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리뷰

in #kr5 years ago (edited)

올해 초에 유행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이태란(이수임 역)이 읽은 책으로 알려져있는데요.

"요즘 세상엔 왜 정신질환자가 많은가." 그 이유가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 있다고 말하는, 정신분석학자의 책입니다.

1 . 동화와 분리

책의 초반부는 정체성 형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정체성은 타인과의 '동화'와 '분리'라는 극단 사이에서 형성돼요. 타인과 함께하고 싶어하지만(동화) 또 상대와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려고(분리) 하면서 정체성이 형성돼요.

동화는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입니다. 타인이 궁지에 빠진 나를 내버려둘지 모른다는 공포심. 혼자 남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은 누구나 있어요. 학교에서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교실 밖에 나가 서있도록 하는 처벌효과는 이런 심리 때문에 있는거죠. 집단에서 배척하도록 하는 것은 가장 원시사회부터 있었던 형벌이에요.

어릴적 아기는 엄마가 기저귀를 갈아줄때 엄마의 말이나 표정을 보면서 안심해요. 오줌을 싸면 엄마가 축축하냐고 물으면서 바꿔주죠. 오줌을 싼건 자긴데 표정연기를 하면서 귀저기를 바꿔주는건 엄마죠. 어머니가 나의 신체 느낌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아기는 안심을 합니다. 엄마가 안보이면 울고요. 동화의 욕구라고 할 수 있어요.

반면 아이가 크면 조금씩 달라져요. "내가 엄마야? 난 달라!" 사람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동화의 욕구)를 가지면서 동시에 누군가 나의 영역을 침해할지 모른다는 침입의 공포(분리의 욕구)가 있어요. 타인과 다른 나로써, 자율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 그것이 분리의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면서(동화),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해요(분리)

사회적인 측면에서 동화와 분리는 어느 쪽이 너무 강해지든 공격성을 띄게 돼요. 동화가 일방적으로 강해지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위자가 서게 되고, 외부의 다른 집단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도록 조절해요. 저자는 나치가 역사를 만들기 전에 프로이트가 먼저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이라는 책에서 이런 위험성을 설명해놓았다고 해요.

반면 분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강조되면, 개인들만 남게되어 경쟁심, 사회적 고립, 고독이 초래됩니다. 나치처럼 다른 민족을 혐오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주변이들을 희생시키는 나르시즘적 폭력성을 띄게 돼요.

2 . 정체성은 이데올로기다

저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체성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긴 시간을 할애해 "그런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 곳곳에선 민족주의 집단들이 득세하고 있고, 이민자, 망명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부풀고 있어요. 핀란드에선 '진정한 핀란드인당'이 의회에 입성했대요. 하지만 '진정한 핀란드인', '진정한 유럽인' 같은 것이라는게 따로 있는 걸까요? 애초에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규명하려면 유전적인 요소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실제로 중세시대가 끝나 신중심의 윤리관이 무너지고 인간중심의 합리주의적 근대 세계관을 갖게 된 19세기에 이러한 시도가 잇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 적자생존은 다들 알고 있는 말이죠. 여기서 '적자'란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자"입니다. 그런데 허버트 스펜서를 지나서면 이 의미는 오역돼요. "가장 강한 자", "가장 성공한 자." 특정한 어떤 존재는 다른 것보다 더 강하고 모든 것을 습득한다. 약한 것들은 점차 멸종하는데 이는 세계의 자연적 흐름의 부합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장애인이나 하층민들은 사회가 돌보아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하는 기생충이 되는 거죠.

