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별을 쫓는 해바라기 6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전날의 경고를 무시한 채, 나는 형의 소굴로 겁 없이 뛰어들었지만 나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형이 아니라 형의 졸개들이었다. 나는 사무실 바닥 한가운데에 쓰러져 복날의 개처럼 주먹질과 발길질에 채이고 꺾여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경고를 했을 텐데... 정신 나간 놈 같으니라고. 아주 앉은뱅이로 만들어 줄까?"

누군가의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얻어맞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온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그렇게 타작을 하듯 온 몸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맞아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마치 뜨거운 온천물에 한참 들어앉았다가 나온 것처럼 살짝 나른함이 더해져 오히려 개운하기까지 했다.

"선생님은 여기 안 계시다."

그렇게 말하는 쪽을 쳐다보니, 형을 그림자처럼 따르던 천현중이었다. 천현중은 목발을 짚고 쩔뚝거리며 내게로 걸어왔다. 천현중은 심하지는 않지만 왼쪽 발을 약간 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천현중이 짚고 있는 은색 알루미늄 지팡이였다.

나는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책상 위에 기대듯이 엉덩이를 걸쳤다. 심하게 다친 곳은 없는 듯한데, 발길에 채인 옆구리 쪽이 살짝 결렸다.

"뭐? 없다고? 어디에 숨긴 건 아니고? 어쨌든 형을 만나기 전에는 못 가겠는 걸."

나는 다리 한쪽을 책상 위로 올려놓는 여유를 찾으며 씩 웃기까지 했다.

"얘들은 정말 사나워. 조금 전에 맞아봐서 알겠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지. 선생님은 당분간 여기 오시지 않을 테니까, 그냥 돌아가는 게 몸에 좋아."

천현중이 위협적으로 말하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는 책상 위에서 내려섰다. 왼발로 바닥을 먼저 짚었는데 왼쪽 발목이 시큰거려 나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또 잠수병이 도졌나?"

나는 천현중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물었다.

천현중은 형을 만나면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얼굴에 유난히 주름이 많아 거의 마흔은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허스키해서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여튼 형에게 존칭을 쓰는 것으로 봐서 내 나이 또래 쯤 되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아무한테도 알려줄 수 없어. 특히 너한테는. 그리고 더 이상 여기 오시지 않아. 그러니 그냥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얘들한테 더 얻어터지기 전에."

천현중이 다시 나를 조롱하며 이죽거렸다.

"알았다고. 알았어. 오늘은 그냥 가지. 하지만 형한테 똑똑히 전해. 조만간 나를 찾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거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 많이 다친 것처럼 쩔뚝거리며 천현중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를 빙 둘러 선 녀석들은 전날의 앙갚음을 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얼굴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천현중의 옆을 지나치면서 기습적으로 천현중의 배를 주먹으로 한 대 때리며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빼앗았다. 이 지팡이 정도면 목검대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앞에 있는 녀석들부터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빚지고는 그냥 못 가는 게 나야!"

나는 지팡이로 놈들을 후려치며 신나게 지껄였다. 벌써 몇 놈이 머리를 감싸 쥐고 나자빠져 뒹굴었다. 하지만 너무 들떠 있었고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무엇에 발목을 잡혔는가 싶더니, 나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쓰러져 있던 천현중이 필사적으로 내 발목을 낚아챈 것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또 다시 구타와 발길질을 당해야 했고,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은 나는 포획된 짐승처럼 사지가 들려져 형의 왕국으로부터 추방되었다. 나는 더럽고 추잡한 골목의 모퉁이에 죽은 짐승처럼 내팽개쳐졌다.

"숨이 붙어있는 걸 감사해야 할 거야. 네가 선생님 동생이라 그 정도로 끝난 줄 알아. 다음에 눈에 띄면 앉은뱅이로 만들어버릴 거야."

누군가 그렇게 지껄이며 내 옆구리를 다시 한 번 걷어찼다. 더 이상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두 눈을 멍하니 뜬 채, 그대로 누워 밤하늘의 별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척 고독하다고 느꼈다.

다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한참을 누워 있은 후였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다음 벽을 짚고 절룩거리며 골목길을 내려왔다. 나의 손은 더러운 낙서들을 짚고, 나의 발은 더러운 오물들을 밟았다. 내 정신은 참담한 패배감에 젖은 채 형에 대한 적의를 느꼈다. 아니, 살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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