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들의 워라밸 공격과, 에밀레 옹호를 보며 우려감을 느끼다

in #kr6 years ago (edited)

저도 20대때 까지는 직장에 다니는 동생이나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녔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투자와 내 사업을 해야한다고 설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생각이 깊이 왜곡돼 아래와 같은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왕 회사에 다니면, 월급받는 것의 몇배 이상으로 일을 해라."
"이 회사는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녀라."

꽤 오랜기간 저는 저런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실제로 사원번호 3 번으로 입사한 회사는 모두가 저런 마인드로 일을해서 직원이 몇십명까지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가보니까 희생한 것에 비해서 저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러나 30대에 들어와보니 저는 물론이고 제 주변에서 뭔가 조금씩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뼈를 묻는 각오로 일하는 친구들은 여전히 자동차 할부금이나 모기지 이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있게 회사를 벗어난 사람들은 주변의 우려를 딛고 폭발적으로 돈을 버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물론 그들은 돈을 떠나서라도 훨씬 더 자유롭게 사고하고, 여행을 다니며,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 제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는 많습니다. 안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회사의 칸막이에 갇혀있습니다.

사이드잡으로 하던게 잘 돼서 회사에서 나간게 아니라 용감하게 회사를 박차고 나가서 잘된 분들이 제 주변에는 더 많습니다. 제 주변의 경우만으로 일반화를 할수는 없지만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던지게 만드는 주변 현상들입니다.

투자로, 스타트업 창업으로.. 저마다 자신의 방법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했음을 실감합니다.

투입하는 시간과 물리적 노동력, 기계 장치로 돌아가던 시대가 아님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이야기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지금은 당연히 정신력의 시대입니다. 체계없이 일하는 노동자 40명을 매뉴얼대로 일하는 산업시대 맥도널드 직원 1명이 대체를 했듯이 지금은 높은 정신력의 경지에 오른 프로그래머 한명이 맥도널드 노동자 10만명이나 100만명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산업시대에는 정주영식 마인드가 통했습니다. 저도 선배 기업가로서 정주영 회장님을 여전히 깊히 존경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시대는 변했습니다.

지금은 굴뚝을 세워 연기를 피우며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자신의 젊은 인생을 모두 불태워서 돈을 버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청년들은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있습니다. 가방에 노트북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동남아 여행중에도 일을 할 수 있고, 하와이의 호텔 수영장에서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월급은 회사에서만 나오는게 아닙니다. 노트북컴퓨터만 있으면 돈들어 오는 구멍 수백개를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겉보기엔 평온한 서울의 SFC 빌딩에 입주해있는 금융 기업들이 내는 수익이 울산 공단의 시끄럽고 거대한 굴뚝 기업들이 내는 수익보다 큽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것에 대해서 기성세대보다 빨리 눈을 떴고, 자신들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지키고자 합니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1/3이 1년내에 퇴사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워라밸(워크-라이프-밸런스)를 지키고자 합니다. 어차피 회사에서는 돈을 아무리 올려줘봤자 연봉 테이블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시대가 이렇게 흐르고 있는데, 요즘 부쩍 기성 언론이 이런 현상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입이나 맞춘듯이 "젊은 세대들의 워라밸 신드롬을 우려한다", "회사에 뼈를 묻고 살을 태울 각오로 일하라"는 주문을 내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런 기사들의 몇몇 예시입니다.

조선일보의 김홍수 경제부장은 "걱정되는 '워라벨' 신드롬"이라는 사설에서 1)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2) 젊은이들이 한해 해외여행으로 쓰는돈이 28조 원에 달한다는 등의 논조를 담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중인 워라밸 신드롬에 대해 우려하였습니다. 경제부장님 본인도 무려 가족들을 데리고 스페인까지 다녀왔으면서(...)

칼퇴근을 하고 집에 일찍 가는 것과 해외여행으로 28조 원을 쓰는게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무리한 연결을 지으신 것 같기도 하지만 우선은 젊은 사람들에게 군소리말고 회사에 충성하라는 논조로도 읽혔습니다.

부장님의 생각과 달리 칼퇴근을 하는 젊은이가 퇴근 후 여가 시간을 이용해, 집에서 자신의 모바일 서비스를 개발해서 세계적인 히트를 시킨다면 그 부가가치를 만든것은 워라밸 덕분입니다. 매일 야근에 쩔어서 낮에 담배피우고, 꾸벅꾸벅 조는 것 보다 일찍 퇴근해서 쉬고 다음날 맑은 기운으로 회사일을 하는게 생산성이 더 좋을거라고도 생각합니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중에서 가장 길지만, 단위 생산성은 OECD 국가 중 가장 떨어집니다. 회사에 붙어앉아 시간을 오래 때운다고 생산성이 향상되는게 아닙니다.

