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기 개처럼 생긴 토끼가 있어!!!"

in #kr6 years ago (edited)

녀석은 당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날도 당근을 길게 썰어 도시락 통에 담고 산책에 나섰죠. 호수를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 익숙한 길이었습니다.

이맘 때였던 거 같아요. 덥진 않았지만 햇살이 따가웠죠. 중간쯤 어느 벤치에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생수병을 꺼내 물을 조금씩 나눠 마신 다음 저는 녀석에게 길게 썬 당근 조각을 하나씩 건넸습니다.

"와삭 와삭 와삭~"

보고 있는 제가 군침이 돌 만큼 소리까지 맛있게 먹습니다. 그때 한 꼬마 신사가 어디선가 다가왔습니다.

"아저씨~ 이 강아지 안 물어요?"

"응~ 안 물어."

대답해 놓고 나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꼬마야, 너 그런데... 얘가 개처럼 보여?"

"어? 개 아녜요?"

"에이~ 어디 얘가 개처럼 보이니? 너 당근 먹는 강아지 봤어?"

"어? 강아지 맞는데...? 그럼 아저씨~ 얘는 강아지 아니고 뭐예요?"

"얘는 참... 토끼 잖아. 귀도 길고 당근도 이렇게나 잘 먹고. 잘 봐~ 토끼 맞지?"

"어? 토끼는 꼬리가 짧은데, 얘는 꼬리가 길 잖아요. 강아지 아닌가?"

이 쯤 되면 반쯤은 넘어온 겁니다. 이럴 때 고삐를 확 당겨야죠.

"아니, 개도 꼬리가 짧은 개가 있고, 토끼도 꼬리가 긴 토끼가 있는 거야. 너 꼬리 짧은 개 못 봤어?"

"아아~ 그렇구나."

그리곤 가엾은 우리의 꼬마 신사. 멀리서 지켜보던 엄마에게 달려가며 이렇게 외칩니다.

"엄마~ 저기 개처럼 생긴 토끼가 있어!!!"


벌써 10년도 더 된 추억이네요. 녀석의 이름은 콜롬보.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 저희 부부의 '강아지 아들'입니다. 오늘은 녀석의 생일이었습니다.

12년간 저희 부부와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고 3년 전쯤 무지개 다리를 건넜죠.

작지 않는 도시에서 요즘도 가끔 저희에게 조심스레 다가와서 콜롬보의 안부를 묻는 (저희는 정작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보면, 녀석은 참 좋은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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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2003. 5. 14. - 2015. 8. 26.

생일 축하해. 콜롬보.
엄마, 아빠. 조금만 기다렸다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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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서 기다리고있다고 하잖아요 ㅎㅎ
개를 산책시키다보면 사람끼리는 인사를 안하고 개들끼리만 인사하고 가는 경우가 많죠. 주인 이름은 모르지만 개 이름은 서로 알고요

네, 그래서 녀석이 맨날 가서 놀던 곳에 보내줬어요. 지금도 거기서 친구들이랑 뛰어댕기며 놀고 있겠죠.^^

포스팅 많이많이 해주세요~

네, 반갑습니다~^^

@hermes-k님 안녕하세요. 여름이 입니다. @asbear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네~ 가이드독도 귀여워요~^^

윽...눈이 너무나 맑아요~

저 때가 저희 집에 온지 만 하루가 안 된 때였답니다. 눈빛이 한창 예쁠 때였죠... 감사합니다~

예쁜아들이네요. 몇년전 떠난 '강아지 동생'을 생각하니 잠시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강아지 동생'도 '강아지 아들'이랑 하늘나라에서 지금 우다다다다다 뛰어다니고 있을 겁니다. ^^

콜롬보..ㅜ.ㅜ.. 너무귀여운 강아지였네요..

#kr-pet 태그에 잘맞는글인듯합니다 ^^ @홍보해

네, 세상의 모든 강아지가 그렇듯... 귀여운 녀석입니다. kr-pet이라는 태그를 미처 생각 못했네요.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이 친구였군요. 눈빛이 정말 착해 보입니다. 제 동생은 고구마 킬러였는데 콜롬보는 당근 킬러였군요. 좋아하는 거 마음껏 먹으며 잘살고 있기를...

네, 콜롬보도 고구마 무척 좋아했었어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 특이한 녀석이었죠.^^

강아지들은 참 많은 것을 주는 듯 해요.
저는 아들, 딸이 있습니다. ^^

남매라니... 두 배 아니 그 이상 행복하시겠습니다^^

우앙.. 멋모르고 클릭했다 눈물이 핑 돕니다.
멋쟁이 콜롬보 생일 축하한다! ㅠㅠ

콜롬보 대신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글이에요. 콜롬보도 귀엽고 아이도 귀엽고요.
현상한 콜롬보 사진에 날짜가 적혀있는 게 왠지 먹먹해져오네요.
콜롬보 아마 잘 지내고 있을 것 같은데요. 나중에 주인을 마중나온다고 하잖아요^^

세월 참 빠르다 싶네요. 그렇게 세월이 또 빠르게 흐르면 다시 만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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