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두 다르고, 모두 같다.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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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8)>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갇힌다.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괴생명체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둘은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메세지는 ‘사랑의 모양’은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는 규격화된 사랑의 모양을 거부한다. 인간과 인간, 남성과 여성, 비슷한 연령, 같은 인종, 격이 맞는 계층. 이렇게 규격화된 사랑의 모양에 따르면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이름이 없어 슬픈…)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아니어야만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둘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으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렇게 기존과는 다른 사랑의 모양이 영화에서 나타난다.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의 모양도 다르지만, 엘라이자를 둘러싼 인간들이 보여주는 사랑 또한 모양이 다르다.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는 엘라이자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엘라이자의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엘라이자가 사랑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꺼이 행동한다. 우리는 이것도 엘라이자를 향한 그들의 사랑(혹은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둘 다 엘라이자를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영화는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를 통해 품격있는 인간에 대한 선망 혹은 사랑, 나아가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상에서 벗어난, 한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그렇게 규격화된 삶 혹은 사랑이야말로 품격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썩은 손가락을 붙들고 있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통해 규격화된 사랑과 정상으로 보이고 싶은 집착의 결과를 볼 수 있다.

스트릭랜드는 영화 중간에 신에 대해 언급한다. 신이 있다면, 나와 같은 인간의 모습일거라고, 그러므로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의 모습은 자연적인 것 혹은 올바르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과 인간의 행위만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영화는 신(정의)의 모습이 불변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의는 언젠가 변한다. 영화의 마지막, 스트릭랜드는 최후를 맞으며 괴생명체를 향해 신은 당신이었다고 말한다. 스트릭랜드가 맞는 최후는 자기가 믿어온 신(정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당시의 시대가 자연적이고, 올바르고, 정의롭다고 여긴 것이 서서히 깨져감을 의미한다. 자연적인 사랑, 올바른 사랑, 사랑의 정의가 변한다.

이 영화는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던 영화일까? 아니면 사랑의 모양은 결국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영화일까?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사랑, 엘라이자와 젤다, 자일스와의 사랑, 품격 있는 인간을 향한 스트릭랜드의 사랑. 사랑의 대상과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은 같다. 영화는 같음에서 출발한 사랑과 다름에서 출발한 사랑을 조망한다. 사랑이라는 본질적 감정이 같다에서 출발한 사랑은 황홀하다. 대상과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에서 엘라이자와 괴생명체가 둘 만이 존재하는 물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는 모습은 사랑이 충만한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너와 나는 다르다’는 다름에서 출발한 사랑은 공허하다. 대상과 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당(마음)에서 자리(공간)가 텅텅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다 찼다고 말하며 손님(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사랑의 본질적인 감정이 같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결국 공허한 상태만 남는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8)>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시대 방향을 보여준다. 엘리이자와 괴생명체는 같이 물 속으로 들어가고, 엘리이자의 목에 남은 상처에서는 아가미가 돋아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호흡 방법으로 숨을 쉬는 엘리이자. 앞으로 우리 시대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을 깨뜨리며(목에 난 상처), 새로운 방식(새로운 호흡 방법)을 받아들여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을 제작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마친다.

  •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 사랑의 방정식은 매우 간단합니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 복잡하고 엉망이 되어버린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반대는 어떨까요? 그건 딱지를 붙여서 한 마디로 정리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멕시코인’, ‘여성’, ‘유대인’ 같은 딱지로 그 사람을 정의해버리는 것이죠. 사실 당신에게는 정말 많은 모습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하나의 이미지로만 보는 거죠. 이러한 행위는 사랑의 반대이자, 이데올로기의 무서움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괴생명체는 하나의 존재이지만, 그는 많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에게도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과학자에게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끼게 만드는 동물이고, 군인에게는 남미에서 온 지저분한 괴물이죠. 그리고 엘라이자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일깨워주는 존재입니다. (인터뷰 전문 :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hape-of-water_kr_5a9cef0de4b0479c025473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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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어떤 용기에 담느냐에 따라서 달라 보이지만 '물'이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사랑과 참 비슷한 것 같아요.
저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던 영화라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사랑을 '물'에 비유할 수도 있겠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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