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곤지암> (2018)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苛政猛於虎)

in #kr6 years ago

영화 <곤지암> (2018)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苛政猛於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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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국 공포영화에 대해 기대가 딱히 없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접했던 공포영화가 고사(2008)였기 때문이죠. 이후에 공포영화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한국에도 명작인 공포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새로 나오는 영화들이 그것을 따라오지 못해 상당히 아쉬워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곤지암이 개봉했습니다. 호평이 상당히 많았고, 저는 일단 속아준다는 느낌으로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 저는 오래간만에 좀 신이 났습니다. 명작은 아니더라도 평작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죠. 곤지암이 한국 공포영화의 부활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페이크 다큐 기법을 적절히 혼용했으며, 평범한 클리셰이기는 했지만, 꽤 특색있는 맛으로 영화가 구성되었습니다.

더 흥미로웠던 부분은 정치적 메시지입니다. 많은 기사에도 언급되어 있고, 감독도 직접 밝힌 부분이지만, 나름대로 발견한 사실을 여기에 간단히 옮겨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저 이런 생각이 있다고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곤지암 정신병원은 1961년 5월 16일에 설립되었고 1979년 10월 26일에 폐쇄되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노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시지 않나요? 1961년 5월 16일은 5.16 군사 정변이 있던 날입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시작되었지요. 그것이 끝난 날이 1979년 10월 26일입니다. 이른바 10.26사태지요.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시대에 대한 향수는 하나의 유령처럼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의 딸 박근혜에 의해 그나마 실체가 있던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완전히 허구라고 증명된 이후, 더 초라해진 모습으로 이 땅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곤지암 정신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쇄 이후, 완전히 황폐해져, 을씨년스러운 장소가 되었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죠. 박정희 정권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과 비슷합니다.

다음으로 원장에 대해서입니다. 원장은 여성이고, 영화 도중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 누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애 시절과 상당히 닮은 여성이 원장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곤지암 정신병원이 박정희 정권 그 자체라면,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원장) 박근혜라고 유추할 수 있는 인물로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서 이 원장은 자살한 상태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곤지암 정신병원의 비참함과 공포를 부각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원장은 병원을 제대로 운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락으로 떨어트린 원흉이 된 것이지요. 박정희 신화를 상당히 박살 낸 박근혜라고 이해하면 맞아 떨어집니다.

이런 곤지암 정신병원, 그러니까 박정희 신화라는 망령에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402호실입니다. 그런데 이 방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416호로 설정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416이라는 숫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방의 진실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거나 죽습니다. 곤지암 정신병원이 어떤 수를 이용해서라도 이 방의 진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지요.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와 관련된 진실들을 계속 은폐하려고 여러 공작을 벌여왔습니다. 몇 년 만에 밝혀진 7시간을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죠. 그래서 더 분노하고, 환상을 버리게 됩니다. 402호 마찬가지입니다. 이 방문이 열리는 순간 곤지암 정신병원을 지탱하던 가장 큰 괴담은 사라지게 됩니다. 별거 아닌 게 밝혀지면, 사람들의 흥미도 줄어들겠지요. 진실을 감춰야만 그 무서움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곤지암 정신병원을 탐지하러 가는 주인공 일행은 두 분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과 진실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이들. 표면적으로 두 세력의 목표는 같습니다. 402(416)의 비밀을 밝히고 그걸 세상에 공개하겠다는 거지요.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모두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이상한 현상들을 경험하고 놀랍니다. 하지만 이것 대부분은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자들의 속임수입니다. 그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속이고, 끌어들여 무언가를 얻으려고 할 뿐이죠. 한국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진심으로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자들에 의해 크게 방해받았지요. 하지만 결국 이들 모두 곤지암 정신병원의 생명력 유지를 위한 제물로 바쳐집니다. 그리고 진실은 결국 밝혀지지 않습니다.

조작은 유튜브를 통해 만천하에 밝혀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허구였다’라면서 냉소를 보냅니다. 그리고 아마 일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모두 진실에 집중해야 하지만, 몇몇 물을 혼탁하게 만드는 장사꾼들 덕분에,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조차 외면받고 조롱받게 된 겁니다. 세월호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곤지암 정신병원은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진실을 찾아 보았자, 연출이라고 불신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괴담은 세상을 떠돌게 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아마도 감독이 우리에게 질문하는 건 ‘그런데도 진실을 찾기 위해서 곤지암으로 가야 한다’거나 ‘현실을 되돌아보자’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전형입니다. 하지만 그 정치적 메시지로 인해 영화는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곤지암 정신병원이 상징하는 박정희-박근혜 정권을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에게 더 무서웠던 건,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괴담이 아니라, 그들의 가혹한 정치가 아니었을까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무섭다고 평한다면, 영화 자체보다 현실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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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한 현실들은 이제 과거였으면 좋겠습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hamishlee님 글 다 읽으니 왠지 곤지암 오늘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퇴근 후 친구랑 바로 약속 잡아야겠습니다.^_^

좋은 평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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