다. 많은 합리성은 천박하고 투박한 고자다. 모든 임산부는 겁이 많고 미신을 온몸에 둘러맨다. 심연 위에서 새로운 곳으로 발을 딛는 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온갖 소요를 일으키는 힘들의 지나친 예민함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희미한 뉘앙스를 감지해 내는 섬세함과, 욕망의 위대한 온도와 다른 것일까? 물론 그것이 이성과 정열을 통해 끊임없이 더 높은 경지로 훈련되고 조직되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 무시무시한 온도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미신을 묶고 또한 풀며 자신을 부수고 새로 낳아 갈 것이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악마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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