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없는 일들에게 희망을. # 왜 #중요한 #일만 해야 하나

in #kr6 years ago

쓸 데 없음이 쓸 데 있음이다.

노자 말씀이다. 쓸모없을수록 더욱 크게 쓸모 있다니 당최 무슨 말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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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선생님..... 저처럼 두상이 조금 크시군요... 괜찮아요.. 저도 살만하답니다.... 출처: 서울 신문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서 밥상 머리에서 밥에 집중하지 않아 혼나곤 했다. 궁금한 게 많을수록 혼이 나야만 하는 기구한 어린이의 삶이란. 집뿐만 아니다. "쓸 데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하고 질책을 받은 경험은 한동안 나의 입을 다물게 하는 아픈 기억이었다. 하지만 이제 극뽁! 욕 좀 먹어도 인생 재밌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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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는 아직 건재한 짱구가 있다. (출처: 짱구 만화)

한때 노자의 저 말씀에 마음을 빼앗겨 도덕경을 샀다. 책을 펴고 10장을 읽으니 단어들이 춤을 췄다. 어떤 단어는 블루스를, 그리고 어떤 단어는 힙합을. 아주 그냥 제멋대로, 도저히 머릿속에 그들을 넣을 수 없었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 후로 3년 넘게 도덕경은 내 책장 아주 높은 곳에 꽂혀 있다. 높은 곳에 책을 둔 이유는 가치 있으나 못 알아듣겠는 도덕경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였달까.

하지만 여전히 " 무용이 유용이다"라는 노자 말씀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성현의 말씀이란 한 문장 알아듣기도 힘들지만, 일단 내 마음속에 박혀버리면 잘 빠져나가지 않으니 신비롭도다. (허허)

그럼 이쯤에서. '무용 無用'은 무엇일까? 당장 결과를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책 읽기, 영화 보기, 산책하기, 좋은 사람과 카페에 가서 대화하기, 온갖 덕후성 행동 등. 지금 당장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기 힘든 않은 모든 것이 '무용'이 아닐까?

뜬금없지만 최근에 나는 블루베리 나무에 빠졌다. 블루베리를 키워보지도 않은 내가 나무를 접목하는 법, 가지치기 하는 법, 블루베리 종자 별 크기와 맛을 전부 익히게 되었다. 누워서 유튜브와 블로그를 열심히 검색한 덕분이다. 진짜 쓸 데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일들이 남들 눈에는 아주아주 '무용'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 반전이 있다.

내가 사용하는 정보는 아는 정보의 1/10이면 다행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다. "점을 연결하라."라고, 점을 연결하려면, 점이 많아야 한다. 아주아주 많은 점이 있어야 연결할 가능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언젠가 이 쓸 데 없어 보이는 블루베리 키우기 정보를 잘 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 블루베리는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그럼 지금 쓰고 있는 이 블로그를 예로 들어보자.

블로그에 글을 올려도, 아무 일 일어나는 것 없는데,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자니 진짜 의미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에 꽤 만족하고 있다. 재밌으니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쓸데 없는 일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삶에서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다. 연결할 수 있는 점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과정이니까.

삶을 즐기고 있는 의미 있는 현재가 나에겐 '쓸 데 있다.'
어느덧 30대가 되어 버렸다. 10대 때는 20대만 되면 엄청 성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피부 탄력성이 증명하는 어중간한 성인이 되고 나니, 지금 내가 원하는 걸 진짜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른 돼도 모르는 건 더 많아지다니, 10대의 나에게 돌아가 호통을 쳐주고 싶다. "나이 들면 더 살기 어려워! 미래 따위 나중에도 생각할 시간 많으니까 지금을 즐기라고 이 바보야!"하고. 아마 세상이 아주 발전해 과거로 텔레파시가 가능한 순간이 와도, 10대의 '나'는 30대 늙은이(?) 충고에 콧방귀를 뀌겠지.

누가 물어본 사람.png
아마 10대의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멋지다. 10대의 저 패기란.. (코 쓱) 출처: 카카오톡 이모티콘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지금 최소한 내 삶의 '무용'을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쓸 데 없는 일'들도 어깨를 펴고 당당히 활보할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 엄청난 성공 스토리나 결론은 없다. 아직 내 ‘무용’들은 제 시대를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치자. 쓸 데 없는 일들에게도 희망이 필요하니까. 난 오늘도 그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기꺼이 바치련다. 여러 그럴듯한 이유를 대었지만, 그냥 그렇게 사는게 당기니까.

[출처]본인 블로그: 쓸 데 없는 일들에게 희망을. # 왜 #중요한 #일만 해야 하나|작성자 ETHE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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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쓸 데 없는 일에 함께하시는 동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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