동아일보의 김용석 산업1부 차장은 "워라밸대신 '에밀레'를 선택하는 1% 인재들"이라는 엽기적인 사설을 냈습니다. 에밀레라는 단어는 억지로 만들어 낸 단어로 보입니다. 그리고 1% 인재들이 에밀레 종을 만들듯이 회사에 헌신한다는 이야기도 물론 지어낸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1% 인재들은 자기 회사를 창업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기업에서 느낀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능력 있고 일 잘하는 분들은 낮에 열심히 일하고 정시에 칼퇴근 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이런 기사를 쏟는 것에 대해 우려감을 갖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사주를 받고 쓴 것인지, 세대간 단순 생각차이인지는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회의 리더들이 더 이상 파이를 키울 자신감이 없어보입니다. 장기 저성장 시대를 염두에 두고 기존 자원을 억지로 쥐어 짜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 자원들 중에서는 역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큽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로켓을 재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고, 사람보다 더 뛰어난 이족보행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마다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법과 제도의 불필요한 장벽, 기득권의 안일함, 기성세대의 꼰대 마인드 등의 온갖 부조리가 콜라보되어 미래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선두에 선 사람들이 파이를 키우고 치고 나갈 자신이 없다면 뛰어난 후배들에게 길이라도 열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배들은 자신들이 쥔 기득권을 꼭 쥔채 그걸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미래로 나아갈 생각도 없이 후배들을 억지로 쥐어짜서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저는 선두에 있는 기성 언론들이 저런 시각을 가지고 저런 글을 아무런 부끄럼없이 쓰고, 데스크에서는 승인을 해준다는 현실 자체가 두렵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쥐어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는지요? 선배님들! 멋진 미래를 열어가실 자신이 그렇게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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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습니다 풀봇하고 갈게요
앞으로도 좋은글 잘 부탁드립니다

와우 풀보팅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득권층은 본인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던 그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아주 충만해 보입니다. 그렇게 빠르게 성장한 나라를 일궈놨으면서 다가오는 빠른 변화는 받아들이기가 귀찮은거겠죠. 본인들이 성공한 방식과 경험은 절대적인 것이니까요. 저도 이런생각을 하지만 저 스스로 변혁을 일궈내기엔 용기가 없는 제자신도 초라해보이는군요 ... 좋은글 아주 잘읽었습니다 ^^!!

공감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개인을 더 안 움직이게 만들고 이게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더라도, 다양한 경험이 있더라도 늘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씩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jongsiksong님 안녕하세요. 별이 입니다. @joeuhw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별이님 오랜만이에요!!

더 이상 경제발전으로 인한 파이를 키우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에 세대갈등이 심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는 경제성장율이 10%에 육박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경제성장율이 매우 낮아져 파이를 키우기 보다는 확보한 파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보수적으로 변한 것이겠죠. 게다가 젊은 세대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권리마저 박탈당한 느낌을 받습니다.
세대간의 갈등은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한 현상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대립하는 가치인 '성장'과 '분배'에서 이제는 '분배'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성장의 한계가 세대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합리적이고 좋은 논거라고 생각합니다. 성장과 분배, 그리고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그랬습니다. 철저히 기득권의 시각으로 문제를 내려다보는 거죠. 사실 더 큰 문제는 다른 시각으로(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시도를 하는 언론은 그래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겠죠.

공감합니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고 있는 1인이라서 더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디지털노마드로 멋지게 살아가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출발한 회사인데 고객사가 글로벌기업이었어요. 세대간 갈등이나 격차가 어디보다 심했죠. 젊은 친구들은 고객들과 프리한 영어로 대화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나이드신 분들은 그런 세대를 보면서 일 안하고 논다고 하시고요...
바로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해결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재미있는 사례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험 많은분들의 연륜은 활용하되, 젊은이들의 톡톡튀는 문화도 잘 융화를 시키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세대간 대화가 많아져야 장벽이 조금은 허물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 정말 시대가 변했어요
저도 예전에는 회사에 다녀야만 돈을벌수있다고생각했는데
돈을버는방법은 가지각색으로 많더라구요

그럼요~ 생각할 줄 아는 머리랑,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 뭘하면서도 돈 벌 수 있어요~

저도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웃음이 나왔습니다.ㅎㅎ
스페인에 출장으로 가신 것이었으면 좀 나았을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 필요없는 문장을 서두에 넣어놓고, 같은 글에서 자기가 넣은 덫에 자기가 걸려버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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