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끄적끄적 밀린 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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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적어 놓은 밀린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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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남편하고 서로 먼저 죽겠다라고 한적이 있었다. 우린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 죽을 것이기 때문에 둘중 누구 하나가 먼저 죽는다면 남아 있는 둘중 누구는 그 시체처리를 위해 여러 가지 귀찮은 서류작업을 하고 비용을 들여 시체를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결론은 귀찮으니 서로 먼저 죽겠다는 것이었다. 정할 수만 있다면 그리 해도 좋으련만. 그렇다고 한날 한시에 죽기엔 우리가 그렇게 애틋하고 막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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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든 제대로 하는게 없다는 느낌이다. 뭘 하나 하더라도 완벽은 아니더라도 그와 상응할 만큼은 하자라는 주의인데...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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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가 겨우 가신 것 같다. 먹구름 잔뜩 끼었던 무거운 하늘이 맑게 개인 느낌이다. 숨쉬는 공기부터 달라진건 당연히 기분 탓이겠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가벼워 날아 갈것 같다. 아, 얼마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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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프레스 140kg을 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땜에 뿜을 뻔 했다. 운동중엔 왜 이리 잡생각이 나는지... 예전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운동 끝나고 스트레칭 중에 목놓아 운 적도 있었다. 레그프레스후에 옹동이가 지끈지끈한게 제대로 했나 싶기도 하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근육통이 별로 없는게 너무 몸사리며 운동하고 있다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속 옹동이에게 물었다. 커진거니? 쳐진거니? 뭔가 달라진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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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중에 떠오른 생각은 '역발산 헬스센터'였다. 유학을 준비할 때 체력을 키운다고 헬스장을 등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관장님이 덩치가 정말 좋으셨었다. "운동은 처음이지?" 가르쳐 준다며 러닝머신부터 하자 하여 올라갔다가 3분만에 죽겠다며 뛰어 내려왔다. 처절한 거지체력. 머리도 아프고 토한다고 소파에 엎드려 괙괙거리는 나에게 그 산만한 덩치의 관장님은 시집이나 가겠냐, 애는 낳겠냐며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 놓으시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내 옆을 지켜주셨다. 30분쯤 쉬다가 어질어질 헬스장을 나오는데 관장님보다 더 큰 덩치의 아저씨의 사진이 입구에 떡 하니 걸려있었다. 사진 한번 보고 관장님 한번 보고. 내일 또 올거지라고 물으시는 관장님께 네라고 대답했지만 그뒤로 한번도 가지 않았다. 알고보니 관장님은 프로레슬러 역발산 선수셨다. 그때는 죄송했어요. 넘 거지체력이라, 많이 놀라셨죠? 지금은 레슬링도 할만한 체력과 덩치를 가졌답니다.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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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나갈때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오후에 돌아올 때쯤엔 너무나 맑은 세상만 남겨두고 떠나갔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촉촉한 보도블럭 위엔 꽃잎들이 흐트러지게 떨어져 있다. 행여라도 밟을까 깡총거리며 걷다보니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비맞은 거리만큼이나 나도 덩달아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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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고,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이들과의 몇 마디의 대화와 준비하는 음식뿐.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운동을 하고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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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중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에 한 분이 슬림 다운 인어 숏 타임! 이라며 엄지척을 해주셨다. 노노! 손사래를 치는데 운동이 다시 시작되어서 더이상 대화를 나눌수 없었다. 나머지 운동하는 동안은 거의 날라다녔다. 체중은 1도 안 준걸 알면서도 칭찬을 날 날게 만들었다. 운동 끝나고 집에 오다 문득 든 생각. 너도 살빠졌어라고 말했어야 했다는것. 이래서 내가 친구가 없는 것이다. 참 빈말이 안되는 몹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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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씹어 먹는다면 씁쓸한 맛일 것 같다는 어느 분의 말과 같이, 내 인생의 맛은 무엇일까 한번 곱씹어 보았다. 달콤쌉싸름. 좋은 일도 많지만 마음 한켠에 후회되는 일도 많음. 새콤떨떠름. 어설픈 도전의 연속이지만 아직은 미숙한 인생.




@kiwifi님이 만들어 주신 대문 중에 제 대문이 제일 인기가 많대요~ 살다보니 공짜로 이렇게 좋은 걸 얻게 되는 날도 오네요. 죽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는게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 헤딩 인생이었는데 말이죠. 하하핫.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키위파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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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동 열심히 하시는군요..
뭐 파스타 접시 나르실려면 아무래도 체력단련부터...

ㅋㅋㅋㅋ 요즘 상체운동 빡쎄게 하잖아요! 파스타접시 나르려고 그 싫어하는 어깨랑 이두운동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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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가지 매일매일 다른 맛이나는 삶이지요~
오늘은 무슨 맛이었을까요?
단걸 먹으면 짠게 먹고싶고 매운게 먹고싶고
쓴맛 보게되고 신맛에 몸서리쳐지고 ..
도통 간이 맞지 않는 하루하루 인것 같아요~!!

ㅋㅋㅋ 다채로우시네요! 좋으시겠어요. 전 맨날 같은 맛? ㅋㅋㅋ ㅠㅠ

헉 140kg 의 레그프레스를 하신다구요?? 와우

간만에 해봤는데 할만합니다. 허벅지동맹을 위해서 키우는 중이라서요 ㅋㅋ

'허벅지 동맹'...ㅎㅎㅎㅎㅎㅎㅎ

에빵님
오늘 제 인생은 조금 달콤한것 같애용
히힛
감사합니다 ^-^

오호호호! 무슨 일로 달콤해지셨는지 구경가야징~ ㅎㅎㅎㅎ1등 하셨나요? ㅋ

내일은 새롭게 내일은 처음 맞이하는거니까 ㅎㅎㅎ제시카님 화이팅!!!

별일 좀 있었으면 한다면 너무 배부른 투정일까요...? ㅋ

귀찮은일 만들 바에야 먼저 죽고 말겠어! ㅎㅎㅎㅎㅎㅎ 꼭 제시카님이 승리(?) 하시길.. 이라고 적어놓고 보니까 뭔가 이상합니닼ㅋㅋㅋ

이상한게 아니고... 이해가 안됩니다 ㅠㅠ 부디 누가 설명 좀 ㅋㅋㅋㅋㅋ ㅠㅠ

화이팅 입니당.. ~^^

ㅎㅎㅎ 감사합니다! 티원님의 댓글도 받아보네요! 씌난다!

공짜~ 좋으시겠어용~

그래서 제 이마가 망망대해인가 봅니다! ㅋㅋㅋㅋ

칠순을 넘기신 아버지께서 제게 항상 그러시더라고요.

인생?! 아직도 어려운 거지. 암. 어렵고 말고.

아마도 끝까지 미숙한 인생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고민들이 우리 인생의 가치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 스팀파워 충전 중이라 리스팀하고 갈께요~^^

리스팀 감사합니다! 완생은 없나 봅니다. 어르신께서 아직 어렵다하신다면 저는 너무 인생을 만만히 보고 있나보네요. 반성합니다. 요즘 록엽님의 스팀헌팅 활약상은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곧 발 담가야할텐데 아이템이 안 찾아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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