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탁구 교실에서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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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한 번만 배우는 스포츠는 그 어느 것이나 실력 향상이 더딜 것이다. 내가 지도하는 토요 탁구 교실도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함께 한 아이들은 이제 나와 스트로크로 랠리를 주고받을 정도가 된다. 아예 백지 상태에서 라켓을 잡는 방법부터 배운 아이들이니, 제법 그럴 듯한 폼으로 공을 넘겨 보낼 때는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일찍 시작한 아이들 몇을 데리고 지난 6월에 학교스포츠클럽대회도 나가봤다. 대회까지 나갈 실력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뭐 하나라도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다. 역시나 우리 팀은 최하위로 예산 탈락하고 말았다. 숱한 게임과 세트 중에 단 두 세트만 얻어냈다. 실력 차이가 엄청났다. 나중에 그곳에서 아는 코치를 만나 들어보니, 이 대회에 나오는 다른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평소에 개인 레슨을 받는 아이들이란다. 그 아이들 중 실력이 뛰어난 아이는 나보다 더 잘 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경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날 우리 아이들은 ‘동네북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얻은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엔 아마 다를 거라고 희망 섞인 메시지를 전했지만, 아이들은 별로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그곳에서 먹은 도시락과 간식에 작게나마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 역시 내년에 대회를 또 나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스포츠는 요행으로라도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일이 종종 있지만, 이 탁구라는 스포츠는 무척 정직한 운동이라, 기량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재간이 없다. 거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기량이 되고, 그 차이는 요행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아이들이 깨달았으면 다행이지 싶다. 일주일에 한 번으로 만족하는 아이들은, 적당한 기량을 즐거운 취미로 활용하는데 만족할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도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오고 싶은 아이라면 누구나 와도 되는, 열린 레슨이라 가끔 아이들은 새 친구를 데려온다. 새로 온 아이들은 보통 ‘탁구’를 한 번도 쳐보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레벨 중에서 지도할 때 가장 흥미로운 레벨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아이들이다. 라켓 잡을 줄도 모르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나는 왠지 모를 흥분을 느낀다. 그 아이들은 ‘탁구’라는 세계에 발들인 적 없는 이방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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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구 라켓을 쥐는 방법을 배우고, 스윙 자세를 익힌 후 공을 네트 너머로 넘길 때, 아이들은 비로소 ‘탁구’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전에 사용하지 않던 감각들을 활용하고 이전에 알지 못하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경계 너머로 들어왔다. 네트 사이로 통통 튀는 공을 주고받으면서 난 이 세계의 안내자가 되어 천천히 이방인들을 이끈다.

“네트에 걸려도 괜찮아. 스윙 폼대로 치면 돼. 처음 치고 아주 잘하는 걸?”

 안내자의 이런 말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이 새로운 이방인들은 라켓에 공이 맞을 때의 진동, 공이 탁구대에 튀는 그 파열음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공을 넘길 때의 짜릿함, 스윙 자세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공의 궤적도 관리할 수 있다는 걸 체득하게 될 때, 그들은 문득 자신도 이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이유다. 이 미숙한 이방인들이 반가운 건. 그들에겐 내가 단순한 탁구 선생이 아니라, 알지 못했던 세계의 경계를 처음 넘을 때 만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세계에서 맞닥뜨린 첫 존재는 특별하다. 그것이 설레는 세계의 첫 안내자든, 무서운 세계의 괴물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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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가 요행이 통하지 않는 정직한 스포츠라는 걸 공감합니다...절대로 이길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죠 ㅎㅎㅎ

헤헤.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고, 저 또한 저 친구에겐 절대 안 지겠다 하는 경우도 있었지요ㅋ

저도 탁구 좋아하는 데 배우다 말아서.. 폼이 ㅋㅋㅋ

탁구도 경기 위주로 배운 사파가 있죠. 폼은 엉성한데 정파를 이기는 경우도 많죠ㅋ

네.. 제가 동네 탁구장에서 할머니들을 한 달만에 제압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요 ㅋㅋ 너무 잘 치시더군요~

역시, 사파셨어ㅋㅋㅋ

특별함. 마법같은 말이군요. ㅋㅋㅋ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건 마법같은 일이죠ㅎ

