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동화_1. 미라가된 아델리펭귄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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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미라가된 아델리펭귄이야.
내 이야기좀 들어볼래?

언제쯤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 너무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어.
몇 년전인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지 이젠 헤아리기도 어려워 졌달까.
우리 엄마아빠는 수영을 엄청 잘했어. 아. 내가 본건 아니지만, 웨델물범 아줌마가 봤데. 바닷속을 휙휙.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다니는걸. 물속에서 작은 새우와 물고기를 엄청 잘 잡았는데, 그걸 배속에 넣어와서 나와 형에게 매일 가져다 주는거야. 난 매일 엄마아빠가 주는 먹이를 먹고, 자고, 먹고.. 그게 일상이었지.
아. 가끔은 엄청난 눈바람이 불기도 했는데, 별로 춥진 않았어. 엄마아빠가 항상 바람을 막아주었거든.
또 가끔은 무서운 도둑갈매기가 우리를 잡으러 오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동네 형들이 쫒아내줘서 다행히 잡혀가진 않았지. 몇일에 한번씩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긴 했지만..
난 형보단 좀 작았어. 우리형은 참 멋졌는데… 그 풍성한 털과 울음소리가 끝내줬었지. 엄마아빠가 주는 밥도 그래서 형이 좀 더 먹긴 했지만, 난 괜찮았어. 언젠가부터 형의 회색 털이 빠지고 흰털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형은 곧 엄마아빠처럼 변하더라고. 아? 그러고보니 나도 회색털 아래에서 흰털이 나고 있었던 것 같아. 주변 친구들도 모두 엄마아빠처럼 변해가고, 하나둘씩 바닷가로 몰려가서 내가 태어난 마을에는 나밖에는 남지 않았어. 가끔 엄마아빠가 밥을 주러 오긴 했지만.
어느날부턴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자꾸자꾸 심한 바람들이 계속해서 불었는데, 엄마아빠가 몇일 간 보이지 않는거야. 멀리서 보니 산 아래 커다란 돌 뒤에 우리형이 바람을 피하고 있더라고. 나도 그리로 가야겠다 생각해서 작은 발로 조금씩 조금씩 산으로 올라갔지. 다 올라간 곳에는 바람은 별로 안 불었지만, 형이나 친구들은 없었어.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르게 온통 커다란 바위 뿐이었어. 바람이 너무 심해 일단 바람이 그치고 나면 내려 가야지 생각하고, 돌 아래 누워 잠을 청했지.

딱히 추워서 이렇게 된 건 아냐. 배고픈 것도 참을 수 있었어. 어차피 엄마아빠도 털갈이를 시작해 요즘 먹이를 자주 가져다 주지 못했거든. 다 내 실수였어. 이쪽으로 오면 안되는 거였는데… 돌 사이 사이가 깊은 구멍인데, 그만 그사이에 끼어 버린거야.. 엄마아빠는 점프를 잘해서 잘 피해다니던데, 난 아직 그렇게는 못했거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말라가고 있는 거지.
그래도 괜찮아.. 엄마아빠와 형도 얼마 후 부턴 보이지 않았지만, 매일 바다를 볼 수 있었으니까. 나도 한번은 물속을 날아보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울 뿐이야. 곧 겨울이 다가오나봐. 바람이 점점 세지고 있어. 겨울엔 친구들은 보이지 않지만, 하늘이 좋아. 녹색 빛의 띠를 매일 볼 수 있거든. 마치 하늘이 음악을 연주하는것 같아. 그 뒤의 별들은 또 얼마나 멋진데.

난 여기 이대로 오랫동안 있을거야. 또 날 보러 와줄래?


가끔 남극 동화도 올려보고자 합니다. ^^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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