이런 시각을 가진 사회진화론이 세계를 지배하던 역사가 19세기 이후 제국주의로 나타납니다. 아프리카 흑인, 인도사람, 아시아인을 포함한 원주민등은 이성이 없는 동물보다 겨우 한 단계 높은 등급일 뿐. 착취해도 되는 저급한 인종입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생각은 유전학을 믿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가난, 실패는 병이 든 증거라고 생각했으므로 사회복지제도는 불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멸종할 수 밖에 없는 골칫덩이를 복지제도가 연장시킬 뿐이라고 생각했죠.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도 가난한 사람은 번식을 하지 못하도록 사회복지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체성이 결정적으로 태어난 지역(전라도, 경상도 사람은 ~~이래)이나 유전자 속에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정체성은 환경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구조이면서, 한 집단의 견해와 이데올로기, 특정 문화의 상징 질서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3 . 신자유주의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아흐터후이스는 정통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전자는 국가와 사회의 분리를 추구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자유시장에 복종시키려고 한다.

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방만함을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자체 규제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국가 기능을 은행과 다국적 기업의 보호자로 전화시키려 애쓰는 것이다. 학교, 의료, 보안은 개인의 문제이며 국가가 그런 일에 단 한 푼도 써서는 안된다"(131P)

  •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경제의 옷을 입은 사회진화론'

사회진화론은 되풀이 되지 말아야하는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진화론은 많은 유사점이 있으며, 사회진화론이 단지 경제의 옷을 입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진화론이 집단(백인 우월, 유색 인종 혐오)에서 개인(하층민에 대한 복지 경멸)으로 나아갔던 것과 같이, 신자유주의 역시 개인의 상황을 개인의 결정적 원인 탓으로 돌립니다.(너가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한거야) 사회진화론이든 신자유주의이든 교육이나 사회계층, 더 넓은 의미의 환경등이 아무런 영향을 하지 못하고 유전적인 요인만이 중요합니다.

사회진화론에서는 유럽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중요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부잣집 건물주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한 거죠. 거기에 덧붙여 신자유주의는 재능, 노력하고 올바른 능력을 발휘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사회진화론에서 하층민, 정신박약자, 장애인들을 구제하는것보단 도태해서 멸종을 돕는 것이 자연질서라고 믿었던 것 처럼, 신자유주의 역시 실패하는 사람을 개인의 탓으로 두며 구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 노력으로 안 되는 이유

사실 초기의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진보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연이나 혈연이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이 최고라는 말이 진보적일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얻는 것이 최고라는 자유주의의 말은 참 매력적이지만 그런 자유에는 크게는 두 가지 오점이 있는데,

첫번째로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는게 공평한 기회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죠. 똑같이 노력해도 돈을 물려받은 사람과 빚을 물려받는 사람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점은 당연합니다. 이 경우 "노력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계급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훈육 장치로서 기능할 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기회를 뚫고 성공한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성공할 가능성을 더 좁혀 놓는게 신자유주의 특성입니다. 한분야에서 우위를 점한 기업은 벌어들인 큰 수익으로 다른 시장에서 다른 상품을 판매해요. 점점 소자본의 창업으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이 실패를 예상하고 시도조차 못하게 돼요.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규범은 효율성이고 덕목은 소유욕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타적인 면과 이기적인 면이 있지만, 신자유주의는 사람의 가장 이기적인 측면만을 장려하는 사회라고 해요. 그런 사회에서 우울증, 정신질환등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해요.

4 . 결론

SKY캐슬 작가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책에서 지적하는 교육능력주의와 경제능력주의의 결합을 드라마에선 SKY캐슬에 사는 교수 자녀들이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 아파트 값을 은행에 예금하고 입시코디를 받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 다시 눈에 띄네요.

예서가 "나는 너랑 유전자가 달라."등등 유전자 드립이 많이 나오는 것도 책에서 비판하는 정체성 이론과 사회진화론과 연결 지은 점인 것 같네요.

그런 점에서 (딱히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지 않았던) 드라마의 결말은 다시 곱씹어도 아쉬울 수 밖에 없어요. 근데 이 책도 그렇게 신자유주의를 까면서도 마치 스카이캐슬 결말처럼 딱히 새로운 모델이나 시원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건 사실입니다.

현대사회에선 정신질환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점 중 가장 나쁜 측면만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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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경제의 옷을 입은 사회진화론'

잘 정리된 한 문장인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흥미로운 리뷰에 저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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