탁구 군인때 정말 많이 했죠 ㅎ 그때는 선수가 될줄 알았습니다. ㅎ

군대 탁구 장인이시군요ㅎㅎ 전 대학 기숙사 대회 참가 정도로 만족했습니다.ㅋ 선수는 시켜줘도 안합니다ㅎ

헉! 탁구교실을 지도하시다니... 능력자셨네요^^
전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모두 싫어하는데 ... 유일하게 탁구는 쬐금 좋아했어죠! 뭐 실력은 형편없지만...ㅋㅋ

능력은 능력인데, 조악하고 알량한 기량입니다ㅋㅋ
독거님 탁구 좀 치셨군요! 한수 배우고 싶네요.ㅎ 언젠가 탁구 밋업도 생긴다면요!^^

ㅋㅋㅋ 겨우 네트 넘길까 말까한 수준입니다! 못넘길때가 더 많기는 하지만...ㅎㅎ

ㅋㅋ 제가 안내자가 되어 드려야겠군요ㅋ

ㅋㅋㅋ 안내자하다가 열받아 쓰러질수도 있어요!!
제가 운동은 완전 꽝~ 이라...ㅎㅎ

ㅋㅋㅋ 완전 난코스군요ㅋㅋ

경계 너머로 안내하는 일 ㅎㅎ 정말 멋지네요!

탁구 말고도 그런 일은 많지요ㅎ 웹툰의 경계를 넘어선 신농님이 경계를 넘는 기분은 잘 아실듯요^^

솔메님은 적당한 '선생님'이시네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느껴져요^_^

'진정한' 요런 얘긴 낯뜨겁습니다. 야한 얘기 들은 거 같아요ㅋ;; 재밌는 거 가르칠 땐 저도 즐겁고 따분한 거 가르칠 땐 저도 지겨워서 힘듭니다ㅎ

솔메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ㅎㅎㅎㅎㅎ

ㅋㅋ '진정한'까진 안바라고 '적당한'이나 '괜찮은' 정도로 만족합니다ㅎㅎ

민원해결

고객님 만족도 전화 오면 5점 부탁드릴게요.^^ 5점, 들어갑니다!ㅎ

타구 참 재미있는 운동이긴한데 넘 빨라요..ㅠㅠ

느리고 천천히 치는 재활탁구 라는 영역도 있습니다만ㅋ

부지런하시기도 하셔요.
토요 탁구교실이라니! ㅋㅋㅋㅋ
기회가되면 언젠가 가볼까 싶어 주욱 보다보니 아이들만 가르치시는군요.
ㅎㅎ
세상 속에서 진정한 가르침을 전수하시는 솔메님은 진정한 선생님입니다. 멋져요 캬

헤헤. 기회가 되면 와보실 정도로 훌륭한 강좌가 아닙니다ㅋㅋ 채은님이 탁구를 배우신다면, '선수 출신' 'ㅇㅇ대회 메달 획득' 요런 현수막 붙어있는 곳에서 제대로 배우시길 바랍니다ㅎ
가르침은 받아들이는 쪽에서 얼마나 좋은 배움으로 삼느냐에 달린 거겠죠. 나쁘지 않은 가르침이면 다행이라 생각해요ㅎㅎ

저는 군대에서 탁구를 배웠는데 연습은 제대로 안 하고
얍삽하게 커브를 넣어 서브 넣는 법만 배워서...ㅋㅋㅋㅋㅋ


[Kr-art] 한글날 기념 미술관

한글날 kr-art 이벤트를 기획하여 10분께서 멋진 작품을 출품해주셨습니다. 댓글 투표를 통해 대상 수상자를 뽑고 있습니다. 수상자 1분은 상금 20 SBD를 수상하게됩니다. 오셔서 작품도 관람하시고 투표도 부탁드립니다.

투표 기간은 11일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전투 탁구엔 커브나 커트죠. 어중간하게 제대로 배운 스탠다드형 플레이어보다 한 가지에 특화된 얍삽한 플레이어가 경기에선 더 강하더라구요.ㅋㅋ
가서 투표해야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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