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에세이 11. 웰다잉은 무엇일까

in #kr6 years ago (edited)

이제 이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1달이 조금 넘어서 이제서야 잃어버렸던 진료의 감을 다시 찾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꺼져가는 불꽃을 너무 많이 본다는 것이다.

이 포스팅을 읽는 스티미언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맞기 원하십니까.

산속의 공기 좋은 병원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고 일어나니 영면을 취하는 모습 ??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에 둘러싸여서 편안하게 대화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는 모습 ??
중환자실에서 여러 주사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입에는 인공호흡기를 꼽고 의식없이 병마와 싸우다 심폐소생술로 장렬히 승화하는 모습 ??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의 선호도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모습이 분명 있기는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여러가지 임종의 모습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이 환자의 의지가 아니라 보호자의 의지처럼 느껴진 적이 많아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일이 자주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마음이 무거웠던 케이스 하나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 70세 여성
요즘들어 응급실에 환자가 무척이나 많이 온다. 내 이름으로 이미 17명의 환자가 있다. 단순 감기나 장염 같은 경환이면 20명도 큰 문제 없겠지만 이 병원의 한 명 한 명은 경환 10명을 능가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ㅎㅎ

간단하게 맛을 보자면 과거병력이 보통 다음과 같은 정도를 평균으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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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의료인이라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파블로프의 반사 수준이다. 저런 환자 17명이 있는데 이 환자가 새로 신환으로 배정되었다.......

이 환자분 기록을 봤는데 기록이 없다. 쌩신이다.
환자를 면담하러 갔는데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무려 180쪽 짜리 타병원 의무기록을 가지고 오셨다.
-_-;;;;;;;;;

환자는 작년에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 (Chronic Myeloid Leukemia=CML) 진단을 받고 올해 초까지 항암치료를 하던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 (Acute Myeloid Leukemia=AML) 으로 바뀌면서 질병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금번에는 내원 5일전부터 발열, 호흡곤란, 우측 상복부 통증이 있어서 치료하던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했더니 우측 간에 종양이 새롭게 발견되며 환자 컨디션이 급격히 악화되어 보호자 (자녀들) 이 다급한 마음에 우리 병원으로 연락도 없이 환자를 모시고 내원하였다. 그리고 이 환자는 나에게 배정이 되었다......

나 : 보호자분.......대학병원에는 입원 프로세스라는 게 있어요. 보통 외래에서 해당과 지정의 교수님이 있어야 하고 지정의가 외래에서 입원합시다 하고 입원장을 발부해야 입원이 가능해요. 응급실에서도 환자가 왔을 때 다니던 교수한테 연락을 해서 교수가 입원을 하자고 해야 입원이 가능해요. 그런데 환자분은 간단한 질환도 아니고 엄청 복잡한 질환인데 지정의도 없이 응급실에 오시면 입원이 안 된다고 보시면 되요.

보호자 : ......... 그런 절차가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너무 급한 마음에 그냥 모시고 왔어요. 어떻게 교수님 진료가 안 될까요 ??

나 : 교수님들 외래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부족해서 응급실에는 안 와요. 못 보신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보호자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대개 이 단계에서 보호자들은 거의 울먹인다.)

나 : 일단 응급실 오셨으니 급성기 평가는 진행하고 문제되는 부분은 치료를 시작하지만 근본적 질환에 대해서는 응급실에서 치료가 안 된다고 보시면 되요.

위의 패턴은 이 병원 응급실에 처음 내원하는 환자에게 녹음기처러 들려주는 레파토리이다. (진짜 녹음기에 녹음해서 틀어주고 싶다. ARS 직원 같은 느낌이 든다 ㅠㅠ)

그런데 이 환자는 상태가 몹시 안 좋아 보인다. 일단 숨을 매우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전원오면서 산소마스크도 하고 있다. 그리고 양 다리는 퉁퉁 부어 있다.

숨이 가쁜 환자들은 체내의 산소포화도 및 산성도를 평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하는 정맥 채혈이 아닌 체내 깊숙히 있는 동맥에서 채혈 (Arterial Blood Gas Analysis = ABGA) 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 환자에게 필요한 오더를 지시하고 외부 병원에서 시행했다는 복부 CT 를 리뷰했다.

간 전체에 걸쳐서 점박이물범의 무늬처럼 점점이 덩어리들이 보인다.

잠시 후 아까 시행한 ABGA 결과가 나왔다.

pH 는 산성도이다. 정상이 7.35~7.45 사이의 수치다. 숫자가 작을수록 산성화가 심해지는 것인데 이 환자는 대사성 산증이 심한 상태이다.

그리고 pO2 는 산소의 분압력을 의미하는데 정상인이 83~108 mmHg 정도의 수치가 나와야 하는데 저 환자는 압력이 감소해 있어서 66 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산소마스크 5L 를 시행하면서 나간 수치가 저 정도이니 마스크가 없는 상태라면 더 낮다는 것이다.

다른 피 검사 결과도 몹시 암울하다.

피 속의 세포를 분석한 결과인데 WBC (백혈구) 가 무려 56860 이다. 검사실에서도 정상 범위가 아니니 재검까지 해서 결과를 알려줬다. 정상 백혈구 수치가 4000~10000 사이이고 맹장염이나 폐렴처럼 몸에 염증이 발생하면 12000~19000 정도까지 상승할 수 있긴 한데 30000을 넘기면 단순 염증 반응은 아니다. 이 환자는 백혈병이 기저질환으로 있었으니 백혈병의 악화와 감염이 동반되어 있을 것이다. 백혈병이 악화되어 감염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인과관계는 알 수 없다.

