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기준

in #kr6 years ago

운동을 8개월가량 쉰 탓에 군살이 부쩍 늘었다. 옷으로 가득하나 입을 옷이 없는 모순적인 옷장을 들여다본다.


'하체통통족도 예쁜 핏이 나와요.'라는 광고 문구에 속아 실패한 바지만 몇 벌. 예쁜 핏은 고사하고 엉덩이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여리여리 마른 몸매는 아니지만,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비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온 옷을 입어볼 때면 언제나 나는 비만이다.


비만의 사전적 정의는 '과다한 체지방을 가진 상태'이다. 사전대로라면 난 비만인 적이 없다. 몸무게가 키-100이었을 때조차 체지방량은 표준 미만 범위에 걸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서 비만은 사전적 정의로 인식되지 않는다.


168cm에 48kg, 뱃살 없이 허리는 잘록해야 하지만 가슴은 커야 함. 팔다리는 가늘지만, 어느 정도 근육으로 탄탄해야 하고 날개뼈와 쇄골이 도드라져야 함. 종아리 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엉덩이는 처짐 없는 애플힙. 현대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미의 기준이다.


이 때문에 식단 조절과 운동은 365일 필수요, 그것만으로 안되는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가슴 수술, 종아리 보톡스, 지방 흡입 같은 각종 시술과 수술을 받는다. 미디어에서는 레몬 디톡스, 두유 다이어트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위험한 다이어트 방법들을 소개하며 겉은 물론 몸속까지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입한다.


길거리에 파는 옷들이 88사이즈부터 시작해 마른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다면, 방송에서 뚱뚱한 연예인을 '여신'이라 칭하며 '어떻게 살을 찌우셨어요? 너무 아름답네요'라고 찬양한다면. 날씬한 사람을 개그 소재로 이용해 인격 모독 수준으로 조롱하고, 지나가는 날씬한 사람 뒤에서 '와 진짜 이상하다'라고 다 들리게 수군댄다면. 그때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살을 뺄지 의문이다.


10cm 길이의 작은 발을 미의 기준으로 정해 인위적으로 발의 성장을 멈추게 했던 중국의 전족. 긴 목이 아름다움의 척도라 놋쇠로 된 고리를 목에 걸며 신체를 늘렸던 태국의 카렌족. '아름답다'라는 이유 하나로 발이 흉측하게 변형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리를 빼면 목이 머리를 지탱할 수 없어 평생 링을 끼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을 짊어져야 했다.


지금 우리가 전족과 카렌족의 전통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처럼, 먼 미래 우리의 후손들은 현재의 미의 기준을 기형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통통해야 아름답다던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하필 지금 시대에 사는 것을 탓해야 할까.


맞는 옷이 없으니 살을 빼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개인이 변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 각종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보며 사회에 의해 결정된 생각과 행동을 한다.


내 옷장만큼이나 모순적인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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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유독 남의 의식을 많이 하게끔 만드는것 같아요. 아무려면 어때!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살 권리를 찾아달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뚜렷한 주관이 있으면 상관 없을텐데.. 어린 친구들은 더더욱 미디어의 주입식 교육에 이리 저리 흔들리기 쉬우니 말입니다. 오지랖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

날이 춥네요^^
그래도 맘은 따뜻한 하루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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