그리고 Hb는 우리가 헤모글로빈이라고 부르는 산소를 운반해주는 단백질인데 4.5 다. 성인 여성의 정상 수치가 12~16g/dL 고 남자는 13~17g/dL 인데 몹시 낮다. 위장관 출혈이나 교통사고 같이 중증 외상으로 과다출혈 시 종종 볼 수 있는 수치이다. 역시 이 환자는 혈액암으로 인해 헤모글로빈 형성 기능도 이상이 있어서 수치가 낮을 것이다.

또한 간 수치가 전반적으로 안 좋았는데 그것은 간에 종양이 퍼져 있어서 간세포가 손상되어 그럴 것이다. 여기서 간에 발견된 종양은 백혈병과는 다른 새로운 다른 암 (예를 들면 대장암이나 위암 등) 일 수도 있고 원래 있던 혈액암이 간에 가서 자리잡은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진단을 내리려면 입원하여 조직검사를 시행해 봐야 하지만 나는 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아니라 백혈병이 간에서도 종괴를 형성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경험이 미천하여 그냥 나의 사견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환자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 기저질환의 악화로 최근 컨디션이 갑자기 악화되었으며 시행한 검사 상 간에 종괴가 확인되어 보호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병원에 내원한 것이다.

환자의 상태를 종합해 보자면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서 산성화로 인한 과호흡으로 인한 호흡근육의 부담을 줄여주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환자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치료를 해도 기저질환의 악화가 조절되지 않을 것이므로 인공호흡기를 달면 앞으로 의식을 회복할 일 없이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다. (인공호흡기를 달면 몹시 괴로워서 수면유도제로 환자를 계속 재워야만 한다. 그래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달고 있는 환자는 약물로 인해 의식이 없다.)

그런데 인공호흡기라는 게 환자가 충분히 호전되어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좋아져야만 뽑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많은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보라매병원 사건김할머니 사건이 생기게 된다.

결국 이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안 달면 하루나 이틀 만에 사망할 것이 예상되고 인공호흡기를 달면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사망할 것이다. (요새는 연명의료계획서라는 서식을 작성하면 다른 추가적인 옵션이 있기는 하다.)

나는 솔직하게 보호자한테 말했다.

나 : 할머니는 어떻게 해도 돌아가실 것인데 가족들은 어떤 형태의 임종을 원하시나요 ?? 원래 지병이 저 정도 악화되셨으면 평소 의사-환자 관계를 맺어온 의료진과 임종의 형태에 대해서 상의를 하시는 게 좋았을 것 같네요. 저는 오늘 응급실에서 처음 얼굴 본 의사인데 저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으시는 게 저도 유감이지만 할머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으셨습니다. 가족분이 원하시는 임종의 형태를 정하시면 저희도 그에 맞게 도와드릴게요.

보호자 : 그쪽 병원에서도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래도 저희가 자식된 도리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시고 왔어요.......

많은 자녀들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어찌 할 줄을 몰라 일단 병원에 환자를 데리고 온다. 병원의 의료진은 위와 같은 사건들이 전례로 있기 때문에 무조건 끝까지 치료를 해왔다. 그러면 노인 환자들은 평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공호흡기를 꼽히고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나는 항상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정말 올바른 임종의 모습일까. 이것은 환자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보호자들이 자녀된 도리를 다했다고 위안을 얻기 위해 다하는 자기만족의 모습이 아닐까. 환자는 정말 이런 임종을 바라고 있었을까.

이 환자는 보호자들과 상의 끝에 다시 연고지 근처의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가기로 했다. 나는 보호자들에게 전원을 가는 도중 사망하실 수도 있으니 여기 응급실에서 임종을 하셔도 되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셔도 되고 (마침 운 좋게 (?) 중환자실 몇 자리는 비어 있었다.) 원하는 대로 진행하시라고 조언을 드렸다. 그렇게 이 환자는 다시 치료받던 고향으로 돌아가셨고 오늘 내원했던 기록이 우리 병원에서의 첫 의무기록이자 마지막 의무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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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이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노년층은 점점 많아지고 암 발생률도 점점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응급실에는 이런 환자들이 점점 더 많이 올 것이다.

우리는 나의 마지막 모습이, 나의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하길 바라는가. 혹시 지금의 삶이 너무 바빠서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다가올 임종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저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형태의 마지막 모습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웰다잉에 대해 논의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외형적으로 경제발전만 이룬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의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에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을 때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실현의 마지막 모습은 꼭 본인들이 평소에 그려왔던 마지막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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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 감정이입하기 시작하면 힘드시겠어요 ㅠㅠ

그래서인지 점점 감정이 메말라가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ㅠㅠ 타인의 슬픔에 점점 공감이 부족해져요ㅠㅠ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이게 업이다 보니 쉽지 않습니다ㅠㅠ

Focal lesion에다 hepatomegaly도 굉장히 있네요. 정말 진행될대로 진행된 stage로 보입니다.
저는 대부분 사진으로 환자를 보고, 그나마 환자를 만나는 것도 인터벤션이나 초음파 할 때 인데, 그 때도 환자 및 보호자 분들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처럼 일상에서 중환자를 보는 최전선에 계신다면 그 노고와 부담이 얼마나 클 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같은 의사지만 존경스럽니다 !

그래서 그만해야겠습니다ㅋㅋㅋ

몇 년 전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감명깊게 읽었는데 이런 상황을 일상으로 마주쳐야하는 건 어떨지 정말 상상이 안 가네요

저도 그 책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좋은 책이라 주변에도 많이 권하고 있습니다 ㅎ
저도 그 책의 영향을 받아 가급적 환자와 보호자에게 최선이 되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무래도 임종의 모습이 응급실은 진짜 아닌거 같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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